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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창피함을 무릅써야 한다.

어느 시니어 창업가의 재기 성공 스토리

by 임요세프

성공이란 실패를 거듭해도 열의를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 윈스턴 처칠(1874~1965)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업가들이다. 20대, 30대 때는 그들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내게 다가와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기 마련이고, 그건 고스란히 나의 업무가 되기 때문이었다.

정규교육을 받고, 대학에 입학해 4년여 시간을 보낸 후, 20대 중반의 나이에 입사한 청년은 세상의 쓴맛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가와 가볍게 미팅하고, 서류를 안내한 후 사업장을 방문한다. 이후 페이퍼 워크(심사)를 통해 정책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참 간단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난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특이사항이 많은 회사일수록, 추가로 파악해야 할 내용이 생기고, 심사서 의견이 길어질 뿐이다. 이때 가끔은 갑질도 시작된다. 기업의 경영관리 담당자 혹은 대표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훈수를 두며,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해 보라 윽박지른다. 인생을 걸고 사업을 하는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파편적 지식, 대학 졸업장과 학점, 입사 경쟁률 같은 얄팍한 숫자에 취해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이가 들수록, 겸손, 경험, 지혜, 경륜의 가치 앞에 절로 숙연해진다.




한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 건, 그의 인생이 다가오는 것이라 했다. 더구나, 한 기업의 CEO가 사무실에 방문하는 건, ‘기관 대 기관’의 만남이다. 자연인 간 일대일 만남이라면, 기호와 성향에 따라 매칭(Matching)이 되어도 크게 상관없겠지만, 기업과 기관 사이의 비즈니스 면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함부로 눈길을 외면할 일이 아니다.


얼마 전, 50대 초반의 사업가 A가 나를 찾아왔다. 급한 걸음과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향해 걸어 들어오는 그를 응시하며, 거리낌 없이 대응하는 내 모습에, 새삼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격세지감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A와 나 사이의 시간 차는 크지 않았고, 왠지 사연 많은 것 같은 그의 인생 이야기가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A를 쳐다보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한다. 이제는 이 공간에서 오직 나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월 참 무상하다.


사연은 이렇다. 작년부터 벌써 세 번째 방문이라 했다. 올해 초에도 왔었는데,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니 2, 3주 정도 후에 다시 방문해 보시라 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침내(!) 오늘 찾아온 것이라 했다.


목적이 분명했던 만큼, 그는 앉자마자,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여느 기업가들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절실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민망함이나 창피함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낯짝 두꺼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최소한 나는 알 수 있다.

총 두 번의 거절에도 이유는 있었다. 처음은 A의 해당 업종 경력이 짧은데도, 6개월의 기간 만에 매출이 그렇게 증가하고, 거래처가 늘어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분명,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동 업계에 오랜 기간 종사한 숨은 경영실권자일 것이고, 크게 사업한 번 말아먹은 신용불량자(금융채무 불이행자) 아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 하나. 그리고, 당신은 그저 ‘바지 사장’ 아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 둘.


첫 방문 당시 그는 많이 긴장했고, 주눅 들었다 한다. 그의 우물쭈물한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또 6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동종업계 대표자로서의 경력 1년이 채워질 무렵, 그는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직원 누군가로부터, 대표자 취임 후 최소 1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니, 그 시간 동안 퍼포먼스(실적)를 낸 후 다시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두 번째 방문 시기마저 적절치 않았다. 아마, 속으로는 ‘당신들 인사발령이랑 업무가 무슨 상관이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상담 이후의 과정은 인수인계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터다.


그는 이번에도 별말 없이 발걸음을 돌렸고, 세 번째 방문 만에, 마침내(!) 나를 만난 거였다. 그의 태도가 온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아니 분명히, 한마디 했을 거다. 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씀을 그리 무례하게 하시느냐고. 그러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공감해 준 내가 참 기특했다! 한편으로는 야속했다. 이게 다 세월의 힘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시니어 재창업가였다. 써놓고 보니, 말이 그럴싸한데, 좀 더 사실적으로 풀어쓰면, 그는 이제 중년에 접어든, 사업에 실패한 적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재기의 기회를 모색한 도전자라는 점이다.


어느 학자(Shepherd)는 한 사람이 사업 실패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감정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회복’이라고 정의했다. 학자다운, 참 멋진 표현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회복은 쉽지 않다.


자존감, 끈기, 개인 역량, 취미, 자신감, 가족들의 지지, 네트워크, 종교, 사회적 지원 등의 요소가 사업 실패 후 회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사회과학 분야, 그중에서도 경영학 분야 실증연구 결과 중 상당수가,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게, 참 머쓱하다.



