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가지 않으면 모를 템플스테이의 매력, 등산
등산 혹은 산의 일정 구간을 트레킹 할 수 있는 사찰을 선호한다. 운동은 싫어하는데 유일하게 등산과 트레킹만큼은 좋아하기도 하고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모습을 좀 더 다양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특히 규모가 있는 사찰일수록 낮에는 관광객과 등산객들로 북적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외 시간인 이른 아침과 일몰 시각 무렵부터는 사찰의 온전한 분위기와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그 시간이 되면 가장 산의 모습 또한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데 고요함 속에서 산과 사찰의 조화를 보고 있으면 일상 속에서 보는 사찰보다 훨씬 거대하고 장엄하게 느껴져 입을 열기 어렵다. 뭔가 엄숙함을 지켜야 할 것 같은 무거운 마음이 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템플스테이만 가면 그 시간을 기다린다. 해가 뜨기 전 검정 물감으로만 칠한 것 같은 풍경. 해질 무렵 마지막으로 해가 빛을 내쉬며 세상이 노랗게 물드는 풍경.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템플스테이를 다녀오면서 경험한 산행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템플스테이에서 등산˙트레킹을 한 기억 중 가장 많은 잔상이 남은 경험을 꼽으라면 가을 끝자락에 갔던 화계사다. 화계사는 서울시 강북구에 위치한 사찰로 북한산을 끼고 있는 도심 속에 있으나 자연을 곁에 둔 사찰이다.
사실 화계사에서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인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휴식형을 선택해서 예불 스님과의 차담 공양과 사찰 안내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었을뿐더러, 평소 서울이 생활권이라 서울 소재의 사찰 풍경은 상대적으로 그 밖의 지역보다 익숙할 거라 생각했다(서울에 있는 사찰은 도시적이고 일상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편향을 갖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멀리 나갈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근교로 찾다 보니 가게 된 사찰이었다.
화계사가 북한산 둘레길 3구간에 걸쳐있고 구름 전망대가 있다는 사실을 보살님께 들은 뒤에야 이 템플스테이의 하이라이트는 전망대를 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화계사 템플스테이 참가자 묵는 국제선원 건물 바로 맞은편에 북한산 둘레길에 들어설 수 있는 입구가 있다. 때문에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에도 등산복을 입고 산속으로 향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그 길의 일정 구간을 법복 바지와 조끼를 입고 다녀올 수 있다. 보살님께서는 보통 참가자들은 15분 거리에 있는 구름 전망대까지만 간다며 일출을 볼 수 있으니 아침 공양을 먹고 다녀오라 말씀하셨다.
오호라. 무조건 가야지. 다음 날까지 참지 못하고 저녁 공양 시간 전에 후딱 구름 전망대를 다녀왔다. '은근히 올라가네' 생각하면서 공양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올라가는 길은 딱 트레킹 정도다. 나무 데크길을 걷다가 계곡 위 다리를 건너 울퉁불퉁한 등산길을 약간만 오르면 나선형 계단이 있는 구름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나무로 만든 둥근 원통형의 구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방으로 뻥 뚫려 어느 방향이든 시야 방해 없이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는 곳만 해도 불암산 천마산 수락산 멀리 송파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 서 있을 때 눈높이에 떠 있던 해는 주변에 있는 모든 색에 따뜻함을 추가했다. 마음도 눈부셔지는 순간이었다.
둘째 날 아침, 공양을 먹고 다시 구름 전망대로 향했다. 고개를 드니 맑은 가을 하늘이 일출을 보여줄 모양이었다. 전날 이미 한번 올랐다고 가는 발걸음이 더 확신에 찼고 체감상 더 빨리 전망대에 도착했다. 올랐을 때의 시각은 여섯 시 오십 분. 십일월 초 화계사에서의 일출 시각은 일곱 시 십분. 아직 일출이 시작되지 않은 십일월 초의 북한산 초입의 날씨는 서늘해 '오우 춥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훤히 서울 도심이 내다보일 정도로 시야를 가리는 게 없으니 어쩌면 추운 건 당연한 사실이다. 점점 추위가 누적됨에 따라 체감하는 대기 시간도 길었다. 금요일 세 시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기분이랄까. 엄청 기대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게 무엇이든 다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기다림이었다.
