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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윤 Jan 04. 2021

¿한국은 '부캐'가 트렌드? ¡스페인은 부캐가 일상!

다들 부캐 N개 정도는 품고 살잖아요


2020년, 한국에는 '부캐(부캐릭터)'가 열풍이었다. 10년 전 유세윤&뮤지의 UV로 시작하여 지미유, 다미이모, 린다G, 천옥, 만옥 등 훨씬 더 확장된 '부캐' 열풍. 2020년 연말 한해의 키워드 중 하나로 많이 회자되기도 했다. '놀면 뭐하니?'뿐 아니라 '온앤오프'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 또한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게 왜 '트렌드'로 치부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사실 2년 전의 나였다면 이를 지나가는 유행의 하나로 이해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페인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생각을 섞다 보니 비판적인 시각이 더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부캐'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돌고 도는 유행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인 건데 한국에서는 왜 이를 그저 갑자기(?) 찾아온 흐름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아래의 내용들은 필자 개인적인 생각/의견이니 참고 바랍니다.)

호모 부캐엔스 : 모든 인간은 부캐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은 수많은 면을 갖고 태어난다. 나를 예로 들면, 직장을 다니는 나, 공연을 좋아하는 나, 사교성이 좋은 나, (그러나 주말에는 혼자 있고 싶은 나,) 춤추기를 좋아하는 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 (동시에 글쓰기를 귀찮아하는 나,) 결혼을 꿈꾸는 나, (동시에 결혼하기 싫어하는 나) 등. 맥락에 따라 다양한 나의 내면이 드러난다.

 비단 성격뿐 아니라 직업, 미래에 대한 열망 또한 '부캐'라고 본다. 가령 현재 다니는 회사는 고정수입 일일뿐, 부업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하거나,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한다거나, 동시에 공동구매 사업을 하고 싶은 소망 또한 내 안의 '부캐'들이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N개 부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내 안의 부캐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혹은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나 또한 지난 5년 간, 힘들었던 직장생활 속에서 내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아실현적 욕구들을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지 않았다. 물론 외국어 배우기, 독서모임 등 자기 계발을 위해 애도 썼지만 그것도 모두 '직장인으로서의 나', '33살이라는 나잇값에 걸맞은 나'에 맞추기 위한 스펙 쌓기였을 뿐,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한국에서 우리 나이 33살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나이라기보다는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야 하는 나이였기 때문에.

부캐, '열풍'이 아니라 이제야 본성이 튀어나온 것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에 따르면, 국어사전에 최근 몇십 년간 추가 포함된 품사들을 확인 결과, '명사'의 개수가 '동사'보다 눈에 띄게 많이 추가되었다 한다. 우리 한국은 규정짓기 편리해서, 빨리 판단 짓고 정의 내리기 위해서 동사보다 명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메일을 읽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메일 확인 요망'이라고 쓰는 버릇들이 지난 몇십 년간 한국인들 사이에 쌓여온 것이다.

 이러한 '동사의 명사화'는 교육계에서 특히 부각된다. 교사들은 '넌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니?'가 아니라, '넌 커서 가 되고 싶니?'를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하늘을 날고 싶다'는 동사적 생각은 접고 '조종사'가 되어야 하는가 보다 하고 명사적 생각으로 귀결해 버린다. 즉, 상상과 꿈의 원천이 끊어지게 된다.

 난 여기서 이미 한국의 '부캐 열풍' 전초가 쌓이고 있었다고 본다. 즉, 억압된 한국사회와 교육 환경 속 억눌러져 있던 한국인들의 본성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매체를 통해, 유재석 등 유명 연예인을 통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에서 쉽게 인정받을만한 단어로 나 자신을 맞추기 위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와 결혼해서 좋은 동네에서 사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명사'로 쉽게 설명되어야 살기 편하다고 믿는 한국. 이런 사회와 편견들을 견디며 답답하게 살아온 한국인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캐릭터'라는 말을 유독 많이 써온 한국인들

