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과 마이크로매니징이 나를 잠식할 때
"일하는 당신 곁에"
내 가슴을 긁어대고 짓뭉개는 문구였다.
"분구필합, 합구필분"이란 말이 있다.
삼국지연의 거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로 기억한다.
"천하가 분열된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해지고, 천하가 합해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된다."
나는 이것이 인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N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제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에서 짜릿한 역전의 추억이 되었다.
고생과 고통은 이제 끝난 줄 알았다.
바닥 밑에 지하실을 경험했고, 지하실에서 이제는 좀 나온 줄 알았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연애, 새로운 도전...모든 게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 입사한 곳의 팀장과는 초반 몇 달은 잘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팀장도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드라이하게 감정을 빼놓고 보자면,
그는 굉장히 섬세하고 책임감이 정말 강했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성과에 대한 압박이 강하지 않아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압박은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되고 전가되었다.
팀장 본인도 일 때문에 마음이 힘들면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되는 사람이었다.
일 때문에 몸이 아파서 병가도 몇 번 냈다.
그 정도로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팀장은 점점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에 나오는 탈 라샤처럼
"팀장"이란 위치와 자신의 성과에 대한 압박감에 영혼을 잠식당한 것처럼 보였다.
"섬세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은 조직은 그래서 쉽지 않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 써야 하고,
조그마한 뉘앙스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누구보다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누구보다 "심기경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조직은 여성이 많은 이른바 "여초" 조직이었다.
성별에 대한 편견을 지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조직에서의 마지막 몇 달은 그런 나의 신념조차 흔들리게 만들 정도의 괴로움을 심어줬다.
평판관리와 정서노동의 과부하, 사소한 뉘앙스의 무분별한 증폭...
기준보다 눈치가 앞섰고, 사람보다 소문이 더 힘이 센 곳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팀장과 내가 잘 지냈다.
그러나 한 여성이 새로 팀원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그 여성에게 너무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 여성을 통해 나는 아무리 직장동료라도 절대로 그 어떤 이야기도 함부로 가볍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장난성, 드립을 섞은 이야기도
때때로는 진지한 비판과 모욕을 한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하며,
때로는 아예 하지 않은 말과 행동이 제3자를 통해 사실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 타깃은 내가 아니었다.
첫 타깃과 두 번째 타깃은 다른 여성들이었다.
나는 가볍게 넘어갔는데 그 여성에게는 가볍지 않은 모든 것들이 나와 그 타깃이 모르는 곳에서,
안 좋은 소문이 코로나19 확산되듯이 퍼져갔다.
그렇게 몇 달 새 나와 친한 두 명의 팀원이 퇴사했다.
그리고 두 번째 타깃인 여성 직원의 퇴사 때는
나 또한 다른 팀과의 소통, 팀장과의 소통을 잘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팀의 성과가 나지 않는 것, 강사와 소통이 되지 않는 일, 거래처와 소통이 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 점점 "내 탓"인 빈도, 그에 대한 힐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불명확한 업무지시에 대해 되물으면 왜 그걸 못 알아듣냐는 힐난이 돌아왔고,
그래서 나름대로 내가 헤아려서 업무를 처리하면
"이걸 왜 이렇게 했어요? 왜 얘기도 없이 그냥 마음대로 해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나에 대한 여러 안 좋은 소문들이 있다는 것도 점점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팀장의 한숨과 강도 높은 마이크로매니징이 시작되었다.
"노동권익"을 말하는 기관이지만,
그곳에서 수 차례 들은 말 중 하나는 다른 직장에서 너무나 흔히 쓰이는 말,
"한 번만 더 이런 식이면 이 바닥에서 매장시켜 주겠다."
는 말이었다.
노동법 교육 교안 점검, 스타트업 노동법 교육 등의 일을 맡아하다가,
창고관리, 물품관리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팀장은 어느 순간에는 나에 대해 모든 팀원들의 "다면평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하나 만들고, 나는 매일매일 내가 한 업무의 업무일지를 그 시트에 기재했다.
그리고 나의 업무에 대해 모든 팀원들 전체가 한두 문장으로 그 업무들에 평가하는 식으로 평가가 이뤄졌다.
구글 시트의 한 칸에 적힌 메모,
"창고 물품 관리가 똑바로 제대로 안되어 있어요. 전반적으로 일처리가 무성의합니다."
그런 한 두줄의 문장이 나의 1주일을 재단하곤 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나중을 대비하여 캡처해 놨다.)
팀장은 내게 말했다.
"2달 동안의 평가를 거쳐서 당신을 내보낼지 결정하겠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법 제정 몇 달 전 그 기관에서 관련된 여러 단체의 변호사님들을 모시고
"직장 내 괴롭힘 법 제정"을 둘러싼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그때 내 대각선 뒷자리에서 그 팀장은 말했다.
"기준이 되게 모호하네~"
그 기간 동안,
일요일 밤이 될 때마다 월요일이 제발 오지 않기를 빌면서 울었다.
여자친구는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말없이 나를 끌어안아줬다.
W가 없었다면 그때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 험담을 좋아하는 직원은 내가 업무에 불성실한 것 같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모자라,
면전에서도 나에게 훈계(?)를 늘어놨다.
나는 무력하게 알겠다고, 잘해보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내 숨을 더욱 조여왔다.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무력해진 상황에서, 마이크로매니징과 정서적 가스라이팅까지 당하다 보니
내가 정말 무능한 것만 같았다.
3년 전, N사의 M팀장이 내게 일반해고 운운하며 회사에서 쫓아낼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게 다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곳에서도 정말 큰 교훈을 얻었다.
진보니 노동이니 겉으로 말하는 "가치"는 사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 집단의 슬로건은 "일하는 당신 곁에" 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일하고 있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고민과 고통에 센티멘탈해져 있을 뿐,
나의 노동과 고민과 고통의 짐을 함께 들어줄 사람들은 없었다.
그 짐은 오로지 나의 몫이어야만 했다.
"노동존중"을 말하는 사람들에겐 노동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활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가"의 대의명분이란 외피를 걷어내면,
각자 불명확한 업무지시와 "실적"에 대한 압박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공명심 등이 어우러져 자신이 겪는
중압감을 다시 불특정다수의 타인들에게 발산하는
다수 여성들의 여러 커피타임과 옥상에서의 잡담이 집단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그런 환경이 있었다.
장시간 노동이 없더라도 사람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피폐해질 수 있는 직장이었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집 근처의 또 다른 지역의 노동 관련 기관 채용공고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도망치듯 이력서를 냈고, 면접을 봤다.
W와의 결혼 후 1달 만에 발생한 변화였다.
(지금은 그 민간위탁기관의 수탁기관이 바뀌었고, 기관의 슬로건도 바뀌었다.
따라서 지금 이야기하는 모든 일들은 지금의 그 기관과는 무관하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