실증 연구가 큰 울림을 주지도,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질문이 뻔하고, 그 질문에 걸맞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답까지 정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질문지 역시 객관식이라서 찍기에도 좋다. (1) 매우 그렇지 않다부터 ~ (5)번 매우 그렇다까지. 참 간결 하기도 하다. 학문적, 통계적으로는 [Likert 5점 척도]라는 표현으로 객관성과 정당성마저 부여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방식은 심각한 한계를 갖고 있다. 바로, 동일(공통) 방법 편의(Common Method Bias) 문제다. 쉽게 말해, 연구 대상자들에게 질문지를 주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적어 내라고 하는 거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답을 할 가능성이 크고, 그 연구 결과는, 단연코,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난 이런 이유로 연구자의 길을 과감하게 접었다(!!)


* 물론, 요즘은 이런 동일 방법 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학문적 성취가 많아지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실제로,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업가의 회복 탄력성을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 결과를 산출하는 건 (내가 보기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모집단, 즉, 연구 대상자를 모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 후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갑자기 사업 실패 경험, 재창업 의지, 회복 탄력성, 재창업 기업의 성과측정을 위해 인터뷰 좀 하자고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응하겠는가. 그리고, 응답한다 한들 얼마나 진심으로 답하겠는가.


사업 실패와 관련하여 국내외 학회지에 실린 몇 편의 논문을 찾아봤다. 역시, 한결같이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이 많고, 연구 결과에 대한 의미 부여보다는 연구의 한계에 방점이 찍힌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A 대표와의 만남은 소중한 기회였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S그룹 계열사)에 입사해 10여 년간 IT 개발자 및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이후, 경력과 인적 네트워크, 자신감을 바탕으로 과감히 회사를 창업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모 IT 기업의 투자를 받아 전문경영인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기였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쇼핑몰 홈페이지를 구축 및 관리해 주는 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초기에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했다.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던 사람들의 충고는 무색했다. 하지만, 복병은 예상치 못한 데 도사리고 있었다. 모기업이 투자 실패로 자금난에 봉착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결국, 모기업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A 대표의 회사는 연쇄 도산했다. 모기업의 신용으로 받아둔 정책자금을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의 기업가에게 대출금 일시 상환을 통지하는 건 사실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본래, 금융은 무차별적이고, 무감각하다. 게다가, 날이 좋을 때 우산을 빌려주었다가, 비가 내릴 때 우산을 빼앗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기업은 회생절차에 따라 채무가 동결되었고, 이후, 대폭 감면된 채무상환을 완료해 현재는 (회생절차 조기 종결 후) 잘 운영되고 있다. 결국, A 대표는 본인이 한 푼 써본 적도 없는 돈을, 모기업을 대신해 전액! 상환했다. 인생은 모순덩어리다.



이후, A 대표는 IT 사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개발/투자업으로 전향했다. 평소, 관심이 많은 분야라 자신도 있었다. 부동산 경매를 통해 강원도 모처에 땅을 낙찰받았다. 알고 지내던 시공사/건설사와 협업해 그 땅을 개발해, 대규모 캠핑장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수억 원의 사비를 쏟아부었고, 공동 투자자와 함께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하늘도 원망하지, 건설사와 분쟁이 발생했다.


분명, A가 발주자이고, 땅의 소유자도 그인데, 어느샌가 건설회사가 가압류채권자로 버젓이 등기되었다. 사업은 중단되었고, 야속하게도 시간은 2년이나 흘렀다.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족히 수억 원은 날린 셈이다.


A 대표는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민사 소송을 통해 채권을 회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결국, 부동산 가압류를 말소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모았던 급여소득, 퇴직금은 그렇게 모두 공중분해됐다. 본인의 운 없음에 상처받았고,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에 좌절해야 했다. 열심히 살아온 데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썼고, 가장으로서의 위신도 말이 아니었다.


내가 만약 그였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늘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했던가. 아마, 자신의 그릇이 컸기에, 그는 저 큰 시련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으리라.

그사이 나이가 들어, 그는 지천명(知天命)에 들어섰다. 다행히, 그에게는 지혜와 경험이 축적됨과 동시에, 아직, 용기도 남아있었다. 기업가정신이다. 혁신성, 진취성, 위험감수성 중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다만, 기업가정신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같이 사는 가족이나 친지, 그를 아끼는 벗들에게는 위험천만한 요소일 수도 있다.


빛과 그림자는, 그렇게 늘 함께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의 도전에는, 다행히 동행자가 있었다.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고 했다(德不孤必有隣). 물론, 짧은 만남으로 내가 그의 인품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나이 50줄에 접어든, 사업 실패 경험이 있는 재창업가에게 동업을 제안하는 건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다.


