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특성 상 기사를 많이 본다. 일 때문에 기사를 보기 시작하지만, 업무가 끝나도 시간이 남으면 관심가는 다른 기사를 본다.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언론사가 '더더더더' 많아졌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언론사로 신고하는 절차가 완화되고 인터넷과 웹, 홈페이지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보다 훨씬 쉽게 언론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1인 매체도 많아졌고 특색있는 언론도 셀 수 없이 늘어났다. 지금 일하는 곳이 아무리 50년 전통을 가진 곳이라 자부하지만, 요즘 나온 새로운 매체들의 톡톡 튀고 눈에 띄는 기획과 그래픽에 비하면 종이신문보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는 그런 곳에 하루 8시간 씩 앉아 꼬박꼬박 일하고 있다.
20,30대 나는 일에서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 믿었다. 어렸을 적부터 '커리어우먼'에 대한 로망도 있었지만, 학벌주의자인 엄마에게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가진 인생만 의미있다고 세뇌당했다. 어머니 세대의 사회가 그런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유독 우리 엄만 더욱 그랬다. 형제들 중 그나마 성적이 좋았던 나는 좋은 학교 다음으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 '누구나 아는 회사'의 직원증을 목에 거는 게 인생의 목표였다. 직장만 잘 들어가면 내 인생의 적어도 80% 이상은 성공을 보장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애초부터 미대를 간 게 잘못인 걸까. 예술계 사단법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기자가 되고자 언론고시를 오래 준비했다. 그 때는 직장에 대한 갈망과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아우라라 합쳐져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직업은 언론인'이라는 신조까지 품었다. 하지만 언론사는 나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서류, 필기, 면접, 최종면접 골고루 여러번씩 무던히도 떨어졌다. 자존감도 떨어졌다. 공중파 방송사 사장면접에서 떨어졌을 땐 내 인생과 함께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날 뽑아주지 않는다 해서 이렇게 사랑에 빠진 기자라는 직업을, 바로 버릴 순 없었다. 이미 나는 미술에서 몸도 마음도 너무 멀리 와있었다. 다시 돌아갈 생각도, 마음도 들지 않았고 그럭저럭 나를 뽑아주는 신문사에 급히 입사했다.
원하던 시작은 아니었지만 막상 시작하니 재미있었고, 열심히 했다.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아 조금씩 좋은 매체로 이직도 했다. 매체 영향력이 커질수록 내 자신감도 커졌다. 조직의 영향력을 나의 영향력이라 착각하는 게 가장 멍청한 짓이란 걸 알면서도, 사탕의 단물을 빨듯 그 영향력이 주는 달콤함이 싫지 않았다. 일에서 인정받으며, 내 인생도 잘 굴러가는구나 싶었다. 뭐 여기에서 더 큰 난관이 있겠어? 자만에 빠진 나에게 정신차리라는 호통처럼 급작스레 상황이 바뀌었다. 이유없는 갈굼과 가스라이팅을 못견디고 임신을 핑계로 퇴사했다. 내 의지로 나왔지만, 악독한 팀장한테 악다구니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착한 부하직원으로만 있었던 게 못내 분해 매일 악몽을 꿨다. 개지랄이라도 한번 했어야 했는데...열패감과 함께 인생에서 나는 낙오자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또 바뀌었다. 열패감에 빠질 새 없이 출산과 육아가 몰아쳤다.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나는 이제 평생 회사라는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누구도 장담하거나 속단해선 안되는 것.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기회가 또 찾아왔고, 이제 기자는 꼴도 보기 싫어 전업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다시 기자직 제안이 왔다. 존재감 미미한, '고리타분'한 매체지만, 아이를 키우며 다닐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출산 전 나였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제안을, 나는 감사히 덜컥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입사를 준비했다.
출산을 기점으로 직업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나는 일에서의 성공이 내 인생의 성공과 동의어가 아님을 안다. 나에겐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겼고 아이가 있다. 삶의 무게중심이 일에만 가있을 수는 없다.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그쪽을 택하리라 맘먹었다. 아이 등원시키고 하원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참이었다. 다이소에서 재고정리 알바를 할지, 김밥천국에서 설겆이를 할지도 고민했다.
왜냐면, 일을 쉬는 동안, 일보다도 먼저 챙겨야 할 중요한 것들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직장의 일은, 그저 남의 일이었지만 가족은 내 가족이고 내 일이었다. 직장과 일터를 수단삼을 수 있게 되자 이전엔 관심도 가지 않던 지금의 회사가 좋은 직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일을 찾고 있다. 직장에서 남는 시간을 틈타, 짬짬히, 틈틈이, 잠깐씩이라도 기회를 엿본다. 십 몇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쓰고 월급을 받지 않았나. 다른 사람에 대한 글은 얼른 써서 업로드하고, 국장 몰래 브런치에 들어와 내 글을 쓴다. 점심시간엔 얼른 혼자 끼니를 때우고 책을 보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 그러면서도 월급이 나오고, 4대보험을 내주니 이 얼마나 좋은 직장인가. 그러다 내 일을 찾으면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 고마운 직장.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