 이를 해소할 한국인들의 돌파구 중에 하나가 '게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캐릭터'라는 말은 본래 게임에서 쓰였던 말이다. 물론 사람의 성격, 특성이라는 의미로도 일상 속에서 활용되지만, 내 아이디로 접속한 '가상의 나'를 지칭한다. 난 게임마니아는 아니지만, 적어도 콘솔게임 시대의 캐릭터 가짓수 보다, 최근 온라인 게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의 개수가 훨씬 많다는 건 누가 보아도 자명한 사실인듯하다. 특히 게임 소비시장이 잘 활성화된 한국 내 유저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나 자신인 마냥 꾸미고 아이템을 구매하며 의상도 바꿔 입혀가며 가상 속 내 캐릭터를 꾸미는 데 열광했다. 싸이월드의 '미니미'도 일종의 이런 게임 캐릭터에서 파생된 기능이었을 테다. 미니홈피라는 나만의 가상공간 속에 나만의 미니미를 꾸미는 데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현실의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가상공간 속에서 내 캐릭터는 가능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또다른 나로 살 수 있다.

부캐가 일상인 스페인 사람들

 반면 스페인 사람들은 다르다. 우선 스페인은 가상 속 캐릭터, 게임 문화가 한국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다. 컴퓨터, 모바일 게임도 하는 사람을 주변에 거의 본 적이 없다. (물론 게임마니아는 세계 어디에든 존재할 테지만 적어도 내가 지내면서 보진 못했다.) 내가 느낀 이들은, 가상공간보다는 '실제 현실 속'의 자기 캐릭터를 다양하게 가꾸고 시도해보는 것을 중요시한다. 일상 속에서 가끔씩은 날을 잡고 내가 아닌 다른 세계관대로 살아보며 연기하는 것이다. 그들 각자가 지미유이고 린다G이다. 물론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시도들을 존중해주고 받아들여주는 문화, '그게 뭐어때서'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크나큰 국가적 자산이자 소중한 스페인 국민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탄 ET 영화 속 주인공을 표현했던 마드릴레뇨들 (빨간티 남자가 내 남친인건 안비밀)


다들 N개 부캐 정도는 품고 살잖아요

 한국을 박차고 스페인으로 갔었던 2019년 1월. 나는 지금의 남자 친구 포함하여 다양한 친구들을 알게 되며 나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한마디 혹은 한 단어로 '규정'짓지 않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그다지 잘하지 못해도 그런 나를 존중해주며 끊임없이 나라는 다면성을 '궁금해해 줬다'. 그들은 나에게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어떻게 마음대로 사는지를 알려주었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멋대로 화장하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해보기도 하고, 춤춰보기도 하고. 스페인 사람들에게 그런 자유분방함은 일상이었다.

 그래서 이런 한국의 '부캐'열풍을 한 해 동안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 계속 든 것 같다. 나뿐 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하나씩은, N개 부캐 정도는 갖고 살 텐데. 그저 우리들은 그걸 어떻게 발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혹은 남들 눈치 본다고 각자의 N개 부캐를 꽁꽁 숨겨두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2019년 할로윈데이 때 내 컨셉은 영화 <레옹>의 마틸다였다 허허. 맨 오른쪽 사진은 수년간 정말 보기 힘들었던 내 찐웃음

 흔히들 '내가 온전히 나일 때',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한다 했던가. 나는 내 안의 부캐들을 인정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라 본다.

 나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작년부터 조금씩 변화를 일구어 왔고, 엊그제 12월 31일을 끝으로 5년 반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실 '직장 다니는 나'가 사라졌을 뿐 나 자신 전체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세상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대신 '새로운 세상, 기회를 꿈꾸는 나'가 더 커진 것이다. (참고: 나는 3년 내 창업을 하고 싶다) 내가 가진 다양한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것도 내 천성적인 N번째 부캐라고 넘버링해버리면 끝이다.

모든 한국인들이 자신들만의 N개 부캐를 온전히 받아들이길,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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