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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l 16. 2022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108배가 소원비는 시간이 아니라, 수행인 이유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집중이 문제예요

108배를 한다고 말하면, 휴식형으로 템플스테이를 오신 분들은 꼭 두 개를 질문한다(108배는 대체로 체험형으로 오신 분들만 경험한다).

"헙. 108배 힘들지 않아요?" 

"108배 오래 걸리지 않아요?"

이 두 질문을 하는 배경에는 108배는 '108번의 절'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나 또한 템플스테이를 경험해 보기 전까지 그랬고.

하지만 108배의 근원은 '백팔번뇌'다. 이에 대해서는 종교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무교인 나에게는 양자역학만큼이나 어려운 부분이니 108개의 참회문을 읽으며 흩어져있는 마음을 모으는 수행의 한 종류라고만 기억하며 108배를 하고 있다. 


108배와의 연은 템플스테이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20대 초반에 108배 운동이 살이 많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매일 거실에서 절을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부지런히 찌운 살을 이제 그만 거둬달라는 요청이었을까. 하지만, 50개를 넘길 때쯤부터 힘들다며 징징댄 게 화근이었는지 그 요청을 들어주는 신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실패한 다이어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108배를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대웅전에서 묵묵히 수행 목적으로 108배를 하고 있으니 이래서 함부로 절연이라 확신하면 안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108배를 할 때까지만 해도 부처님께 소원을 빌며 염주를 꿰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간절하면 108번 기도를 하겠어'라며 많은 것을 바랐다. 숫자가 간절함의 기준이라고 생각했고 '불교신자는 아니어도 무교이니까 좀 봐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스님이 그러시더라.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는 부처님도 돕지 않는다고.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명언은 종교를 막론하고 사실이란다. 

'기도'가 목적이었던 108배 시간은 그 뒤에야 온전히 '수행'이 됐다. '~게 해주세요' 결과를 바라지 않고 앞에 놓인 참회문을 읽으며 더 나은 내가 되리라 다짐한다. 

이에 대한 깨달음은 2020년에 쓴 낙산사 템플스테이 후기에도 들어있다.


오후 6시부터 6시 30분까지 저녁예불을 듣고 계속해서 홀로 목탁을 두들기며 기도하시는 스님 뒤에서 조용히 108배 염주의 재료를 바닥에 깔아 두고 108배를 했다. 108배는 내가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둔 경험이었다. 절을 108번이나 하다니! 대단한 도전인걸?

힘들어도 꼭 완수하리라 굳게 다짐했던 일인 만큼 절하는 방법도 열심히 들었는데 알고 보니 108배는 한번 절할 때마다 한 개의 문장을 읽으며 절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총 108개의 문장을 읽으며 절을 하는 거다. 108배를 할 때 그 책자를 펴니 주옥같은 문장들이 잔뜩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뜻의 문장들이 있었다.

[나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절합니다]

[타인을 돕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며 절합니다]

[삶이 건강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절합니다]

이 108개의 문장대로 살면 진짜 전지전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의 비결들이 가득했다.  

배운 대로 절을 할 때마다 읽었다. 염주의 줄에 한 개의 구슬을 넣고 문장을 읽고 절하고 다시 구슬 하나를 넣고 문장을 읽고.

이 108배가 심상치 않음은 80번 정도 했을 때 인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절을 몇 번째 하는지 세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문장의 의미에 집중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도와달라는 간절한 마음, 지켜봐 달라는 부탁의 마음이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니 종교의 여부를 떠나 절을 하다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운동처럼 괴롭지 않았다. 집에서 하는 15분짜리 운동은 IC거리면서 하면서 30분도 넘게 한 듯한 108배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곧잘 했으니. 108배는 108번의 절이 포인트가 아니었구나! 그래서 후기에 108배가 템플스테이의 꽃이라 적혀있었나 보다.

덕분에 108배 염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신발을 신고 나서는데 비가 내리기 직전의 세찬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2020년 낙산사 템플스테이 후기 中)


그 덕에 템플스테이를 다녀오면 한동안은 착하게 산다며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일상에 임한다. 피곤해도 한 시간 더 일하고 저 깊이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한시적인 게 좀 흠이지만. 

그러면 이제 108배를 순탄하게 잘하느냐. 그렇게 호락호락하면 또 수행이 아니지.

이제는 지푸라기 같은 집중력이 문제다. 바람 한번 짧게 호-해도 날아가는 가냘픈 집중력은 108배를 하는 동안 일정하게 가지 않아서 머릿속을 헤집는다. 참회하는 마음에 집중이 안되고 자꾸 '구슬 몇 개까지 뀄더라' '다른 사람들은 몇 개까지 했을까' 영양가 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면 할수록 나아지겠지' 생각하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차분한 마음가짐이 왜 이리 어려운지. 이래서 수행이라고 하나보다.

항상 108배를 마치고 대웅전을 나올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급한 성격 어디 안 가는구나'

108배에서 제일 어려운 건 차분히 집중하는 일이다. 


체력 덕분인지 흥미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108배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아, 새벽예불에서는 예외. 보통의 108배 프로그램은 저녁예불 뒤에 하는데, 법주사에서는 새벽예불 뒤에 해서 허벅지가 꽤 욱신거렸다. 원래 침대 위에서 힘없이 축 늘어져 자고 있을 허벅지를 갑자기 새벽 5시에 쓰고 있는데 안 아픈 게 이상할만하다만. 그것 빼고는 108배는 정말 숫자가 주는 부담감보다 훨씬 힘들지 않다. 같이 임하는 다른 참가자분들도 한 명의 낙오 없이 모두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겁먹을 건 아님이 확실하다.

앞서 언급했던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내자면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집중이 문제예요"

이렇게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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