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본질 3편 2장
좀비는 언제부터 괴물이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그 괴물은 욕망의 암시와 성적 불안의 은유적 상징이 되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좀비라는 이미지가 대중문화 안에서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1932년, 할리우드의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되는 <White Zombie>에서 시작된다.
<White Zombie>는 아이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젊고 아름다운 백인 여성 ‘매들린’.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성은 부두 사제 ‘보코르(bokor, 부두교에서 흑마법을 수행하는 사제)’의 힘을 빌려 그녀의 의식을 지우고 ‘좀비’로 만들어버린다. 이때 보코르가 사용하는 노동력은 흑인 남성 좀비들이다.
그들은 감정도, 언어도 없고, 명령만 수행하는 비인간적 신체로 묘사된다.
이 구조는 단순한 플롯이 아닌 시각적 정치학이다.
백인 여성: 성적 대상이자 구출되어야 할 순결한 존재
흑인 좀비: 동물화 된 노동자이자 잠재적 성적 위협
보코르: 제어 가능한 타자의 욕망을 조종하는 남근적 권력
이 삼각 구조는 영화 내내 인종과 젠더의 불안을 교차시키며, ‘백인 여성의 순결’이라는 신화와 ‘흑인의 욕망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서사화한다.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한 것은 '좀비는 무섭다'가 아니다.
그보다는 '흑인의 욕망은 위험하다, 여성의 몸은 보호되어야 한다'라는 시대의 감정을 기호화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흑인 좀비는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존재 자체가 성적 불안의 그림자로 작용한다. 그는 여성 주변을 맴돌고, 보코르의 명령에 따라 여성에게 접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음울한 불안을 유발한다.
이는 백인 사회가 흑인 남성에 대해 품고 있던 성적 공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 공포는 실제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 자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 구조를 완성하는 것은 백인 남성의 구원 플롯(plot)이다. 여성은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흑인 좀비는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든 갈등은 결국 백인 남성의 개입으로 해소된다. 좀비는 쓰러지고, 보코르는 제거되며, 여성은 기억을 되찾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미국 백인 사회가 바랐던 ‘질서 회복의 판타지’다.
그 질서란,
여성은 통제되고,
흑인은 침묵하며,
남성은 질서의 수호자라는
가부장적 상징체계이다.
<White Zombie>는 공포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억압된 감정의 왜곡된 반동이 깔려 있다. 그것은 당시 미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던 집단적 불안의 정서적 표출이었다.
인종적 불안: 식민지 출신의 ‘이방인’들이 미국 사회에 유입되던 시기.
성적 억압: 여성의 해방과 자유연애에 대한 도덕적 경계.
경제적 불안: 대공황기의 계급적 위기의 심리적 전이.
이 모든 불안을 ‘좀비’라는 기호가 감당해 내는 것이다.
좀비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의 존재는 늘 욕망의 흔적을 지니며 불쾌하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지만,
관객은 그를 통해 감정을 주입당한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두 번 타자화 되었다.
좀비의 인종적 타자화 – 피부색, 언어 없음, 문화적 낯섦
좀비의 성적 타자화 – 순결한 여성의 몸에 접근하는 욕망의 대리자
이렇게 좀비는 단순히 괴물이 아니라, 사회가 두려워하는 감정의 이중 대리자가 된다.
좀비는 인종주의의 불안과,
성적 금기의 혼란을
공포라는 기호의 껍데기로 봉합한 존재다.
그리하여 좀비는 초자연적 공포의 상징에서 사회가 만든 기호가 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조지 로메로에 이르러, 좀비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집단적 폭력’으로 재탄생한다.
그들은 기원도 목적도 플롯도 없이 움직인다. 이제 괴물은 서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좀비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감정 없는 생존기계로 확장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