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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나 Oct 04. 2024

I Pray 4 U - 신화

테이프 전쟁에서 승리한 노래

테이프 전쟁


시골에서 학원 차를 타고 귀가 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촌 구석 곳곳을 들르다 보면,  꼴지로 내리는 날은 차에서 꼼짝없이 1시간은 보내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막차는 일찍 끊기니 학원차를 탈 수 밖에 없다.


테이프 전쟁이었다. 긴 시간을 달래기 위해 각자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학원 차 카세트에 밀어넣기 바빴다. 그날은 진영이와 다애의 싸움이었다. 다애가 이겼으면 리치의 <사랑해 이말 밖엔>을 듣는 것인데 진영이가 이겼다.


Perfect man


신화의 퍼펙트맨. 상남자 아이돌의 근본이었던 신화. 멋있긴 했다. 특히 신혜성이 "제발 내게 닥친 고통 속에서" 라는 가사에서 발차기를 하는 안무가 있었는데 당시 남학생들은 꼭 한번은 따라했었다.


사람도 많이 없는 시골 출신에 남자 중학교를 2년간 다녔더니 이상한 병이 생겼다. 여성 생명체와 눈을 잘 못마주치는 병이었다. 발차기 하는 퍼펙트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체육대회, 파스냄새


보통 여자 아이 옆에 앉지 않는데 어쩌다 보니, 진영이의 옆자리다. 그래도 나름 편한 아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옆에 앉으니 뭔가 민망해 고개를 돌려 창밖만 한참 봤다.

그녀는 서울로 공개방송을 갈 정도로 열렬한 신화창조(신화 공식 팬클럽)2기였다.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구도 많고 활발한 친구였다.


그날은 진영이네 여자중학교의 체육대회가 있었고, 고단했는지 차안의 아이들은 금새 잠들었다.


고요했다. 조금 차갑지만 신선한 밤 공기. 옆자리 진영이에게 달큰하고 알싸한 향이 났다. 몽글거리는 I pray 4 U 노래가 끝날 때 쯤, 진영이가 어깨를 손으로 톡 건드렸다.


ㅡ 잠깐, 배게로 쓸께.

ㅡ 괜찮지?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 주저하고 있을 때 였다.

팔이 가까워 지고, 어깨에 머리카락이 닿았다.

달큰한 파스향이 퍼졌다. 심장 소리가 머리에 들렸다. 숨이 모자랐지만 들키기 싫었다. 팔을 당겨 손을 잡는다던지, 함께 기대어 준다던지 그런 일은 상상도 못했다. 윽 여성생명체...


이제야 쓸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런 예시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얼음이었다. 미필이었지만 훈련소 4주차 같은 바른 자세를 유지 했다.


어디 붙어있나 생각도 않던 어깨라는 신체부위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 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무 말 못한채 시간은 갔고, 학원차는 집 앞에 다다랐다. 그 아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 눈도 안마주치고 들릴듯 말듯한 '잘가'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날 밤. 또 다음 날, 계속 신경쓰였다. 달큰한 파스냄새가 아직 옷에 남아있었다.


I pray 4 U


괜찮은 척 해야지. 난 뭐 아무렇지 않아. 백 번 정도 되뇌었지만, 그 아이 앞에서 서서는 쭈뼜거렸다.


들켰다. 그때 진영이는 들으라는 듯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 했다.


ㅡ 나, 어제 곰돌이(당시..별명..죄송해요) 어깨에 기대서 집에 갔다?

ㅡ 둘이 그런 사이야? 어머


또 주저했다.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나도 별일이 아닌거라고, 평소와 같은거라고 마음을 닫았다. '워낙 활발한 아이니까. 내가 시골출신 남중2학년이니까, 내가 이상한거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야속했다.

‘조금 만 더 틈을 주지...’


혼자 미워하다 보고싶어 하기를 반복했고, 몇 개월 지나, 내가 알던 착하고 바른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다. 별일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아직 달큰한 파스향이 스치면, 어깨가 굳고, 1번 트랙 I pary 4U , 그날 의 온도가 떠오른다.


가끔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지금의 그녀 말고,


아이돌 따라다니고, 목젖이 보이게 웃던, 파스냄새에 촌스런 교복의 그녀.


I Pray 4 U my memories of love

넌 어디 있는지

그때처럼 어린 맘으로

널 이렇게 기다리잖아


I pray 4 U는 김영후 님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SM 대부분의 가수들에게 곡을 주었다. 이수만이 직접 15세에 발굴했다는 능력있는 작곡가.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작곡의 폭이 넓어 아 이게 같은 분이 한건가? 라는 느낌이 들때도있다. 소녀시대 <힘들어 하는 연인들을 위해>도 좋아하는 곡. 개인적으로는 이 작곡가의 베스트 곡은 팀의 <사랑한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이다. 사랑한 만큼은 또 박재정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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