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승객으로 한국에 돌아가는 날이다. 내 옆자리에는 중국인 부부가 탔다. 내가 좌석을 조금 뒤로 젖히자 아까부터 나를 곁눈질로 계속 관찰하는 눈치던 중국인 아주머니도 좌석을 뒤로 젖혀본다. 그런데 좌석이 잘 안넘어가네. "이거 어떻게 해야돼? 왜 잘 안돼?" "여기 이 버튼을 아주 세게 이렇게 꽉 누르구요, 자, 이제 젖혀보세요." "아 됐네. 고마워."
기내 서비스로 나온 땅콩 한봉지를 뚝딱하자, 여전히 나를 관찰중이던 아주머니가 본인의 땅콩을 내밀며 "더 먹을래?" 하신다. "아니요 괜찮아요."
식사와 함께 나온 빵을 한입 베어물었는데 너무 맛이 없어 그냥 내려놓았더니 아주머니는 또 "빵이 맛이 없어?" 묻는다. "네, 별로 맛이 없네요." "그럼 내 샐러드 먹을래?" "어머 아니예요, 괜찮아요."
드디어 랜딩. 밤 도착 비행기다. 심카드를 바꿔 끼느라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작 거렸더니 "불 켜줄까?" "하하, 괜찮아요."
비행 내내 관찰 당하는 느낌에 조금 웃기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참 정많은 중국 아주머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아주머니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나는 중국어를 거의 못하는데 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것. 역시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다.
한번은 내 옆자리에 앉은 인도 의사 게다와 비행 3시간 내내 수다를 떤 적도 있다. 그 때는 물론 영어로 대화를 했었다. 한국에 회의 하러 간다던 그와 인도 이야기, 한국 이야기 꽃을 피우다 페이스북을 교환했었던 기억.
비행을 하며 많은 승객과 승무원을 만날수록 인종과 국적은 점점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냥 각 개인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너는 너로서 존재한다. 인종 차별하는 사람을 경멸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무의식 저편에 편협한 사고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일본 사람은 어떻고 중국 사람은 어떻다는.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국적이라는 틀 안에 개개인을 구겨넣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많이 경험해보고 많이 느껴봐야 하나보다. 이렇게 정 많은 중국 아주머니, 유쾌하고 똑똑한 인도 의사 선생님 등을 만나면서 편협했던 내 시야가 더 넓어지고 국적과 인종이라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