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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1 07화

가벼움의 인문학

법구경

by 조융한삶



진지함이란, 삶을 무겁게 대하는 태도다. 그리고 진지함에 대한 진지함이란, 진지함 자체를 무겁게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종종 가벼움을 불성실함으로, 진지함을 무거움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가벼움은 진지함의 반대가 아니다. 가벼움은 진지함에 대한 다른 접근이다.


가벼움이란 진지함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다. 진지한 것을 진지하게 대하되, 그 진지함에 매달리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가벼움의 의미다.


삶은 진지한 것이되, 진지함 자체는 가벼운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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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가벼워야 한다. 이것은 여행의 절대 법칙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는 멀리 갈 수 없다. 하지만 여행자가 가벼워야 한다는 것은 여행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여행을 진지하게 여기기 때문에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곳을 가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잠깐 여행하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가벼울 권리, 가벼울 의무가 있다. 삶을 진지하게 살기 위해서 진지함을 가볍게 다루어야 한다는 의무.


진지함에 대한 진지함은 불필요하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중요함을 절대화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의미 있는 것을 의미 있게 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의미에 집착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삶은 충분히 무겁다. 사랑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 이 모든 것들이 삶에 무게를 더한다. 하지만 그 무게를 또 다른 무게로 감당할 필요는 없다. 무거운 것을 무겁게 다루면 더 무거워질 뿐이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다룰 때 비로소 균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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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미묘한 균형점을 발견한다. 삶의 무게를 부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무게에 압도당하지도 않는 지점. 진지함을 포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지함에 매몰되지도 않는 지점. 이 균형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가벼움이란 결국 관점의 문제다. 같은 현실을 보되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그 거리가 정확하게 측정될 때 진정한 가벼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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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지혜를 다시 떠올려보자. 여행자는 무엇을 가져갈지만큼이나 무엇을 두고 갈지를 안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지함은 가져가되, 진지함에 대한 진지함은 두고 가야 한다. 의미는 가져가되, 의미에 대한 집착은 두고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벼운 진지함의 미학이다. 진지하되 가볍게, 가볍되 진지하게. 이 역설적 균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진지함에 매달리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세상에서 태어나 살아 숨 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하고 기적이고 축복이고 행운인 것인가.


우리는 이 넓디 넓은 우주의 먼지보다도 작은 지구에
잠깐 여행 온 자아인 것이다.


근심과 고통, 미련, 이별이 있기에
지금의 여행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번뇌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지구가 태양을 100바퀴 돌 동안 살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인 것이 인생 아닌가.


인간의 역사, 이념, 철학조차
우주에 비하면 의미 없는 찰나의 순간일진데,


어찌 삶이란 게 그리
고민하고 심각해질 것이냐.


순간순간 행복을 즐기면서 살다가
후회나 미련 없이 죽는 것이


부처가 말하는
성도이며 해탈이며 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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