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잔혹사 - 400만원, 아팠던 기억에서 역전의 추억으로
K신문 기자님과 심리상담같은 힐링의 2시간을 보낸 뒤,
도광양회의 마음으로 보낸 2달여가 지났다.
권고사직과 일반해고 운운했던 그 상황 속에서 도망치듯 러시아로 떠나,
즐거워야 할 해외여행의 며칠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썼던 여행기록이 있었다.
"개와 등대의 시간"을 끝내기로 했던 그때였다.
2월의 어느날 그 기록을 다시 들췄다.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여행한 추억들중에 "끝"까지 제대로 기록을 남겼던 적이 없다. 이제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이 되었고, 이제는 좀 끝까지 제대로 기록을 남기는 여행기를 한번 쯤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
어느덧 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이제 앞으로 3시간여 뒤면 나는 서울로 다시 떠나게 될 것이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이번 여행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다.
내 고민거리를 여행 중간중간 생각해내고 푸는 데는 역시 실패했다.
즐거운 순간에 중요한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다시 서울로 간다.
내 30대 첫 해외여행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가.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고, 큰 결심을 서게 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그 기록을,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마무리할 생각이다.
퇴사 2주 전에 썼던 그 기록을, 2년이 지난 시점에
침대 맡에서 잠들기 직전에 다시 봤다.
2년 전 그때 생각이 나서 코가 찡했다.
마지막 문장에서 오랫동안 내 시선이 멈춰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마무리할 생각이다."
옳은 말이었다.
나의 행동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끝까지" 마무리하는 시도는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짐하며 잠들었다.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집 앞에 배달된 K신문 1면과 여러 면에 걸친 기획기사를 봤다.
헤드라인들이 화려했다.
“밤 10시 퇴근은 반차, 12시가 칼퇴, 새벽 2시 넘어야 잔업”
"열정 같은 소리말고, 수당 제대로 달라"
"만들던 게임이 시장성 없다고...회사 팔리더니 나가라"
"우리네 청춘 저물고 저물도록, 게임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시민단체 “게임 개발자 장시간 노동 안 하게 규제를” “산재 조사 철저히 해야”
신문 1면에는 한때 내가 다녔던, 수도권 내륙지방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형형색색의 불빛이
건물 가득 들어찬 빌딩의 사진이 커다랗게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세상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야단이었지만,
솔직히 다 필요없고,
내 마음은 오로지 이 기사들로 요동쳤다.
나는 그 다음 달, 서울시민들의 노동권익을 대변하는 서울시 노동권익 관련 민간위탁기관에 입사했고,
K신문의 그 기자님은 "이 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국회에서는 N사 노동자의 돌연사와 "크런치 모드"에 대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곧 이어 벌어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은 실제 N사 노동자의 과반수가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했고, 수십억에 달하는 체불액이 발생한 것을 적발했다.
곧 이어 고용노동부는 IT, 게임업체 80여곳에 대한 집중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스타트업", "젊은 회사", "첨단", "열린" 운운했던 그 업계의 95%가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내가 늘상 해왔던 우스갯소리,
"차라리 재벌이 낫지, 삼성, 현대, LG, SK 이런데는 사람들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해. 그런 곳들은 오히려 법을 위반하기가 진짜 힘들어. 진짜 사각지대는 그런 곳에 있지 않아. 진짜는 따로 있어."
라고 했던 말이 새삼 수치로 확인됐다.
나는 N사에게 이런 경험이 다 교훈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N사도 이런 경험을 통해 뭔가 배우는 게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이 다 교훈이 되라고 이렇게까지 그 회사에 반응을 하는 것이니
모든 걸 다 이해해줄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회사의 관점이었으니까.
보도가 나온 몇달 뒤, "전현직 임직원 2년치 미지급 임금을 정산하겠다"라는 발표가 있었다.
N사의 홈페이지에 있던 퇴사자들에 대한 "보상금"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퇴근교통비 1.3배"에 해당하는,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금"이었다.
노동법을 모르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사실은 노동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것이 꼼수란 것은 대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체불임금에 대한 정산이면 임금 정산을 새로한 것이기에, 그동안 받아간 퇴직자들의 퇴직금도 죄다 재산정을 했어야 정상이다. 퇴직금 산정의 대상인 평균임금도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재산정은 없었다.
심지어 퇴사자 "보상금"은 기타소득으로 제세공과금 22% 세율을 떼고 지급했다.
