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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잘못이 아니었다

동료의 권고사직이 남긴 회한과 위로

by 유노유보

타인의 불행을 듣고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면, 나는 나쁜 사람일까.

한때 나를 무능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휩싸이게 만든 나의 전 직장.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의 연락은 나를 복잡한 감정으로 끌어들였다.


윤종신의 <환생>을 출퇴근길의 BGM으로 듣던 어느 날이었다.

나와 W는 곧 그 단체를 나왔다.

둘 모두 새로운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N사에 나보다 늦게 입사했던 어떤 이의 메시지를 받았다.

본인도 퇴사하게 됐다고.


나에게 굳이 연락하여 의논을 한 용건은 무엇이냐면,

회사에서 너무 힘들게 해서 결국 퇴사하게 됐는데, 얘네가 권고사직으로 도저히 안 해준다고,

나보고 비법(?)을 가르쳐달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른 직원에게도 메시지를 받았다.

그 친구는 1년만 계약직으로 일하고 정규직 전환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약속받고 들어온 친구였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는 그 이야기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2개월 단기계약직으로 9번에 걸쳐 나눠서 계약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판례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이 정도 되는 계약의 반복적인 갱신에 대해서는

"갱신기대권"이라고 하는,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가 계약 갱신에 대해 합리적인 기대를 갖는 것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권리를 다퉈볼 여지가 매우 커지지만, 그때는 아직 2016년이었다.


그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욕심이 컸고,

그래서 내가 퇴사한 이후에는 내가 하던 일까지 대신하느라 계약직임에도

맨날 밤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했다고 했다.


그러다 1년째 되던 날,

회사는 그에게 정규직 전환은 안된다.

대신 6개월만 더 계약직으로 일해보고 정규직 전환 여부를 다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속상하고 화도 났던 그는 그 이후로 자기 할 것만 하고 시키는 일만 했다.

그 외에 자신의 근로계약서에 나와있지 않은 내용들,

구두로 은근히 했으면 하고 압박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정규직 전환이 안되고 23개월 될 때까지만 계약을 연장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 분노와 푸념이 섞인 메시지를 듣는데,

느낌이,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히 화가 나는 일이었다.

카톡으로는 그들에게 공감하고 위로하고 같이 분노했지만,


그런데도 뜻 밖에 내 분노의 옆자리에는 작은 '안도'라는 감정도 살포시 앉아 있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그 이상한 감정을, 그 정체를 문장화하면 이것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어... 내가 멍청하고, 태도가 글러먹었던 게 아니었어...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왜 내가 권고사직을 당한 전후로 12~3명 있던 실에서 5명이 이직을 해야 했는지,

그들은 온전히 그들의 뜻으로, 혹은 그들의 "역량"때문에 이직을 한 것인지.


그 순간 궁금증이 증폭되면서도, 더 이상 그런 궁금증이 의미가 없어진 순간이었다.


정말 화나는 일이었지만,

내게는 괴로움과 함께 안도감, 안심이 같이 따라왔다.

그것은 '길티 플레저'였을까.


나는 너무 오랫동안 괴로웠다.

나는 정말 무능한 사람일까.

나는 정말 글러먹은 사람일까.

문제는 나였던 걸까?

그들의 태도와 분위기는 내게 가스라이팅으로 느껴졌고,

그곳을 퇴사하고 나서 까지 계속해서 날 괴롭혀왔었다.


퇴사의 원인이 더 이상 나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자, 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그 순간 나에게 가장 다행이고 중요했던 점은, "나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는 내 자존의 회복이었다.


회사가 노동자를 부당해고하고, 권고사직을 시킬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돈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사회적 살인"이라고까지 이야기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회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역량에 대한 의문점을 남기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기대소득을 빼앗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회사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누군가의 경력과 자존에 관해 사회적 의문을 남겨버린다는 사실이다.


직장 내 괴롭힘 법이 만들어지면서도 한편으로 "조용한 퇴사", 퇴사 열풍이 몰아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직장인 개개인의 사회적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에게 그 무엇보다, 심지어 돈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명예회복이다.


그런 상념에 젖었던 2016년 연말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총선 당시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던 K신문의 기자가 차나 한잔 하면서 연락을 줬다.

그냥 안부인사차 오랜만에 연락했다고 하면서 길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요새 산업부에 왔는데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아이템 찾고 있는데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나는 최근에 내게 있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 당시 내게 연락이 온 이야기를 그에게 해줬다.

그는 무척 흥미로워했다.

재미있으니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내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밤 몇 시에 퇴근했고 언제 회식이었고, "크런치 모드"는 무엇인지, 수면실과 샤워실과 안마의자는 그곳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포괄임금제"계약 때문에 추가노동에 대해서는 돈 한 푼 못 받고 그저 퇴근교통비 명목으로 밤 10시까지 근무하면 1만 원, 밤 12시 넘어서 퇴근하면 1만 5천 원 줬다는 이야기,


주말에 4시간 이상 근무하면 3만 원, 8시간 이상 근무하면 주말에 5만 원 줬다는 이야기,

회식 때 자전거 끌고 왔다고 "태도가 글러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리적인 괴롭힘, "태움"과 비슷한 여러 일화들을 이야기했다.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3개월씩 6번 비정규직 계약을 맺은 사례도 있다는 것도 당연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내가 신입사원으로 있던 시기 영업이익만 1천억을 넘겼고 역대 최고 실적도 달성했지만,

그 해 성과급이나 인센티브는 전혀 지급되지 않았던 것, 스톡옵션이 지급됐어도 사직을 종용해서 회사를 나오게 되면 결국 그것도 단 한 푼도 못 받았다는 등의 내용도 마치 군대 무용담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다른 퇴사자들의 이야기도 들었기에, 더 이상 나만의 문제는 확실히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회사의 관점과 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각각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느 단체, 또는 누구와 이야기하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여러 가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이야기해 줬다.


그는 무척 흥미로워하는 표정이었다가,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이윽고 심각한 표정으로 열심히 노트북에 무엇인가를 적어나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드려도 되죠? 몇 번 더 연락할 거 같은데."


그러시라고 했다.


그 한 겨울 2시간여의 만남에서

나는 못다 한 심리상담을 다한 듯한 후련함을 느꼈다.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K신문 기자의 타닥타닥 거리는 노트북 타자 소리가 멈추던 순간 깨달았다.

침묵은 가해자의 언어, 기록은 생존자의 언어라는 걸.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내게 인이 박히도록 쌓여만 갔던 잘못된 습관,

"자책"이란 그 잘못된 습관을 끊는데 겨울 한 계절이 꼬박 소요되었다.


자책이 멈추자, 나에겐 더 또렷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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