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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Oct 27. 2024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이다.

<남자친구>속 수현에 대하여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적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일은 마치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나의 모습들을 거울로 반사해서 보는 일과도 같다. 거울에 맺힌 상을 보는 일, 그것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나의 마음들을 보는 일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내가 사랑하는 것은 보통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의 약점이 된다. 드라마 <남자친구> 속 수현과 진혁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연약하게 만들고 취약하게 만드는지 말해볼 수 있다. 정치인 아버지의 딸이자 정약 결혼을 통해 태경그룹의 아내가 된 차수현은 태경그룹 아들로에게 이혼을 당하고, 위자료로 ‘동화호텔’을 받는다. 수현은 호텔 경영에 매진하고, 호텔 경영권을 받은 후 4 년만에 업계 1위 호텔로 성장시킨다. 수현은 동화호텔을 크게 성장시켰지만, 동화호텔은 여전히 태경그룹의 소유에 있다. 태경그룹은 만약 동화호텔의 대표 차수현이 태경그룹의 이미지에 결점을 만드는 불상사를 만든다면, 동화호텔을 태경그룹으로 반환한다는 단서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해두었고, 그 조항은 강한 효력을 갖고 차수현을 압박한다. 여러 제약들에 묶여 있는 차수현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비범하지만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해서 평범한 사람으로 남아있는 과일가게 아들 김진혁이 바로 그 남자로, 수현과 진혁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진혁과 사랑에 빠지며 수현은 자신이 여지껏 살아온 비범한 일상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게 된다.


수현의 서사를 읽어보면, 수현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수현의 약점이자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수현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아버지는 태경그룹에게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이는 곧 그녀의 약점이 된다. 수현이 사랑하는 동화호텔 역시 그녀를 태경그룹에 예속되게 만든다. 태경그룹에 반발하고 맞서면, 수현의 동화는 더 이상 없게 될 테니까. 한편 수현이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와의 스캔들 역시 태경그룹의 이미지에 결점을 만들 여지를 갖고 있다. 이미지라는 것은 얼마든지 악의적으로 가공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수현이 사랑한 평범한 일상 역시,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잃어야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수현이 사랑하는 것들은 이렇듯, 수현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이다. 드라마 <남자친구> 속 수현의 반대자들은 수현의 이 연약한 지점을 사정없이 공격하고, 그런 이유로 그녀가 사랑하는 세계는 드라마가 지속되는 동안 수없이 상처입고, 부서진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연약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한 부분이다.

수현이 사랑하는 세계는 수현의 반대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수현은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가 망가지는 것을 더이상 지켜 볼 수 없기에 기꺼이 사랑을 포기하려 한다. 만약 차수현이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를―이 말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포기한다면, 수현이 사랑하는 그 세계는 온전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수현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한다.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하는 세계는, 마찬가지로 그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차수현이 그 세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포기하더라도, 차수현을 사랑하게 된 차수현이 사랑하는 세계는 계속해서 수현에게로 밀려 갈 것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일은 나의 일”인 것이라는 사랑에 대한 그 위대한 은유처럼, 사랑을 하는 일이란 바다가 파도를 만들어 내는 일과 닮았다. 비록 수없이 부서지더라도, 다시 수없이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꾸준하고 진실한 사랑의 힘은 수없이 좌절되고 상처입더라도 그저 계속해서 해변으로 밀려간다. 파도는 몇번이고 암석에 부딪혀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계속해서 몰아치는 이 파도를 막을 수는 없다.


사랑은 분명 그 사람의 연약한 지점을 드러내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연약한 것들을 향한 마음은 꾸준한 힘으로 계속해서 몰아치고, 그 꾸준한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파도는 수없이 부서지더라도 계속해서 밀려들어 온다. 단조롭고 정체되어 있던 바다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몰아치는 파도로 생명력을 갖는다. 이렇게 사랑으로 활기를 되찾은 바다에서, 비록 물거품이 되어서라도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수없이 부서지고, 꾸준히 몰아치는 그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뭍에서만 머물던 우리를 더욱 더 먼 곳으로 데려 갈 것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 <남자친구>, TV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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