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리 Apr 24. 2020

"7개월 간 글을 썼더니 마음에 드는 내가 됐어요."

50대 중반 S님의 글쓰기 이야기

 




S님을 만난 건 2018년 여름 지방의 백화점 문화센터 스타일링 클래스에서였다.


"오늘 저는 패션 수업을 들으러 왔다기보다는, 작가로서 선생님을 뵈러 왔어요."


그곳에 오시기 위해 20년 넘은 직장 생활 처음으로 조퇴까지 하셨다. S님은 브런치에서 우연히 읽은 내 글에서 경험한 울림에 대해 말씀하셨다. S님의 떨리는 입술에서 팬심을 본 나는 커피 한잔을 권했다.


결혼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지운 채 살아왔지만, 내 글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는 것에 눈을 떴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별 기대 없이 간 그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몇 달 후,  S님은 나와 글쓰기를 시작하셨다. 네 분이 함께 듣는 온라인 클래스는 1회로 그쳤지만, 글쓰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이후 6개월간 1:1 수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셨다.


과정이 힘겨워도 보였다. 금방 멈추셔도 이상할 것이 없다 여겼다. 그러나 S님의 의지는 강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 아들과의 갈등을 글을 쓰며 이겨내신 걸 시작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까지 해내셨다. 7개월째가 되었을 때 마지막 글의 주제는 이 글쓰기 수업으로 하겠다고 하셨다. 글쓰기로 인한 행복이 너무 크다시며.


7개월의 기간 동안 S님은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과 타자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얻으셨다. 나는 그렇게 하신 S님이 자랑스럽다.


일상에서 우리는 한 명의 힘없는 피해자이거나 무력한 관찰자, 혹은 배려 없는 실수를 범하는 누군가의 가해자일 수 있다. 그러나 글쓰기를 할 때만큼은 작가 또는 감독의 시선으로 상황을 재구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가 된다. 글에서 만큼은 글 쓰는 사람의 시선이 주인공인 셈이다.


자신이 경험한 일, 특히 내 인생의 미제사건을 재구성하다 보면,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되고 이해되지 않던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는 기회를 갖는다.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차원에서 볼 줄 아는 '셜록' 같은 눈이 생긴다.


글을 쓰며 나와 내 일상 속 등장인물을 예리하게 바라보면, 나와 주변을 향한 시선이 따스해진다고 나는 믿는다. 앞 뒤 재지 않고 무턱대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편협함은 금방 알아채게 되니 단단한 자존감을 얻는 건 덤이다.


글을 쓰며 성장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S님의 스토리에서 글쓰기의 힘을 보았다.


(다음은 S님의 7번째 글입니다. 브런치에 공개해도 좋다는 본인 동의를 얻었습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실명이 될 수 있다고’


2014년 가을,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2019년 3월, 담당 의사는 뜻밖의 말을 했다.


“ 5년간 검사 결과를 보니 더 이상 진행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녹내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명의 불안감에서 해방된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기적’ 이 일어난 것 같았다.


진료를 마친 후, 상기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 도착하여 휴대폰을 보니 최유리 작가님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작가님의 블로그에 글쓰기 수업 소식이 올라오면, 수업에 참여하고 싶었다.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 ‘나를 만나는 글쓰기’라는 이름은 신선하고 매력있었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나는 참여가 불가능했다. 온라인 개설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답을 기다리던 차였다.


"S님, 4월에 온라인 글쓰기 클래스 개설하겠습니다."


 작가님의 문자를 받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이 배가 되었다. 나의 글쓰기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년 전 녹내장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서울 큰 병원 녹내장 전문의에게 진료 예약을 했다. 남편은 서울까지 가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단호히 말했다.


“ 내 눈이거든! 전문병원에 가서 검사 꼭 받을 거야. ”


남편은 아무 말 못 했다. 나를 지켜 줄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의 부상과 투병생활, 그리고 낯선 시댁에서의 시집살이는 힘들었다. 예상치 않았던 일들에 삶의 방향을 잃고 우울한 마음으로 시간에 기대어 살았다. 나는 나를 잃어갔다. 불안, 초조, 두려움에서 허우적대며 살았다.


나를 잃었던 나는 늘 허기졌으며 불만은 누적되어 갔다. 주어진 현실을 비관하며 불행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기만 했다.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답을 찾기도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숱하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왜 하찮게 생각될까’

‘무엇에 억눌려 있는 것 일까’  


녹내장 진단을 받았을 무렵부터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나를 잘 몰라서였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몰랐고, 행복을 스스로 찾아야 함도 몰랐다.


