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말고 카페산 이야기
청년 기업가 J의 꿈은 현실이 된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내가 맛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CAFE-SANN>에 있다. 참고로, 그곳은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5천 원은 족히 넘는다. 다행히,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같은 재료의 커피와 빵이라 하더라도, 가격은 차별적일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보이는 풍경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카페>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우리를 유혹하는 <CAFE-SANN>은, 그래서 추천할 만하다.
단언컨대, 산의 정상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내려다보며, 커피도 마시고, 눈앞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면, 커피값 5천 원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얼마 전, J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충북 단양에서 <CAFE-SANN>을 운영하는 청년 기업가다. 무려 5년 만의 연락이다. 종종 그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으로 얼렁뚱땅 넘기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한두 명을 제외하면, 전화 진동벨이 울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받을지 말지, 과연 무슨 일로 전화가 왔을지, 복잡하게 고민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J의 연락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을 만큼 반가웠다. 어쩌면,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J 대표,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네”
“선배님, 오랜만에 연락드렸습니다. 잘 지내십니까?”
“나야 뭐, 매일 비슷하지요. J 대표는 어때요?”
“선배님이 가끔 올리시는 브런치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제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하하”
“커피 마시러 한 번 가야 하는데, 시간을 못 내서 미안해요. 조만간 좋은 분들과 함께 꼭 방문할게요”
“근데, 혹시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요?”
“아 네, 실은 선배님께 조언을 좀 구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업무시간에 걸려 온 전화였다. 웬만해선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아주 급한 일 아니라면, 점심시간 이후에, 혹은 퇴근 후에 다시 통화하자고 했을 텐데, 그날만큼은, 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칫하다간, 무척 여유롭고, 마음 넓은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만큼.
J 대표와의 인연은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 발령으로 충북 지역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20대 호기로운 청년 기업가였던 그는, 돌우물의 임 대표와 재회하기 전, 내가 아는 가장 젊은 CEO였다.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특유의 넉살까지, 그는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사실, 그와 나의 업무상 첫 미팅은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충북 단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는데, 단양 팔경을 품고 자란 청춘이어서 그런지, 여행업을 하던 차였다. 어떤 이유로 여행업에 투신하게 되었는지까지는 묻지 못했다. 다만, 지금 주력하고 있는 <CAFE-SANN>의 분위기, 사실상 그가 주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업 <패러글라이딩 체험학교>까지 연결해 보면, 여행(旅行)은 그에게 천직이라는 생각이다.
하여튼, 그는 불가피하고 부득이한 이유로, 그 사업을 접고, 갑작스레 군에 입대했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생뚱맞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결정이다. 갑자기 하던 사업을 폐업하게 되면, 정책자금은 즉시 상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일일이 염두에 두고 살아갈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피치 못할 사유로 생업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의 첫 만남이 유쾌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도유망한 청년 기업가는 위기(危機)를 기회(機會)로 바꾸어 읽는다. J는 그런 유형이다. 신속하게 상황을 수습하고 나자, 그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이 생겨났다. 공교롭게도, J는 나의 동향 후배 겸 대학 후배이기도 했거니와, 별 기대감 없이 찾아간 <CAFE-SANN>이 결정타였다. 그의 인생과 꿈이 궁금해졌다. 그곳에서 근무한 2년여의 기간 동안, 알게 모르게 10번은 <CAFE-SANN>에 방문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히 J에 대한 궁금증이라기보다는, 내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는데도, 그곳이 최적의 환경 이었다는 생각이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한창 지쳐 있을 때, <CAFE-SANN>에서 마시던 커피 한 잔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사표를 낼까 고민하던 지방 근무지에서, 결국 박사 학위를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게 <CAFE-SANN> 커피 한 잔의 가치는 <STAR BUCKS>의 그것과는 비교불가다.
단양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CAFE-SANN>은, 무려 해발 600미터 높이에 위치 잡았다. 어떻게 저 높이에 저런 카페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지금이야 커피와 빵 맛을 보러, 뷰(View)를 즐기러,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러, 전국 팔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당연한 건 없다.
그렇다. 저곳은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이름 없는 단양의 수많은 산 중 하나였을 뿐이다. J의 부친과 모친, J의 누나까지, J의 가족들은 수많은 사람의 반대와 우려 속에서 첫 삽을 떴을 것이다. 한때 버려졌던 산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카페, 하늘을 향해 날갯짓하는 교두보로까지 진화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CAFE-SANN>에 방문한다.