그는 실패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남을 속이거나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고, 자신이 떠안은 부채를 최대한 정리했다. 부채(빚)를 줄이는 과정에서, 최소한 남에게 부채(부담감)를 떠넘기지는 않았고, 그것을 지켜본 지인들이 새로운 시작을 제안한 것이다.

A는 대기업을 다니던 동생의 제안으로, 작은 회사 하나를 인수했다. 대기업과 대리점 약정이 체결된, 건설업 면허를 보유한, 그러나, 사실상 폐업 상태인, 지방 소재 법인이었다. 돌이켜보면, 운명 같은 만남이다. 자연인과 법인 간 만남에도 인연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인수대금은 예전 투자기업, 동생, 가족들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재창업가가 주변의 금전적 도움을 받는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생사다.

시스템 에어컨을 비롯한 냉난방기, 빌트인(Built-in) 가전제품을 신축건물에 납품, 설치 시공하는 회사였다. 대기업을 나온 동생이 합류하고, 얼마 후에는 동생의 제안으로 그 대기업에 다니던 동료들까지 입사했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 일들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영업 분야의 경력자들이었기에, 대기업 본사와의 네트워크 에 어려움이 없었고, 충분한 물량 확보도 가능했다. 법인이 보유하고 있던 건설업 면허를 활용해 전국 각지의 아파트 건설 현장, 재건축 단지, 공공시설물 공사에 끊임없이 입찰을 넣었다. 작은 규모의 수의계약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이가 좀 많더라도 경력이 많은, 예전부터 회사와 인연이 있던 분들을 채용했더니,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결국, 인수 1년여 만에 회사의 매출액은 100억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등 떠밀려 시작한 일인지라, 위축돼 있었고,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될 놈은 된다고, 갑자기 일이 술술 풀리자 덜컥 겁도 났다. 어쩌면, 성공은 실력이 아니라, 운(運)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자, 구매처인 대기업 측에서 상품 매입거래를 늘리기 위한 추가 담보를 요구했다. 인연은 인연이고, 업무는 업무다. 과거, 그 회사에 몸을 담았다고 해서, 주문량이 증가했다고 해서 그냥 봐주는 건 없다. 사업이 확장되어 가도, 당장 수억 원을 현금 또는 부동산으로 담보 제공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그에 따른 인건비, 원재료 구매비, 각종 판매관리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외상매출금을 회수하는 데도 수개월이 걸린다. 특히, 건설업은 더욱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칫, 분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액 미수채권이 될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A 대표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계속 우리 사무실을 찾았던 거다. 그는 한참을 기다렸고, 돌고 돌아 결국, 나와 만났다. 어찌 보면, 이것은 나의 업보(業報)이기도 하다. 그의 과거 이력, 사업 실패 과정들을 일일이 찾아내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내게도 고역이다. 게다가, 그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내게 숱하게 전화하고, 찾아왔다. 어느 날인가는, 아직 업무시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그가 불쑥 사무실로 들어와 놀랐던 기억도 난다.

평정심이 대단하지도, 감정조절에 능하지도 않은 부족한 사람인지라, 나도 처음엔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내, 짜증은 이해로, 이해는 확신으로, 확신은 응원으로 변했다. 그를, 그의 회사를 돕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결국, 그가 예상했던 금액 이상의 담보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A의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건설업 분야는 경쟁도 치열하고, 현재 건설업/부동산업 전망도 밝지 않다. 허나, 이제 와 거래계약을 취소할 수도, 납품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확실성을 이유 삼아, 뒤돌아갈 은 없다. 배수의 진이다.


이내, 그의 인생사와 실패 극복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그러려면, 저녁에 만나 소주 한 잔 부딪쳐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다. 김영란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술값을 계산하면 되지만,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기업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모두 듣겠노라면, 나는 아마 파산했을 거다.

이런 이유로, 사업 실패 경험은 논문으로 발전되기 어렵다. 맨 정신으로는 솔직 담백한 답변을 듣기도, 심층 면담을 진행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결론이 뻔한 논문 한 편이 아니다. 그보다는 감동과 환희가 있는 인생 드라마를 들여다보는 게 더 가치 있다.


누군가, 성공한 사람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아름답다고 했다.


엊그제 업무차 새롭게 만난,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영상촬영 스튜디오를 창업한, 호기심과 창의력 넘치는, 한 청년 기업가에게 A 대표의 이야기를 전해줘야겠다. 때마침,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화할 소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아마 이 영화는 비극처럼 전개되다가, 희극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는 찰리 채플린의 영향을 받은 영화학도 아니던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1889~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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