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니스

니스 너마저

by 꿈청이

아직 마지막 희망이 남아있다. 고대하던 프랑스의 남부 휴양지, 니스를 가는 것이다. 여행의 종착지인만큼, 숙소도 기존에 묵었던 곳보다 3배 비싸고, 일정도 2박 3일(물론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다)로 대부분 당일치기였던 다른 도시에 비해 비교적 여유 있게 잡았다. 짧은 기간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몸이 짐짝처럼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따스한 휴양지로 떠나는 발걸음과 마음은 가볍고 기뻤다. 마르세유에서 버스 타고 3시간 정도 달린 끝에 어두워진 니스 정류장에서 잔뜩 불어난 가방을 들고 내릴 수 있었다.




'음... 근데 왜 썰렁하지?? 밤이어서 그렇겠지?' 불안한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외투 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친구와 나는 밤 9시 무렵에도 문을 연 식당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이 있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도 꽤 많아 보였다. 사실 식당 마감 시간은 넘겼지만, 웨이터는 다행히 지치고 불쌍한 여행객들을 받아주었다. 나는 배가 고프기도 했고, 마감시간에 맞춰서 온 게 미안해서 급하게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하려고 했다. 그러자 웨이터는 깜짝 놀라면서 진정(calm down)하라며 우아한 몸짓으로 나를 교정(?)하려고 했다. 그러든 말든 나는 계속 주문하려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주문을 했다. 사시미가 있길래 '바닷가에서는 역시 회지' 하며 메뉴를 골랐다. 그런데 육회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메뉴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석류알맹이가 여기저기 뿌려진 소스와 올리브 유가 잘 버무려진 소고기 육회는 매우 조화롭고 맛있었다. 고기는 바짝 익힌 것만 먹는 친구도 인정한 맛이었다. 프랑스에서 육회를 만날 줄이야. 이런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결과까지 좋아서 더 기분이 좋고 재미있었다.


20230224_213656.jpg 맛있는 프랑스 육회!


식당에 오기 전 호텔 체크인을 했었다. 그런데 분명 싱글 사이즈 침대 두 개로 요청했는 데, 킹사이즈 침대 하나뿐이었다. 왜 침대가 하나뿐이냐고 말하자, 지금 침대의 매트리스가 더 좋은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원한다면 싱글 사이즈 침대 두 개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각각 침대를 쓰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바꿔달라고 요청을 했고, 직원들은 방에 있던 큰 매트리스를 빼고 작은 매트리스 두 개를 들고 와서 싱글 침대 두 개로 마련해 주었다. 방을 바꿔주나 했는 데 매트리스까지 들고나가서 좀 미안했다. 어이없게도 침대 두 개를 간격 없이 같이 붙여놔서 킹사이즈 침대 한 개나 비슷했다. 오히려 전체 면적으로는 더 작아진 것 같다. 오래간만에 야무진척 하면서 요청한 것이었는 데 그냥 가만히 있을걸 괜히 아쉬워졌다.


20230225_110450.jpg 숙소에서 내다본 바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저렴이 숙소만 찾았던 나의 선택을 묵묵히 따라주었던 친구는 니스만큼은 오션뷰를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기에 우리 방은 바로 앞바다가 훤히 보였다. 그런데 날씨는 영 맑아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간간히 비바람까지 불어대서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이가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무 기대가 커서 실망도 컸다. 한국인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같은 민족이지만 외국에서 마주치면 괜스레 모른 척하게 된다. 제주도가 백배 낫다며 툴툴거리면서 아침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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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근처 카페에서 크레페와 샌드위치를 티와 커피랑 같이 먹었다. 날씨는 춥고 흐렸지만 바다를 바라보면서 먹는 음식은 맛있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던 찰나, 식당 직원이 동료와 식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큰 소리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파리 카페테라스에서 받았던 담배 연기 공격을 여기서도 당할 줄이야.. 그럭저럭 아침식사를 끝내고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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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축제야?? 2월의 황량함을 감추려듯, 카니발을 개최한다고 한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즐겁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축제는 곧 도로의 통제를 의미했다. 게다가 숙소 앞에서 고성방가를 참아야 하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니스 내에서 택시를 타야지 이동이 가능한 곳을 가는 도중, 버스도 운행을 안 하고 택시도 가다가 길이 막혔다고 중간에서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 결국 우리는 칼바람에 맞서며 양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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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만 좋았더라면, 니스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좀 더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그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나마 니스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에비앙 가격이 가장 저렴했다. 덕분에 여유 있게 구매한 에비앙으로 세수하고 양치하는 호사를 누려봤다. 그래도 등산도 하고, 샤갈 전시회도 가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마치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처럼 구석에 있는 슈퍼마켓을 찾아내서 장을 보고, 길거리 플리마켓에서 기념품을 구매하고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를 돌아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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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인종차별로 추정되는 것도 당해봤다. 피자를 시켰는 데 인도인처럼 보이는 웨이터가 우리의 주문을 매우 늦게 받아주었으며, 나중에 계산할 때 거스름돈을 동전으로만 잔뜩 주면서 약간 집어던지듯이 줬다. 막상 그 자리에서는 상황파악을 못하고 떠났는 데 계속 생각이 났다. 피자는 맛있게 먹어서 괜찮았지만, 찝찝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은 잔상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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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전시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강렬한 색감과 거대한 창작물이 내뿜는 에너지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피곤함 때문에 많이 앉아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전시와 어울리는 연주회를 무심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특별히 전시회를 다니진 않았는 데 프랑스에서 살게 된다면, 일상에서 산책하듯 예술 속으로 녹아들게 될 것 같았다. 물론 국내에서도 전시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동안 전시회는 나에게는 타의에 의한 특별한 이벤트 정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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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562.JPG 여행완주를 기념하며 체리 맥주 반잔 건배! (알코올이 약한 나는 저만큼 마시고 다음날 매우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기분과 반팔을 챙겨 온 나의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추위가 계속되었다. 고단한 일정을 끝 마치고 나니, 오히려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친구와 나는 둘 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대신, 여행 마지막을 어떻게든 축하해주고 싶었다. 상의 끝에 근처 호텔 레스토랑에서 애피타이저와 무알콜 칵테일로 축하하기로 했다. 저녁시간이어서 단출한 주문을 시키는 것에 괜히 눈치를 보았지만, 주인은 더없이 친절했다. 크림치즈가 들어간 호박수프를 시켰는 데 추운 날씨에 찾아온 따스함과 아름다운 맛에 매료되었다.


완벽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결 마음이 풀어진 상태로 숙소로 돌아와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카니발 폭죽이 빵빵 터지기 시작했다. 누워서 보는 폭죽이란!!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짜릿함..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만났던 다양한 감정들을 분출하듯 오랜 시간 폭죽놀이는 계속되었다. 오션뷰 값어치를 보여주는 화려함 속에서 친구와 나는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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