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기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 풀리오
10만 원짜리 마사지기를 사면서
상세페이지 하나 제대로 안 읽고 산다고?
.. 그런 비합리적인 인간이 있어?
내 이야기다. 하지만 늘 그렇진 않다. 올리브영에서 단돈 9천 원짜리 틴트 하나를 살 때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검색을 해본다. 발색샷은 어떤지, 지속력은 어떤지, 여러 후기를 잽싸게 훑으면서 꼼꼼하게 따져보고 탐색해서 겨우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전자기기, 심지어 효과가 담보되지 않는 마사지기를 사면서? 상세페이지 하나 제대로 읽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상세페이지까지 진입한 순간에 이미 내 구매의사는 98%쯤 확정이었다.
그 신묘한 물건의 정체는 바로 <풀리오>의 목어깨 마사지기. 이 물건을 처음 접하고 내돈내산 구매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풀리오라는 브랜드의 경쟁력을 느꼈다. 나도 한 브랜드를 담당하는 마케터로서 부러웠다. '이런 게 브랜드의 힘이구나.' 느끼게 된 포인트를 중심으로 풀리오와의 첫 만남부터 복기해 본다.
첫 만남부터 구매 버튼까지
걸린 시간, 1년
풀리오와의 첫 만남, 그것은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였다. 정확히는 내가 팔로우하는 한 뷰티 대기업 직원분의 게시물. 마사지기 사진과 함께 "종아리 풀리오에서 왕볼 어깨 마사지기가 나왔네요. 남편이랑 써봤는데 확실히 물건입니다"라고 캡션이 쓰여 있었다. 평소에도 뷰티/건강 업계 지식을 많이 공유하는 분이라 신뢰가 있었다. 스크린샷 캡쳐를 찍어 일단 앨범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2번째 만남은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남자친구랑 교보문고에 갔는데 마침 풀리오 체험존이 있었다. 살짝 기웃거리고 있으니, 직원분이 마사지기를 직접 채워주면서 체험을 도와주셨다. 오빠는 목어깨, 나는 종아리 마사지를 했다. 솔직히 나는 그냥 그랬는데, 오빠가 시원하다면서 너무 좋아했다. 옆에서 보니 마사지기가 조그만 게 힘이 좋아 보였다.
결정적 계기는 최근의 일이다. 집 앞 헬스장에 회원권을 끊었는데, 오리엔테이션으로 PT 체험 시간을 제공하더라. 그렇게 만난 헬스 트레이너가 나를 보곤, 회원님은 지금 근력이 문제가 아니라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목과 어깨를 힘차게 꾹꾹 눌러서 근막(?)을 풀어주는데.. 나처럼 이렇게 딱딱한 사람은 오랜만에 본다고 말하더라. 공포용 영업멘트인지 진실인지 믿을 순 없었지만, 일단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승모근을 엄지로 조지면서 그가 말했다.
"회원님, 사실 목어깨 이런덴
뭐가 제일 좋은지 아세요? 마사지기예요."
내가 반문했다.
"아.. 그래요? 그.. 풀리오 같은 거요?"
머릿속에 있었던 유일한 어깨 마사지기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입소문 - 체험 - 전문가의 권유. 3가지의 트리거가 1년이란 기간을 두고 작용하고 한 2주쯤 지났을까.. 나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나에게 선물하기'를 눌러 풀리오 마시지기를 결제하고 있었다. 카드사에서 제공하는 5천 원 할인쿠폰까지 먹여서...
풀리오는 어떻게
설레는 마사지기가 되었나?
어른이 되니 예전만큼 택배가 매번 반갑지는 않다. 어느 날은 내가 사놓고도 택배 알림이 귀찮게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풀리오는 달랐다.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기다려졌다. 다음날, 카톡이 왔다. 우체국 기사님이 우리 집 앞에 택배를 놓고 간단다. 오빠한테 톡을 보냈다. "대박. 풀리오 왔대. 얼른 써보고 싶다 집에 가서!!!"
사람들의 가슴속 설레는 브랜드가 되는 것. 이것은 모든 브랜드 마케터의 꿈에 가깝다. 그 어려운 일을 풀리오는 해냈다. 풀리오는 어떻게 가정용 마사지기 시장에서 설레는 입지를 가지게 되었을까.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물량과 기세다. 어디에? 홍보비에. 특히 이번 추석 대목을 앞두고 각종 옥외광고, 외부몰 제휴 광고.. 쏟아져 나왔다. 정확한 예산은 까봐야 알겠지만, 분명 퍼포먼스 마케팅에 엄청난 예산을 쓰고 있음은 분명하다. 당장 내가 구입할 시기만 해도 카카오톡 선물하기, 하나카드 제휴광고, 버스쉘터, 빌딩 영상 광고.. 등등. 엄청나게 많은 광고가 내 주변에 있었다.
최근에는 '윤아'라는 빅모델을 고용하면서, 다른 마사지기 모델과도 확실한 차이를 두었다. 타 브랜드는 인플루언서 아무개가 홍보하지만, 풀리오는 누구나 아는 윤아를 쓴다. 윤아가 가진 고급스러운 여신미에 브랜드도 덩달아서 이미지가 고급스러워달까.
