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과 접점을 설계하는 브랜드, 데스커
책상을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언젠가부터 내 대답은 ‘데스커’였다. 의자는 시디즈와 허먼밀러. 나만의 책상이 필요해진 순간에 머릿속에 떠오른 책걸상 브랜드 삼총사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난 그동안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가구를 살 생각을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가구점은 물론이고 책상과 의자라니. 정말 관심이 1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속에는 3개의 브랜드가 이미 스며들어서, 제멋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허락도 없이 내 마음에 침투한 소리 없는 도둑. 데스커와의 만남을 거꾸로 추적해 보도록 하자.
사건 #1
홍대 데스커 라운지에 가다
시작은 단순한 팬심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팔로우했던 두 사람(윤소정, 이승희)이 협업을 해서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이 홍대에 위치한 데스커 라운지였다. 그냥 궁금해서,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어떤 결과물이 탄생했나 보고 싶어서 찾아갔다.
처음에는 무료 쿠폰으로 방문을 했는데 꽤나 괜찮길래, 두 번째는 직접 예약을 하고 남자친구를 데려갔다. 거기서 문제의 '그 책상'을 만났다.
데스커 라운지에는 두 종류의 책상이 있다. 하나는 20명 남짓 수용되는 커다란 빅데스크, 그리고 모션데스크다.
남자친구를 데려간 두 번째 방문에선 모션데스크에 앉았다. 각자의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6-8 시간 동안 서로 가져온 일을 했다. 나랑 남자친구의 키 차이는 약 40cm 정도인데, 둘 다 평균치와 멀찍이 떨어진 정규분포 바깥의 사람들이다. 내겐 보통의 책상이 좀 높아서, 오빠는 너무 낮아서 평생 불편한 점을 느끼면서 살았다.
그런데 모션데스크는 내 마음대로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지 않나. 각자의 몸에 맞추어 난 조금 낮추고 그는 살짝 높여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날,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문득 강렬하고도 확실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아! 우리가 함께 살게 된다면, 이 모션데스크가 최적의 선택지가 되겠구나.'
단 하루. 고작 8시간 남짓한 시간이었다. 3만 원짜리 이용권을 내 돈을 주고 사서 입장한 곳에서, 언젠가 미래의 160만 원짜리 큰돈 소비를 마음속으로 결정해버리고 만 것이다.
사건 #2
워크투게더에 참여하다
2024년 8월, 데스커라운지에 세 번째로 방문한 날이다. 이 날은 '워크투게더'라고 데스커라운지에서 운영하는 강연 및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기 위해 찾았다. 네이버의 브랜드 경험 기획자로 일하는 김도영 님이 오신다길래, 마침 관심 주제라서 냉큼 신청했다.
일반적인 강연과는 다르게 참가자끼리 학습하는 시간과 강의 시간 그리고 QnA까지 장장 4시간 동안 알찬 커리큘럼이 이어졌다.
특히 여기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팀으로 묶여서 4시간 동안 함께 공부하고 강연을 들었는데, (강연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그런지) 확실히 나와 비슷한 주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었다. 끝나고 난 뒤엔 서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하고 팔로우까지 신나게 맺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책상 만드는 브랜드와 강연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도대체 데스커는 왜 이런 일을 굳이 하는 걸까.
데스커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는 강연자를 섭외하고, 공간에는 강연자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비유하자면 강연자는 미끼, 참가자는 물고기. 데스커는 수족관인 셈이다. 강연자가 궁금해서 워크투게더를 신청해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간을 이용하며, 은연 중 데스커의 제품을 써보는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 역시도 워크투게더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유용한 강의, 같이 웃고 공부하면서 보낸 시간 덕분에 데스커에 대한 호감이 조금 올라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자취를 시작했다. 내겐 작고 소중한 로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창문 아래 책상을 놓고 싶다는 것! 이사를 결정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책상을 주문하려고 오늘의집 어플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 다름 아닌 <데스커>였다.
다른 책상은 내게 가격, 배송 기간, 후기수가 중요했다. 여러 업체를 쥐 잡듯이 찾고 꼼꼼하게 따져서 나에게 유리한 쪽을 고르려 했다. 그런데 데스커는 그냥 데스커였다. 마지막까지 '데스커 살까, 그냥 책상 살까' 고민을 했었으니까. (결국 이번엔 공간이 크지 않은 관계로 다른 브랜드의 원형 책상을 구매했지만, 언젠가는 모션데스크를 나의 집 서재에 두고 싶단 생각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데스커 라운지 3번의 방문이 내게 남긴 교훈은 명확했다. 치밀하게 설계한 오프라인 경험은 고객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좋은 기분을 남긴다. 감도 높은 공간에서 실제로 앉아 업무를 해보고, 글을 써보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보낸 시간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때 좋았었지'란 감각이 흐린 기억 속의 호감으로 남겨진다. 좋은 기분은 고객의 마음속에 화석처럼 머무르다 언젠가의 구매 시점에 생생하게 부활한다. 마치 내가 책상이 필요해진 시점에 자연스럽게 데스커가 떠올랐던 것처럼.
p.s 지난 코로나19는 가구 브랜드 모두에게 기회의 시대였다.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이 각자 방에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자기만의 책상이 필요해졌다. 시디즈, 허먼밀러를 포함한 많은 가구 브랜드에서 치열하게 마케팅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머릿속에 데스커와의 상호작용이 이토록 진하게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그들이 추구하는 타겟에 공교롭게도 내가 쏙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글 쓰고 책 읽고 이것저것 하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회초년생. 심지어 (최근에서야 알게 됐는데) 초창기부터 몇 년간 즐겨보던 뉴미디어인 '디퍼' 역시도 데스커의 브랜딩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이럴수가..
하하. 이쯤 되면 데스커라는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한 마리 물코기였던 것이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