그러던 중 우연히 브런치에서 최유리 작가의 ‘옷 잘 입는 사람이란’ 글을 읽었다. 음악에 패션을 비유한 글은 경이로웠다. 옷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에서 진정한 감성의 소통이 일어남을 작가님은 얘기했다. 내 욕망이 뭔지도 모른 채 현실에 익숙해져 살던 내게 억눌려 있던 감성 회로가 다시 살아났다. 나도 '나 다운 사람', '멋있는 사람'이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녹내장 진단 이후 실명의 불안감에 좋아하던 독서를 중단했었지만, 최유리 작가의  <오늘 뭐 입지?>는 단숨에 읽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책의 ‘용감한 성찰자’라는 챕터에서 글쓰기를 하며 자신의 마음을 치유한 작가님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나도 나를 성찰하고 싶었다. 작가님처럼 글을 쓰면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4월부터 글쓰기 수업이 시작됐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시작하는 새로운 일에 꽤 설레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첫 시간 초안 숙제를 하며 ‘내가 이 나이에 뭐 하는 짓인가’ 생각했다. 한 번도 글쓰기를 해 본 적이 없던 내게, 글쓰기 수업은 무모한 도전 같았다.


원래는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부족한 글을 난생처음 남 앞에 공개했다. ‘잘 쓸 필요 없다’는 작가님의 말에 위안을 얻었고 용기 낼 수 있었다. 나는 내 글의 엉성함을 알고 있었지만 태연한 척 제출했다.


작가님은 피드백에서 글의 주인공이 ‘나’와 '나의 시선'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걸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나를 만나는 글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나임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일쑤였다.


내가 쓴 글들은 ‘친구에게 들은 서운했던 말’, ‘아들의 결혼 얘기’, ‘친정 부모님과의 일’, ‘직장에서의 일’, ‘시누이들과 있었던 일’, ‘손녀 탄생 얘기’이다. 나는 일상의 사소함을 글로 풀어내며 내가 모르던 나를 조금씩 알아갔다.


글에서 처음 만난 나는 미성숙했다. 글쓰기를 통해서 만난 나는 불합리한 상황에 닥치면 공격적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차분하고 친절하게 표현할 줄 몰랐다.


또 나는 현실에서 완전함을 원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엘리트이길 간절히 원했고 시어머니가 도덕적이고 윤리에 어긋남이 없기를 원했다. 또 안사돈의 무례한 행동에 ‘봉변’을 당한 것 같다고 썼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힘들어하기도 했다.


"S님은 완벽주의자이시네요."


‘뭐?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작가님의 피드백에 놀랐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완벽주의자’ 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글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내 글의 필자는 ‘완벽주의자’가 맞았다.


‘완벽주의자’에 지금껏 살아온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거기 있었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면의 심판관 때문에 내가 그토록 불안해했고, 나를 드러나는 게 싫었음을 알게 되었다.


완벽주의형 인간. 그건 내 탓이 아니었다.  그냥 내게 주어진 성격이다. 나를 평생 짓눌렀던 수치심, 모멸감, 두려움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충만함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내려놓음을 잘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몰랐다. 나를 더 빨리 알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러나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하기에 모르는 것이 많았다. 타이핑은 ‘독수리 타법’에 의지해야 했고 기본적인 pc 활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까지 글을 썼다.


또 수업 때마다 작가님의 예리한 피드백은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내 글이 나아짐을 알고 있었다. 작가님의 피드백을 메모하고 대화를 녹음했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녹음 내용을 몇 번이고 들었다.


과거의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 벽을 만나면 좌절하고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결혼생활 동안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싶은 간절함이 컸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글 한 편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글쓰기는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글 쓰기를 피하지 않는 것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글에 드러난 내 부족함이 부끄러워 피하지 않는 것이었다. 매번 초안을 쓸 때마다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다. ‘나를 만나는 글쓰기’라고 나를 다독거렸다.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는 신선함으로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자, 내가 부끄러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부족한 나를 인정하지 못해서 이고 두려움은 나를 알지 못해서였다. 그동안 나는 그걸 모르고 사람들을 미워하기만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안다.


‘나를 만나는 글쓰기’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극복할 수 있었고, 나의 묵은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 글 속에서 과거의 나와 화해했고,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글쓰기 과정에서 내 마음에 기적이 일어났다.


내 몸에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날 작가님의 문자가 그토록 반가웠던 건, 마음에서 ‘치유의 기적’ 이 일어날 것을 예감해서가 아닐까?


이제 나의 일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화가 날 때라도 내 마음을 정확하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완벽함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거기에 매몰되기보단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 너 다운 행동을 한 거야’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나는 행복하다.





글쓰기 클래스 신청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https://link.inpock.co.kr/yuri.healer​​​





<나를 만나는 글쓰기> 수업 소식을 블로그에서 만나 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