J의 부친은 패러글라이딩 강사였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현역일지 모른다. 패러글라이딩 실습소, 교육장이 필요했을 것이고, 산이 제격이었으리라. 평지에서 하늘을 날긴 어려우니까. 위험은 높이로 확보된다. 기업가정신과 맞닿은 지점이다.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남은 건 실행뿐이다. 그는 산 하나를 통째로 구매했다. 생각만큼 비싸지도 않았다. 하긴, 수요가 있어야 수요-공급 곡선을 들먹이며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 문의도 없고,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단양 시골구석 이름 없는 뒷동산이 비쌀 리 없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아직은 그의 행보를 누가 말릴 일도, 딱히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을 만들고, 그 옆에 커피숍을 열겠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없던 길도 내야 하고, 인근 주민들의 민원과 원성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되지만, 그 길은 가시밭길이다. 실제로 얼마만큼의 시련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힘들었을 시간이 충분히 상상은 된다. 덧붙여, 나의 경우엔 99.9%의 확률로 중도 포기했을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J와 그의 가족은 포기를 몰랐다. 그들은 기필코, 마침내, 드디어, 해발 600미터 고지에 <CAFE-SANN>을 일구었다. 평지부터 저 높은 곳까지, 양방향 차들이 왕래할 수 있을 만큼 길을 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동물, 식물, 나무, 심지어 사람들까지. 무엇하나 누구 하나 그들에게 쉬 길을 터주지 않았으리라. 천지개벽, 상전벽해를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일 자는 흔치 않다. 저 높은 곳까지, 물길도 트고, 전기길도 내고,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계속 벽돌과 흙을 날라야 했다.
살면서 건축설계, 시공, 건축, 준공은 두 번은 못 할 일이라고들 한다.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으로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가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부리는 사람은 내 맘 같지 않고, 화수분처럼 여기저기 돈은 계속 투입되어야 한다. 특히, 관공서의 인허가를 받는 것이 하이라이트다. 이번 경우는 도심지역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올려지는 주택/상가/집합건물 등과는 아예 시작부터 다르니, 더욱 불안하고, 위험했다. 자연경관을 헤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으면, 회복 불능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만나본 J와 J 가족들도 그저 평범한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MBTI가 남달라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지 쉬 짐작하기 어렵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고, 얼마의 돈이 들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어찌 됐든 간에, 건물 준공등기와 사용 허가를 취득한 <CAFE-SANN>에 앉아, 커피의 맛과 풍경의 멋을 모두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헤아리기 힘든 시간을 애써 외면하는 나, 그리고 우리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 일지 모른다. Normal이 있어야 Ab-normal이 빛날 수 있음이 세상의 이치다.
J 대표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사업가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대를 이어, 바리스타임과 동시에 패러글라이딩 강사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수시로 하늘을 난다. 손님 중 태반은 처녀비행일 터, 곡예를 섞으면서도 안전하게 비행해, 그들에게 안전감과 쾌감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그는 아침에는 커피와 빵을 만들어 내고, 오후에는 노을의 풍경 속으로 뛰어들며, 저녁 늦게는 <CAFE-SANN> 너머의 새로운 미래도 그려야 하는, 다이내믹한 꿈을 꾸는 청년 기업가다. 비범하다 못해, 다소 위태롭기까지 한 인생이다.
<CAFE-SANN>은 별, 노을, 강, 그리고, 산을 같은 방향으로 바라본다. 당초에, 그곳은 황량한 곳이었다. 화전민들이 살던 두산마을이, 고독과 번민을 즐기는 비행인을 만나 패러글라이딩 활주로로 변모했다. 산과 들의 고독함이 배어 있던 곳이, 시대와 필요를 만나 제3의 공간 <CAFE-SANN>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리얼리스트가 되고, 가슴속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가 되자는 쿠바 혁명가의 외침은, 이곳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J는,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 그 자체다. 아니나 다를까, <CAFE-SANN>의 홈페이지에는 커피, 노을, 비행, 꿈, 현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메시지까지 풍성하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J는, <CAFE-SANN> 옆에 새로이 <문화 복합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역시나, 내가 함부로 가늠할 수준이 아니다! 자기 자금 보유액은 어느 정도이니, 얼마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고, 어떻게 조달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F&B, 굿즈, 사진, 그림, 문화예술 공연, 패러글라이딩 체험관, 리싸이클링 제품관까지 아우르는 <꿈의 공간> 조성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금리가 만만치 않으니, 시중은행을 통한 시설자금 조달보다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시/도의 정책자금을 우선 알아보라고 했다. 전화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문의하고, IR 자료도 만들어 가기를 권유했다. 최소한 20% 이상은 자기 자금으로 조달할 수 있어야 나중에 금융비용 지급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전해줬다. 남들은 금리 상승기를 맞아 보수적 경영전략으로 바꾸어, 기존 대출금 상환에 주력하는 데, J는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택한 듯하다.
물론, 이번에도 그의 역발상, 도전정신이 빛을 발할 거라 믿는다. J 대표에게 중도 포기란 없다. 돈이 부족하면, 새로운 취향을 덧입힌 <CAFE-SANN> 2호점이라도 오픈할 기세다. 이제는 단양을 넘어, 도시와 농촌, 산과 호수, 들과 강의 경계를 넘어, <CAFE-SANN> 3호, 4호점, 아니, 99호, 100호점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도 고민해 봐야겠다.
나는 J 대표의 위태로움과 비범함, 좌충우돌하는 모습까지 응원한다. 어설픈 충고나 조언, 비판과 비난 따위는 금물이다. 10분 남짓한 짧은 통화였지만, 여운은 참 길다.
퇴근길,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단양 밤하늘의 반짝이던 별이 보이지 않는다. 비단 서울 밤하늘의 공기가 더 나쁘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금세 현실에 안주해 땅만 보며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이제, 다시 <CAFE-SANN>에 오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