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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나 Oct 02. 2024

사랑의 서약 - 한동준

응원가로 쓰일 노래

마이구미

요즘 단 음식을 피하고 있다. 특히 젤리처럼 말캉거리고 단 걸 먹으면 뱃속 어딘가에 쿡 하고 박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젤리를 피해왔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버스 옆자리 할머니는 잠시 내 얼굴을 스윽 보시고는 젤리계의 클래식 마이구미 포도맛 젤리를 건네셨다. 할머니가 이 맛을 아시나 생각했다.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한번 거절했다. 무안해진 할머니의 손이 보였다. 투박한 할머니의 손이었다. 딱딱하고 거친 손.

두 번 거절했다. 마이구미 젤리는 예전에 나의 할머니가 자주 입으시던 스웨터 단추 모양과 닮았다. 우리 할머니는 그 주머니에 뾰족하게 생긴 박하사탕을 가지고 다니셨다. 주머니에서 꺼내어 주던 그 눅눅한 사탕을 손주에게 건넨 마음이 생각났다.

세 번째에 젤리 하나를 집었다.


“더 가져가.”

“아니에요.. 어디 가셔요?”


다른 말로 돌려보려 꺼냈지만, 행선지가 하나인 버스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사랑의 서약

모르는 누군가와 말을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잠겨 음악을 듣고 있었고 미소가 살짝 지어졌다. 그때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어폰을 뺐다. 버스 라디오에서는 한동준 <사랑의 서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날 보고 계셨고 ‘잘생겼다.’라고 하셨다.


"코도 입도 귀도 잘생겼다. 복이 많아 보여요. 학교 다니세요?"

"아 네 다니긴 하지만 교사입니다."


일 년 치 칭찬을 다 받고, 호구조사를 끝냈다. 이제 당신의 자식 이야기를 한 타임 하시고. 빨리 우리 아들처럼 색시랑 결혼하고 아이는 4명을 낳으라 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라며 명절 때 하지 말라는 멘트를 전부 하셨다. 허허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자랑이 아니었고, 자신의 삶의 굴곡을 생각해 보고 나에게 건네는 최선의 응원이었다.


사랑의 서약 2

몇 년 전 버스 라디오에서 사랑의 서약을 또 들은 적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한 시간가량 학생들과 웃고 떠들다가 함께 하교를 하며 버스를 탔다. 해가 예쁘게 지고, 교복 입은 아이들이 별거 아닌 일에 키득대며 웃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당시의 힘듦에 큰 위로가 되었다. 말은 안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다. 축가 1순위 노래지만 다른 의미로 사랑의 서약을 했었다. 우리 모두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인간적인 약속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의 손

버스에서 할머니와 한차례 이야기와 웃음이 오갔다. 그날도 해가 예쁘게 지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끈이 느껴졌다. 나의 할머니와 닮아있다. 최근 그 양반 떠나고 혼자 남은 것도, 밭일을 오래 해 무릎이 아픈 것도 말투도 내용도 많이 닮았다.


그리고 곧 끊길 끈이라는 게 느껴져 마음이 시렸다. 이제 내가 내릴 시간이다. 헤어질 때가 되었다.

내가 먼저 내려야 한다. 문득 할머니의 손이 보였다.


무슨 용기인지, 마음인지 모르겠는데 거칠고 주름진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행복하세요.


할머니는 내 손을 더 꼭 쥐셨다.


건강하세요.


서로 고개를 숙여 안녕을 바랐다.


다시 사랑의 서약을 되뇐다.

할머니의 삶을 응원하고 내 삶을 더 사랑하기로 하며

다시 사랑의 서약을 되뇐다.

젤리 한 알이 뱃속에 쿡 하고 박혔다.




한동준 3집 - 사랑의 서약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요 모든 사람의 축복에 사랑의 서약을 하고 있죠
세월이 흘러서 병들고 지칠 때 지금처럼 내 곁에서 서로 위로해 줄 수 있나요

함께 걸어가야 할 수많은 시간 앞에서 우리들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다는 것을 믿나요 힘든 날도 있겠죠 하지만 후횐 없어요 저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사랑만 가득하다는 것을 믿어요


두 시의 데이트 DJ를 할 만큼 큰 인지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슈가맨이 되어버린 가수 한동준.

<너를 사랑해>, <사랑의 서약>이 유명하다. 축가 전문 곡으로 노래를 들으면 아!! 하고 탄성을 외칠 노래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도  한동준의 곡이다. 오랫동안 축가로 사랑받는 곡인 이유가 분명히 있다. 여느 90년대 노래처럼 음 하나, 가사 하나 꾹꾹 눌러 담는 느낌이 발라드답게 진득하다. 젊은 세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명곡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를 추천.


https://music.bugs.co.kr/track/63343

https://music.bugs.co.kr/track/50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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