포인트는 이런 대대적인 광고 물량 공세를 1~2달 바짝 하는 게 아니라.. 꽤 꾸준히 오랜 시간동안 해왔다는 것에 있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 풀리오 광고 한 번 안 본 사람이 있을까? 꾸준히 많은 물량의 광고를 투입하고, 그 결과로 사람들은 풀리오를 자주 보고 익숙해졌다. 풀리오. 세 글자는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1번 이상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 되었다.
둘째, 압도적인 후기의 양이다. 포털이나 SNS에 풀리오를 검색해 보자. 블로그, 카페 등등 긍정 후기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뭔가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 싶어서 '내돈내산', '풀리오 단점' 등의 키워드를 넣어도 보고, '별점 낮은 순'으로 필터링을 걸어봐도..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왜 이렇게 풀리오는 인터넷에 긍정적인 후기가 가득할까? 그 정답은 나도 제품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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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100% 당첨되는 15만 원 리뷰이벤트'다. 일반적인 쇼핑몰에서도 양질의 후기를 확보하기 위해 적립금 이벤트를 진행한다. 보통 1-2천 원 수준의 적립금을 지급하고, 많아봤자 5천 원~최대 3만 원 정도까지다. 그런데 풀리오는 무려 (최대) 15만 원. 본품보다 더 큰 적립금을 준다니. 혹할만하다. 심지어 현금으로 전환도 가능하다고 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 후기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리뷰를 썼을 테다.
진짜 고객들이 모두 풀리오를 '칭찬하는' 리뷰를 남길 수 있었던 건? 15만 원이라는 솔깃한 포상금 숫자에 있었다. 물론 '최대 15만 원'이라고 적어두었을 뿐, 별도의 채점기준이나 평가항목은 확인할 수 없다.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씩 적립금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 하지만 풀리오가 리뷰 이벤트를 통해 얻는 이득은 득이 더 많아 보였다.
특히 실제로 써보기 전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마사지기' 카테고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걔가 써봤는데 정말 좋대.." 긍정 후기로 완성되는 입소문이 중요하다. 국밥 한 그릇을 시켜 먹어도 식당 리뷰를 먼저 찾아보는 요즘 사람들의 구매패턴에는 꾸준히 쌓인 긍정리뷰 하나하나가 더욱 큰 영향을 주었을 테다. 나 역시도 상세페이지보단 다른 채널에서 풀리오를 직접 써본 사람들의 리뷰에 더욱 의존했고. 그것이 풀리오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셋째, 과감한 컬러 선택이다. 이번에 목어깨 마사지기를 구입하면서 타사의 제품도 함께 둘러봤었다. 기능은 솔직히 다들 비슷해 보이는데.. 딱 하나. 컬러가 달랐다. A사는 오렌지색, B사는 그린색, 풀리오는 보라색이다. 그런데 내 눈엔? 이상하게 보라색 풀리오만 정품처럼 보였다.
돌이켜보면 원래 마사지기의 색상은 흰색, 황토색이 주류였다. 주로 50대 이상 부모님들이 쓰시니까. 고급스럽고 중후한 컬러가 대다수였다. 반대로 스포츠인들이 많이 쓰는 '마사지건'은 블랙이 90% 이상이다. 즉 풀리오는 마사지기 업계에서 불문율로 여겨지는 블랙/화이트/황토, 이 3가지 신뢰의 컬러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보라색을 선택했다.
보라색을 쓴다고? 마사지기에? 분명 처음에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다. 보라색은 흔히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컬러는 아니니까. 하지만 풀리오는 과감하게 쨍한 보라색을 선택했다. 아마 5060 뿐만 아니라 젊은 2030 세대에도 힙한 마사지기로 포지셔닝하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풀리오라는 이름이 없이도
사람들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됐다.
'보라색 마사지기 = 아~ 종아리 쭈무르는 그거?'
그렇게 풀리오는 오랜 시간 끝에, 신뢰자본을 쌓았다. 그건 다른 업체는 갖지 못하고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우위의 경쟁력이 되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겨진 풀리오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테다.
제품이 도착하고 직접 써본 결과, 솔직한 내 마음은 반반이었다. 시원한 것 같기도, 아픈 것 같기도 헷갈렸다. 써보니까 풀리오 입장에서는 고객의 첫 일주일이 가장 중요하겠더라.
사용자의 첫 7일 동안 풀리오라는 브랜드에 대한 모든 호감도가 결정된다. 배송 오자마자 사용해 보고 시원하면? 충성고객이 된다. 매일 사용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종이라 마사지기도 사고, 넥풀러도 사고, 풀리오의 다른 라인까지 줄줄이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아프다고 느끼면? 영원히 끝난다. 그 고객에게 쓰는 마케팅 비용은 앞으로 깨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한 번 아프다고 느낀 사람은 두 번 다시 풀리오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너 이번에 샀다며. 그거 어때?" 했을 때 "어~ 나 그거 아들이 사줘서 한번 써봤는데 난 너무 아프더라. 별로야" 하면 끝인 거다.
내가 풀리오 마케터라면 첫 일주일에 초점을 맞춰서 CRM 마케팅을 해볼 거 같다. 자세는 불편하지 않냐던가, 이렇게 하면 풀리오를 더 잘 쓸 수 있다던가.. 고객이 정말로 제품을 잘 사용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일종의 교육용 콘텐츠가 있다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 만족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케터로서 이 브랜드를 처음 접하고, 구매를 고민하고, 기다리고 직접 써보는 모든 과정이 인사이트였다. 나에게 누군가 '풀리오는 어때?'라고 묻는다면 '대단하지'라고 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