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의 기적
벨기에 친구는 열심히 운전해서 우리를 브뤼셀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해 주어서 너무 고맙고 즐거웠다. 미리 예정된 것처럼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한국에 놀러 오면 좋아한다는 닭갈비를 잔뜩 사주고, 열심히 가이드하겠다 다짐을 하며 벨기에 친구와의 포옹을 끝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한 시간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기차역 주변의 숙소로 향했다. 기차역 주변에 예쁜 그림들도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유럽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날씨가 맑았고, 그제야 푸른 하늘을 보며 마음도 청량해졌다. 아침 겸 점심으로 독일식 케밥인 되너(Döner)를 먹으러 나섰다. 친구가 교환학생 시절, 즐겨 먹었다는 음식이라고 해서 무척 기대를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기대만큼 맛있었다.
되너를 든든히 먹고 나서, 프랑크푸르트에 온 목적인 식물원을 보러 갔다. 유럽의 최대 규모라고 해서 무척 기대를 했는 데 그냥 동네 근린공원 수준의 사이즈인 거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입장료도 거의 9천 원 가까이한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더욱 볼 게 없었다. 집 주변에 있는 과천 대공원이 더 크고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꽤 멋지다. 그 당시 툴툴거렸지만, 역시 지나고 보니 사진 속 기억에는 좋게 미화가 되어있다.
사람도 별로 없고, 뻥 뚫린 정원을 중심으로 친구와 대화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도 친구와 나는 함께 웃으며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둥근 벤치에 앉아서 겨울 햇살을 따스히 받으며 앉아 있었는 데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왜 유럽사람들이 한번 햇볕이 있는 곳에 자리 잡으면 잘 안 일어나는지 알 것 같았다. 잔잔한 잔디밭을 걸으며 정신없이 진행된 여행에서 잠깐의 낮잠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날씨가 살짝 더 추워질 때쯤, 뮤지엄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빈 페트병을 환불하러 가게에 들렀다. 독일은 음료수를 사면 음료수 값에 용기 값이 포함되어 있어서 마트에 가져다주면 용기 값을 환불받을 수 있다. 친구는 독일에 거주할 때 병이 잔뜩 모이면 환불하러 가게에 갔다고 한다. 나는 병 하나를 모았는데 그거 환불받겠다고 온 동네 마트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환불이 가능한 가게를 찾았으나 줄이 매우 길었다. 마트 들어온 김에 뭐라도 살까 싶어 둘러봤으나 딱히 살 것이 없었고, 뻘쭘하게 빈 병 하나를 덜렁 들고 줄을 섰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캐셔가 겨우 이거 하나 때문에 왔니 하는 표정으로 300원 정도를 돌려주었다. 그것 참.. 병값을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아는 이상 그냥 버릴 수도 없고, 친환경 실천은 역시 쉽지 않다.
뮤지엄 가기 전에 오페라극장도 가봤는 데 그날은 공휴일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쯤 되니, 오페라와의 연은 없나 보다. 마지막 희망인 뮤지엄을 갔으나 공사로 문을 닫았다. 그나마 주변이 예뻐서 적당히 구경을 하고, 트램을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날이 좋아서 노을이 꽤 오랫동안,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오래된 건물과 신식 건물이 잘 어우러진 신도시 느낌을 주었다. 지하철 내부도 예쁘고, 도시 전체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예술적 감각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그런데, 왜 유럽 지하철이나 화장실에서는 고농축 지린내가 진동하는 것인가... 모든 역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깔끔해 보이는 공항 화장실 내부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에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 기차 시간보다 조금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기차 시간이 10분도 안 남은 상태에서 우리가 타야 하는 기차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이건 또 무슨 경우람.. 하염없이 전광판을 들여다보는 나와 달리 친구는 이상함을 감지한 듯 재빠르게 인포메이션을 찾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타야 하는 직항 열차가 없어지고, 대신 여러 번 경유를 하고 더 늦게 도착하는 기차 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직원은 태연하게 바뀐 열차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종이를 건네주었다. 아니 그럼 안내 방송을 해주던가... 한국식 서비스에 익숙한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역시 유럽 경험치가 있는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돌발상황에 태연하게 대처했다.
무사히 열차를 타고, 예상시간보다 훨씬 늦어진 상태로 환승역에 도착했다. 이미 깜깜해졌는 데 야외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승강장은 매우 추웠다. 밖은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너무 어둡고 무서웠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와 서로 의지하며 역에서 거리로 나섰다. 너무나 다행히도, 늦은 밤이었지만 역 밖에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딱 한 군데만 문 연 식당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며 있었다. 식당은 꽤 사람들이 있었고, 따스했다. 마침 우리가 좋아하는 되너를 파는 식당이었고, 테이크아웃까지 가능해서 나중에 숙소 도착해서 먹었는데 맛도 있었다. 조금 위험했지만 도전은 대성공이었다.
독일에서 다시 프랑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