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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윤 Oct 19. 2020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투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삶과 죽음을 함께 머금은 스포츠

  세상에 목숨을 걸고 하는 스포츠가 의외로 많다. 모터사이클, 카레이싱, 복싱, 암벽등반이나 에베레스트 산 등정 등. 그중에서도 스페인의 전통적인 문화이자 스포츠, '투우' 또한, 그 위험천만함에 있어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은 투우를 '소와 인간의 목숨을 건 의식'이라고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이 투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러한 종교적인 성격은 사라지고, 스포츠로서의 투우 모습은 1701년부터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최근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있는 까딸루냐 주와, tvn 윤식당 촬영지였던 까나리아 주(제도)는 2010년부터 투우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있다. 스페인은 17개 중 이 두 곳만이 투우를 금지하고 있다. 즉, 여전히 80% 이상의 자치주에서는 투우를 수용하고 있다. 스페인투우협회(ANOET) 통계에 따르면 한 해의 투우경기 관련 행사는 연간 1800여 건, 약 4-5조 원의 수익 및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한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스포츠, 투우
2016년 떼루엘에서 열린 투우 경기에서 사망한 빅토르 바리오(맨 오른쪽) / 출처 :  El Plural.com

 투우복은 세계의 그 어느 스포츠 유니폼보다 화려하다. 투우복은 스페인어로 '빛의 옷(traje de luces)'이라 불리는데, 이는 정말 빛이 날 정도로 화려하기 때문이다. 금, 은, 실크 등으로 번쩍이는 고급스러운 무늬에, 빨간색, 분홍색과 같은 강렬한 색깔들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전통적인 지역에서는 한 투우복에만 몇 천만원의 거액을 쏟아붓는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하는 이유가, 혹시라도 경기 도중 죽게 될 순간을 명예롭게 맞이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는가. 투우사들은 매 경기 직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숨을 고르는 의식을 수행하며, 혹시나 사망 사건이 일어날 상황을 대비하여 대부분 투우 경기장에는 기도를 드리는 방이 마련되어 있다. 투우사들은 황소를 한 번 유인할 때마다, 자기 쪽으로 황소를 스칠 때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사실 경기를 하다가 모래장 위에서 죽는 투우사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29살의 세비야 출신 빅또르 바리오(Victor Barrio)가 떼루엘(Teruel) 지역에서 열린 투우 경기에서 투우 경기를 하는 도중 사망한 사건이 1985년 이후에 나온 유일한 사망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히 투우 경기는 위험하고, 계속해서 사상, 사망자는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우사들은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자신을 모래장 위로 내던진다. 그들이 입은 옷처럼 화려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는 자세를 바탕으로, 모래장 위를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이승과 저승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투우라는 스포츠이자 전통이 만들어 내는 매력일 것이다.

화려한 투우사 복장. 언제든지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최대한 화려하게 꾸민 뒤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사진출처 : 엘 올리보 님 블로그)
투우의 두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부터 투우가 반대되고 있는 이유는 단연 동물학대 문제 때문이다. 또한 투우 경기가 갖는 자극성이나 잔인성이 아이들의 정서에 유해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아예 자세한(?) 투우 경기의 모습은 매체에서 방영될 수 없도록 금지되었다고도 한다. 실제로 필자는 투우에 대한 자주적 판단을 위해 2019년 6월의 그라나다 투우 경기장에 투우를 한번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경기를 관람했던 한시간 내내 받았던 충격은 결코 다시 떠올리기 싫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몇 군데 있었는데, 첫째로는 몇몇 아이들이 어른과 똑같이 환호하며 이 '스포츠'를 즐긴다는 점. 사실 관중들은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가족단위의 관중들도 많았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야유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른다. (우리나라의 야구경기장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아이들조차도 투우사가 황소의 머리 뒷목을 찌르고 피를 플릴 때, 어른들과 함께 환호하며 응원을 했다. 동물을 죽이기 위한 목적의 스포츠를 어릴 때부터 즐기도록 아이들을 방치해도... 정말 괜찮은 일일까?

  두 번째 충격는 실제로 소를 경기장 모래 위에서 인간들이 황소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죽인다는 것. 한방에 죽이는 투우사가 '위대하고' '실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경력이 짧은 투우사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의로 반복적으로 시도하며 여러 번을 찌른다. 심지어 황소가 너무 오래 버틸 경우에는 별도의 사람들이 나와서 단도(짧은 칼)로 무자비하게 찔러 죽이더라.

  세 번째 충격 포인트는, 황소가 죽고 나면 말 두 마리가 입장하는데, 그 말들이 이끄는 밧줄에 묶여, 죽은 황소는 짐짝처럼 질질 끌려 '퇴장'한다, 핏자국을 모래 위에 선명하게 남기면서. 나는 이날 이후 절대 투우 경기를 내 자발적 의지로 볼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스페인 그라나다 투우 경기 직관(2019년 6월) / 황소를 찌르는 등 잔인한 장면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황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차마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직접 투우 경기를 직관해보았다. (2019년 6월의 그라나다 투우 시즌)


 스페인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사실 투우는 동물에게도 잔인하고, 사람에게도 잔인한 스포츠이지만, '투우'의 존폐여부에 대한 이슈는 지난 10년 간 딱히 재조명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들의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나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일부 어르신들이 개고기를 몸보신을 위해 식용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 젊은 세대들이 딱히 이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는 그런 상태. 스페인사람들에게 투우 또한 딱 이런 포지셔닝인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개개인마다 투우에 대한 생각차이는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까탈루냐 주와 까나리아 제도만이 '동물권'에 대한 문제를 분명하게 꼬집어 내었을 뿐, 여전히 투우를 금지하는 자치 주는 10년 째 추가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

 한 국가의 문화와 전통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몇 년 전 프랑스의 한 언론인이 우리나라를 '개고기 먹는 야만적 나라'라고 성급한 일반화를 시킨 사례는 한 번씩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문화는 윤리/인권(동물권)적인 입장에서도 바라보되, 전통이 최소한의 명맥은 유지될 수 있도록 그 절충점이 마련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또한  "스페인=투우의 나라"로 일반화시키지 말고, 투우라는 문화가 갖고 있는 빛과 어둠을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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