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과 세계에 대하여
그저 만들어진 픽션 속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그런 인물들이 건네는 말이 때때로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은 참 웃긴 일 아닌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나의 존재도 나의 삶도 모르는 인물이 던진 말 한마디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얼굴이 오랫동안 기억속에 남아, 내 마음 어딘가를 서성이는 일은 정말 웃긴 일이지만, 그런 일이 내게만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내게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스토리 텔링에 기반을 둔 영상 산업(영화, 드라마)이 지금처럼 흥행했을리가 없을테니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책 속의 인물들도 우리에게 뜻밖의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허구의 인물이 이렇게 위안을 주는 일은 정말이지 아이러니하다. 픽션 속 인물들이 실존하는 존재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 그 작동 양상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 속 인물들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어떤 인물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당신의 삶이 지금 나의 삶과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지만. 우리는 닮은 데가 있고, 그렇기에 당신과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말을 당신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계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반목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기도 하고 연대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픽션 속 인물들마저 공감하는 인간의 사회적 공감 능력
인간의 사회적 공감 능력이 허구의 인물들마저도 이해하고, 그들에게마저 감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는 것이 아닐까. 이 공감 능력이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게 작동하여, 우리가 나와 다른 타인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함께 웃게 만드는 것일 테고 말이다. 다만, 우리의 공감을 받으려면 허구의 인물들은 아주 잘 짜여져서 실제 인물들처럼 느껴져야 할 것이다. 너무 허무맹랑하면 오히려 와닿지 않는 것처럼, 인물들의 고뇌와 성격이 어느정도 현실적일 때에만 우리는 그들에게 깊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현실적인 인물이어야 공감을 쉽게 할 수 있을테지만, 주류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이다. 그들은 평범함과 거리가 먼 비범한 인물들인 소위 ‘알파’로 설정되어 있다. 어찌됐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그들의 캐릭터성이 확실해야 할 필요가 있고, 캐릭터성은 비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두드러진다.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확고해져야,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고,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야 드라마도 영화도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테니까 별 수 없는 순리처럼 보인다. 실제로 알파 주인공(재력가, 전문직 종사자, 가난한 천재)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흥행 몰이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아름다운 허구의 세계로 탈주
이렇듯 비현실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매체들은 약간 오락거리처럼 소비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어떤 장면들은 삶의 어떤 순간에서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들의 말과, 그들의 표정, 그들의 눈빛이. 모두 지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어느순간에 불현듯 떠올라 나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비록 발칙한 허구적 설정과 발칙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라고 해도, 잘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들이라면, 그들의 어떤 순간에서 내 삶이 겹쳐보이면서 깊은 자국을 남긴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드라마에 대해 말한 것처럼, 드라마가 삶의 지루한 부분들을 제외한 것(Drama is life with the dull parts cut out)이라면, 삶의 슬프고 즐거운 순간들이 드라마에 담겨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발칙한 허구로 가득한 드라마라도 기꺼이 보는 게 아닐까. 그 행복한 순간을 함께 느껴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들의 슬픈 순간도 기꺼이 함께 느껴보고 싶어서 말이다.
행복한 순간도 슬픈 순간도 기꺼이 함께 느껴보고 싶어서 드라마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가 기대하는 드라마의 어떤 장면들은 대부분 행복한 장면들이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일상에서 잠시나마 행복한 허구의 세계로 탈출하고자 하는 우리의 기대가 드라마에 투영되는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가 따뜻한 해피엔딩을 채택한다.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까, 드라마에서까지 마음을 쓰기가 힘든 청자의 심리를 반영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니, 현실과 괴리감이 심한 드라마 속 인물들을 현실에 이어본다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내가 처음 드라마 속 인물들의 상황에 몰입하여 글을 쓰는 작업을 기획했을 때, 주변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글을 쓰겠다니. 너무 허무맹랑한 작업이 아닌가라고 묻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그 말처럼 많은 경우 허무맹랑했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혼자 회의감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글을 쓰려고 보니 의외로 좋은 드라마가 많더라.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언어가 부족하고 표현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해서 멈칫한 순간들이 많았다. 어떻게 그 허무맹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글을 썼는지, 나도 잘 이해가 되질 않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을 지속시키는 데에 드라마틱한 픽션이 주는 위안의 힘이 컸던 것 같다. 그렇다.
현실에서 지나치게 빗겨간 이야기들이 오히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상의 상처와 멀미로 시름하는 마음의 도피처가 되어 준 것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에 몰입해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해보고 글을 쓰는 작업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 글들이 일상으로부터 탈주하는 탈주의 연장선이 될지, 허구와 일상을 잇는 가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 브런치 북에 담아놓은 글들이 어떤 역할을 하든 그것이 드라마가 남겨놓은 감동과 위안을 조금 더 연장해주는 방향이 될 수 있기를. 작은 오락거리라도 될 수 있기를, 이 브런치북의 제목처럼 어떤 식으로든, 달콤한 탈주<Sweet escaping>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