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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pr 22. 2024

[#10. 단상집] 세계여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1.

다시 혼자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족들은 한국으로, 나는 그리스 아테네로 왔다. 실컷 에어비앤비와 매 끼니 배부른 음식들을 누리다가 다시 호스텔 도미토리와 서서 먹는 테이크아웃 음식에 적응하고 있다. 아 슬퍼. 뭔가 더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돈이 없다. 다시 최대한 아끼면서 적당히 타협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행히 동네 치안이 안 좋다는 말이 많았던 호스텔(알면서도 잡은 건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은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편이다(샤워실과 화장실까지 만족!). 동네도 체크인했던 날에는 비가 오기 직전의 날씨 때문에 '안 좋긴 안 좋아 보이네...' 생각했는데, 날이 개고 보니 또 해지기 전에 꼭 들어오는 내 여행 스타일에는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테네 떠나는 날까지 가방도 나도 잘 지키는 걸로.


2.

아테네 지하철은 구글맵이 무용지물이다. 구글맵을 봐도 그리스어를 모르니까 지하철 노선도랑 대조를 할 수가 없다. 구글맵은 일부 그리스어만 제대로 표시하는 건지 안내판에 써 있는 글자와 항상 다르다. 구글맵을 보는 것보다 노선 색깔을 익히는 게 훨씬 유용하다. 빨간색은 몇 호선 이런 식으로.

그리스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외국인들이 한글을 그림으로 인식한다던데 이런 기분인 건가' 생각한다. 글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그림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유추도 어려운 글자를 쓰는 나라에 왔다.


3.

앞으로 남은 도시가 더 있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이번 세계여행 최고의 음식이 될 예정인 음식이 생겼다. 바로 그리스의 국민 음식 기로스! 비빔밥 샌드위치 철판 볶음밥과 같이 여러 재료를 한데 섞어 만드는 음식을 좋아하는 내가 만난 또 하나의 잡탕(?)음식이다.

채소와 감자튀김 고기 샤워크림이 한데 들어간 케밥류인데 겉에 피는 써브웨이의 플랫과 비슷하다.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이다. 어쩐지 인도의 난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처음 한 입 먹자마자 단단히 반했다. 와 이거 뭐야?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크로아티아를 제외하면 특별하게 맛있어봐야 햄버거나 단짠의 초콜릿이 다였는데, 3.90유로에 이런 맛이 가능하다니. 그리스를 떠나면 이걸 한국에서 어떻게 먹나- 벌써부터 걱정된다. 처음부터 맛집을 잘 찾은 건지 모르겠지만 기로스의 신의 한 수는 재료를 듬뿍 넣어주는 것에 있는 듯 하다. 특히 사워크림! 한국에서도 사워크림은 많이 먹어봤는데 이렇게 깔끔한 맛이 나는 소스였나 다시 봤다.

돈이 조금만 더 여유 있었으면 아침 점심 두끼는 사 먹었을 거다. 이런 음식이야말로 진정한 '갓성비'일지도.

 

4.

해외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은 현저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에서 일했던(혹은 일하는) 사람들의 영상은 가끔 본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런 마인드로 일하고 싶어서. 장소가 뭐가 중요하겠나. 어디서든 열심히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태도가 본질인 거지.

그렇게 영상을 보다가 발견한 명언. 앞으로 얼마나 크게 변화하던 결국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나'만의 무언가를 찾는 거다.


5.

최강야구 새 시즌이 시작됐다. 본방사수를 못 하고 있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나마 유튜브 없었으면 방영일마다 통곡할 뻔 했다. 귀국하면 열심히 복습하고 본방사수해야지. 열심히 해보려는 태도가 여기에도 해당되는 모양이다.


6.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진 한 달 남았다. 이제 한 달 여행을 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2023년 10월 어느 날부터 2024년 5월 어느 날까지. 짧다면 짧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체감도 길다. 거의 살다시피 하고 가는 기분이다. 일년도 채우지 않았는데 나에겐 꽤 큰 도전과 터닝포인트였는지 외국 물을 잔뜩 마신 기분이다. 도시와 날씨와 문화가 계속 바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적응할만하면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였으니까. 앞으로 딱 한 달만 적응의 도르마무를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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