기타소득도 80% 필요경비 인정되면 4.4%를 떼는 게 맞는 것이고, 미지급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면 근로소득으로 간주하여 세율을 매겼어야 하는데, 정말 보상금으로, "경품 주듯이" 지급한 것이었다.
퇴사자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갔고, 문서에 서명 하나 하고 받아가면 된다고 했다.
그들은 내게 보상금을 알려줬다. 4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그러면서 "문서" 한 장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이건 모 시민단체(민주노총이라고 되어 있었다.) 에서 저희 N사를 고발한 것에 대해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뜻을 밝히시는 확인서인데요. 동의하시면 서명하시죠."
"그럼, 동의 안하면 서명 안해도 되나요?"
"아뇨. 동의를 하지 않으시면 지급이 보류 되십니다."
"그럼 무조건 서명하란 이야기잖아요."
"아...네...뭐 제가 가이드 받은 바에 따르면..."
기가 막혔다.
하지만 당시 나에겐 당장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과, 공인노무사 준비를 위한 인강, 학원비가 필요했다.
새삼 깨달았다.
한번 같이 죽어보자 하고 내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쉽다는 걸.
민주노총이 나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당연히 받아야 할 내 돈을 받기 위해 그들의 고발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회사는 사람 함부로 쉽게 쉽게 짜르면서 돈 몇 푼 아끼려다 몇 달 동안 연이어 큰 코 다치고 있었다.
그거면 됐지 싶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회적 명예회복을 달성하는 것,
나에겐 돈보다 그것이 백배 천배 소중한 가치였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이 여러 의원실에 추가적인 제보를 할 것이었다.
곧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국정감사를 하면 어떤 의원이든 실적을 올리고 싶어한다. 그 어떤 제보도 허투루 듣지 않게 된다.
이후에 나도 보좌진을 해볼 때, 새삼 느꼈다.
내용이 있고, 기록이 있고, 파급력이 높게 평가되는 제보는 정말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들이다.
결국 N사는 국정감사에 소환되었다.
이 황당한 체불임금 산정에 대해서도 국정감사장에서 성토가 이어졌다.
기존에 보도가 나온 노동실태는 물론이고
과로 관련 질병이 해마다 증가한 점도 국감장에서 지적되었다.
회사는 결국 채용을 더 늘리고 초과근로수당을 다 지급하겠다, 사내 문화도 바꾸겠다, 노동시간 단축하고 장시간 근로 억제할 수 있는 사내규정을 마련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
그 장면들을 모두 생중계로 봤다.
2년 전,
N사에서의 한 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모 의원과 회사 사이가 안 좋아져서 국회로 팀 전체가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그때 나를 괴롭혔던 사수 H가 국회 둔치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농담이랍시고 내게 말했다.
"나중에 여기말고 국회 가 있는 거 아니에요?"
내가 뭐라 대답을 하려고 할 때,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거무튀튀했던 팀장 M이 내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얘가 여길 어떻게 와? 올 수나 있겠어? 와봤자 어디 쓸데없는 이상한 규제 정책이나 만들고 있겠지 뭐"
(그가 말하는 "이상한 규제"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웹보드게임물(고스톱 포커) 규제와 그 외 게임켤 때 의무적으로 동의해야 하는 약관 내용에 대한 규제 등을 말했다.)
'그래, 내가 지금 국회에 가진 못했지만,
거기서 일하진 못해도 당신이 말하는 "이상한" 규제는 확실히 내가 기여한 것 같네.'
란 생각이 들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 "신삼국"의 한 장면에서 따온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2017년은 서서히 저물어갔다.
2017년은 나에게 치유의 해였다.
안 좋았던 기억, 어두웠던 추억들이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절대 잊을 수 없던 기억들이 추억으로 미화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의기소침해 차마 입밖에 꺼내지 않던 이야기들을 술자리에서 가볍게 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나에겐 이것이 진정한 치유였고, 힐링이었다.
2023년 9월, 국회에서 대법원장 후보자 청문회를 준비했던 어느 날,
자정을 넘은 시간 택시를 타기 직전에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다.
그때 쓴 글이 이랬다.
오 오랜만에 N때 생각나네 ㅋㅋ
오늘 퇴근해서 오늘 출근하면 오늘 퇴근 노려봅니다 ㅋㅋ
나에게 그때의 기억은 더 이상 어두운 기억이 아니었다.
나의 삶에 가장 자랑스러웠던 역전의 기록 중 하나가 되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