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일곱 기둥
건축은 공간을 조직하는 일이자 시간을 축적하는 일이다.
존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라는 공간을 설계하고, 매일의 시간을 벽돌로 삼아 자신이라는 건물을 쌓아올린다. 아름다움은 존재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무엇으로 건축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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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바라봄의 윤리학
시선이란 무엇인가. 시선은 눈빛과는 다르다.
눈빛이 내면의 창이라면, 시선은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느냐가 무엇을 보느냐를 결정한다.
시선에는 정치가 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이는 자 사이의 권력 관계.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런 권력의 시선을 치유하는 시선에서 나온다.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 소유하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 대상화하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
시선은 상호적이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변증법.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놓는다. 시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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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내면의 투명성
눈빛은 가장 정확한 언어다. 정확함에는 고통이 증류한 순수함이 있다. 증류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본질만을 남기는 과정이다. 고통은 우리에게서 허영과 위선, 가식을 제거한다. 그리고 가장 순수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을 남긴다.
눈빛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응축되어 있다. 웃음의 시간, 눈물의 시간, 절망의 시간, 희망의 시간. 그 모든 시간들이 섞여서 만들어내는 고유한 색깔. 이것이 바로 그 사람만의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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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영혼의 지문
목소리는 영혼이 만들어내는 유일한 음향이다. 지문처럼 세상에 같은 것이 둘은 없는 고유한 진동. 목소리는 살아가면서 만들어진다.
목소리에서 진실이 새어나온다. '새어나온다'는 표현은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암시한다. 우리는 보여주려고 하는 것보다 새어나오는 것에서 더 깊은 진실을 발견한다.
목소리는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목소리가 채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목소리는 공간의 질감을 바꾸고, 공간의 온도를 조절하며, 공간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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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관계의 조율술
매너는 내면이 외면으로 번역되는 방식이다. 번역에는 언제나 손실이 따르지만, 좋은 번역은 원문에 없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좋은 매너는 좋은 번역이다. 내면의 선량함이 외면의 우아함으로 번역될 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매너는 관계의 공간을, 상황의 공간을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조직하는 기술이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계산하고 배려하는 것. 이는 일종의 윤리적 감각이다.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매너가 탄생한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세심한, 겸손하면서도 품위 있는 그 미묘한 균형이 좋은 매너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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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취. 기억의 화학
체취, 혹은 향수는 존재의 서명이다. 서명이란 자신을 증명하는 동시에 자신을 책임지는 행위다. 어떤 향을 선택하느냐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향은 시간을 조작하는 화학이다. 특정한 향을 맡으면 특정한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향으로 시간을 저장하고 호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수의 선택은 시간의 설계와 같다.
향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가장 가벼운 존재이면서, 기억 속에 남는 가장 무거운 존재이기도 하다.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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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고요한 웅변술
침묵은 소극적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 선택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때로는 침묵이 어떤 말보다 강력한 언어가 된다.
진정한 웅변가는 말이 아니라 존재로 설득하는 사람이다. 침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용기, 존재 자체로 승부를 거는 용기.
침묵에서 나오는 고요한 존재감을 동경한다. 소리 없이 울리는 종처럼, 말없이 말하는 웅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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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 일상의 시학
생활이란 매일 반복되는 행위들의 총합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방식, 커피를 마시는 방식, 책을 읽는 방식, 사람을 만나는 방식. 이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존재를 구성한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생활습관은 무의식의 건축술이다.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기에 더욱 진실하다. 어떻게 걷고, 어떻게 앉고, 어떻게 웃고, 어떻게 먹는가.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말해준다.
태도는 세상을 대하는 자세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매순간 미학적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그 결정들이 모여서 우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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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라는 종합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존재의 방식이다. 그리고 존재는 일곱 개의 기둥으로 건축된다.
시선과 눈빛, 목소리와 매너, 체취와 침묵, 그리고 태도.
이 모든 재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유한 조화, 그것이 바로 그 사람만의 아름다움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동적인 과정이다.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승화시켜가는 끝없는 여행. 이 과정적 아름다움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건축가다. 자신이라는 건물의 건축가. 매 순간 우리는 미학적 결정을 내린다.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존재 자체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원래 저의 롤모델은 잘생긴 사람이었어요.
키 크고 피부 좋고 눈썹도 길고 근육도 멋진.
어느 날 고급 레스토랑에 갔어요. 10년이 넘었는데도 다 기억이 나요.
남자 한 명이 들어왔는데 안에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직원이든 손님이든 모두 쳐다봤죠.
잘생겨서가 아니라 심한 화상때문에요.
머리털도 없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일그러졌는데 솔직히 징그러운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그렇게 테이블 매너가 좋은 사람은 그 때 처음 봤어요.
연한 베이지색 정장, 조끼, 타이, 셔츠, 구두, 은은하지만 무게감 있던 향수.
듣기 힘들게 갈라졌지만 정중하면서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
눈썹도 없고 눈도 일그러지고 눌러 붙어서 짝짝이인데 그 눈빛은 정말.
그 이후로 저는 제 얼굴을 못생겼다 잘생겼다로 평가하지 않아요.
거울을 봤는데 너무 심각한 얼굴이거나, 눈빛이 힘이 없거나, 방정맞게 말이 많아지고 톤이 높아진다거나,
미소가 가식적이거나 하면 제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이 같아 보여요.
전 잘생기진 않았지만 제 주변 사람 누구보다
빛나는 눈동자에 포근한 말투와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피부의 결, 코의 높이, 눈의 크기, 입술의 색이 기준이 아닌 다른 것을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삼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