마침내 7시 10분, 노른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몰도 일출도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부터는 그 속도가 빨라진다. 화계사의 일출도 마찬가지였기에 더 집중해서 보고 카메라 셔터도 빠르게 눌러 짧은 순간을 박제했다. 해가 빼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반 이상 모습을 드러낸 시간들은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서 잠이 덜 깬 것은 아닐까-헛웃음이 날만큼 아름답고 희귀한 풍경이었다. 서울에서 일출을 본 것도 신기하고 템플스테이에 와서 일출을 본 것도 신기하고. 어떻게 생각해도 이건 자주 있을 일이 아니어서 그 감동이 더 컸다.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지만 그날은 추워도 괜찮은 날이었다.
법주사 템플스테이에는 비장의 등산 프로그램이 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오르지 못할 산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바로 '수정봉 등산'이다. 수정봉 등산은 평소에는 오직 템플스테이 참가자와 스님만 오를 수 있고 그 외 일반인은 매년 1월 1일에만 개방된다. 이렇게 기회의 문이 좁아 평소에 등산 취미가 없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도 수정봉에 오르는데, 다행히 550m인 수정봉 등산 출발지인 법주사의 고도가 이미 350m라 도전할만하다. 아, 물론 도전할만하다는 의미가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게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불과 108배를 이행한 후의 등산은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다. 등산로도 어찌나 계속 올라가던지. 한 시간 가량이면 오를 수 있는 수정봉은 평소에 등산 취미가 있어도 무난하다고 할만한 코스가 아니었다. 템플스테이 법복 바지가 헐렁하고 편한 게 어찌나 다행이던지.
그럼에도 수정봉 정상을 올라야 하는 부수적인 이유가 있다면 진짜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를 닮은 바위'라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고 봐야 닮은 어설픔이 옵션이기 마련인데 수정봉에 있는 바위는 정말 거대한 거북이를 닮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옵션인 전설까지.
태종이 세수를 하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쳐 도사에게 물어보니 조선 명산에 있는 큰 거북이 당나라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재물이 그리고 가는 거라 답해, 조선 땅을 이 잡듯이 뒤져 수정봉 거북 바위의 목을 잘랐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 얼굴과 몸통을 다시 붙이려고 진흙으로 덮은 흔적은 전설에 신빙성을 더한다.
설령 거북바위를 빼더라도 수정봉은 정상이 넓고 평평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앉아서 광활한 뷰를 감상하기에 편안하다(법주사에서 깔고 앉을 휴대용 방석도 대여해준다). 신기하게 뻗어있는 고사목과 구불구불 멋들어진 소나무 깊고 웅장한 멋이 있는 속리산을 보고 있으면 헥헥대던 힘겨움이 잊히고 '잘 올라왔다!'는 뿌듯함만이 남는다.
수정봉은 함께 방을 쓴 두 분과 함께 오른 산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혼자 템플스테이를 가면 대체로 혼자 온 다른 분들과 방을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방이 2~3인용이라). 법주사도 그랬는데 치약을 빌린 것을 계기로 말을 섞게 돼 함께 수정봉에 올랐다.
"다들 잘 올라가시네요."
"이제 쉬자고 할 거예요."
"우리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갈까요?"
"누가 여기 금방 올라간다고 했어요? 으아..."
올라가는 길에 서로 으쌰 으쌰 응원해서 그나마 빨리 올라갈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몇 번을 더 쉬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 물론 응원을 한 건지 다 같이 투덜댄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입산 금지라고 쓰여 있는 팻말과 뭐라뭐라 글귀가 쓰인 키보다 큰 바위를 지나니 어느새 수정봉 정상이 보였다. 이렇게 정상 면적이 클 줄이야. 꼭 남양주의 사패산 정상을 닮은 평탄한 바위가 산 위에 얹어진 듯했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침대인 걸까. 드러눕고 싶어지는 평탄함에 뿌듯함을 먼저 발라당 눕혔다.
같이 오른 덕분에 인증샷을 남길 수 있었다(적극적으로 셔터를 눌러주던 두 분께 이번 기회를 빌어 감사를 전한다). 서로 포즈도 추천하며 사진도 남기고 함께 바위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속리산의 일부를 보는 시간이 특별했다. 그중 한 분이 주머니에서 챙겨 온 비스킷을 비장의 무기처럼 짜잔! 하고 나눠주셨는데 그 맛에 초코 비스킷에 대한 애정까지 생겼다.
혹시 혼자 템플스테이에 간다면 함께 하는 참가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자연스레 말을 걸어보자. 함께 할 때 만들어지는 추억이 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