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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l 20. 2022

무교이지만 템플스테이는 좋아합니다만

어쩌면 좋고 싫고를 너무 일찍 확신한 거다. 이십 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템플스테이를 이렇게 여러 번 아니, 한 번이라도 가게 될 줄 몰랐다.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일단, 예배/미사/예불 그 어떤 시간도 능숙하게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종교를 굳이 찾아야 한다면 불교보다는 기독교에 가깝다. 어릴 때는 여름 성경학교를 다녔고, 수능이 끝난 직후에는 친구의 전도로 일 년 정도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다. 아, 아닌가. 헝가리 여행 중 찾아간 크리스마스 미사 중 코가 찡-해지도록 감동받아 기도했으니 천주교인가.

지금은 잘 안다. 템플스테이는 종교와 무관하다는 것을. 실제로 템플스테이를 가면 기독교/천주교 신자들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올해 다녀온 법주사 템플스테이에서도 불교 외 다른 종교를 가진 분이 네 분 계셨다.

또 하나의 근거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여행을 선호한다는 거다. 오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걷고 해 볼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높은 자유도를 희망한다. 내가 세운 시간표라면 모를까 남이 세운 시간표는 언제나 아쉽다. 억지로 하는 것은 출퇴근만으로 충분하다. 취향이 이러니 템플스테이와의 거리는 아득할 수밖에.


이렇게 끝나면 지금까지 템플스테이를 가 본 적이 없어야 하지만, 일명 '입덕'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때'는 몰랐을 뿐이지, 은은하게 스며들 가능성 또한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한옥을 유독 좋아한다. 사찰뿐만 아니라 경복궁 경희궁과 같은 궁궐, 한옥마을 그리고 한옥카페까지 나무와 '이건 분명 한국의 집이다' 싶은 모든 건축물에 시선을 오래 둔다. 건축은 잘 모르지만 마루에 앉아 삐죽 튀어나온 처마를 보는 시간의 소중함은 잘 안다. 마루에 앉아 고개를 들면 하늘이 세모 또는 네모 모양의 처마를 이불처럼 덮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이불은 예쁘고 귀엽고 혼자 다 한다. 

새 계절이 오면 궁궐에 기꺼이 입장료를 낸다. 만 24세 미만인 시절에는 입장료가 무료일 때 많이 가야 한다고 다짐했더랬다. 물론 30대인 지금도 입장료를 기꺼이 내고 자주 가고 있어 별 의미는 없는 다짐이었지만.

그러다 보니 사찰도 자연스레 많이 다니게 됐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마루에 앉아 처마를 보는 시간을 위해 주변에 가볼 만한 사찰이 있는지 지도 앱을 두들겼다. 

또 하나는 고요함이 일상 중간중간 있어야만 추진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내향적인 성격도 성격이지만 생각이 많다. 두서가 없어 풀릴 줄은 모르고 쌓이는 생각들을 차곡차곡 개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장소는 언제나 반듯하고 고요해야 한다. 사찰이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오직 사찰과 산이 만들어내는 백색소음에 귀를 담근 순간 모든 긴가민가는 끝이 났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갈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은은하게 스며들어 지금 템플스테이와 나의 거리는 바로 옆이다. 가끔은 '세상에 재밌는 게 이렇게 많지 않았으면 진작에 머리 밀고 출가했어' 머리를 위잉- 미는 시늉을 하며 웃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음 템플스테이는 어디 가 볼까? 생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여럿 간 지금도 계획보다는 무계획 여행을 좋아하고 여전히 예불은 뭐라 말하면서 드리는 건지 모르겠다. 갈 때마다 눈치 보면서 책자를 보면서 행동하는 무교인이지만, 그럼에도 힐링과 경험을 동시에 주는 템플스테이는 갈 때마다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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