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무엇의 문제인가, 적응과 감정의 철학적 보고서
자살론 5편 4장.
그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자살자가 남긴 자리에 조용히 퍼지는 말이다. 이 표현은 언뜻 중립적이고,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무거운 이데올로기적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액체 근대라 명명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안정적인 정체성은 사라지며, 인간은 유동적인 자아를 구성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은 더 이상 상호작용을 통한 안정된 동화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떤 자살자는 이 잔혹한 적응 과정을 회피한 사람이 아니라, 그 과정이 요구하는 지속적인 자기부정을 끝까지 의식하고,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소진시키는지를 직시한 사람일 수 있다.
'적응하지 못했다'는 시스템의 무결함을 전제로 한다. 마치 사회는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면, 그 시스템에 불균형을 일으킨 것은 오직 개인이라는 식이다. 때문에 ‘적응 실패’란 단어는 은폐된 폭력의 언어다. 이 말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 가능성을 제거하고, 문제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 내부적 오류로만 축소한다.
과연 사회 구조는 옳고 개인은 오류가 났는가?
하지만 자살자들과 가까웠던 사람들의 말에는, 다른 실상이 숨겨져 있다. 그들의 유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은 유사한 정서의 증언을 한다.
그 친구, 말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했어요.
계속 시도했어요. 그때마다 실패했지만 또 시도했어요.
너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어요. 그만큼 책임감이 지나칠 정도여서 대충 하라고도 말했지요.
그들은 어쩌면 사회에 적응을 못 했던 것이 아니라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너무 과하게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타인의 기대를 너무 잘 알고, 조직의 눈치를 너무 잘 감지하고, 사회의 온도를 누구보다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와 '되어야 하는 나' 사이에서 자신을 조정하고 꾸미고 연기하며 살았고, 그 반복된 자기부정이 혼란으로 다가왔고 결국 탈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랬다면 내가 알야 챘을 것이다.
이혼 후에도 여전히 회사 생활에 충실했다. 다만, 말이 좀 줄어들었을 뿐이다.
SNS에선 늘 웃는 얼굴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주변인은 자살자들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파동의 변화가 있지만 주변인이 알아챌 만큼 큰 진폭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살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밖이 아닌, 내면에 쌓아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된 위선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가 강요한 침묵을 행하고 있었다. 잘 지내는 척, 의연한 척, 감정 조절을 잘하는 성숙한 사람인 척... 그러나 누군가는 연기를 끝까지 계속할 수 없다.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우메다 토모히로(梅田智弘, 1980–2008)는, 이러한 ‘적응의 파열’이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해체시키는가를 비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는 2008년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발생한 가토 도모히로의 무차별 살인 사건 이후, 그 사건을 단지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고, 그 배경에 도사린 사회 구조의 폭력성과 개인의 실존적 고립을 깊이 있게 사유한 인물이다. 그 자신도 오랜 비정규직 노동, 실직, 인간관계의 단절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그 파열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삶의 의미 자체가 소멸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더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썼다. 그의 유서와 생전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기술된다.
나는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보려 했지만,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지쳤을 뿐이다.
그의 기록은 자신이 어떻게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갔는지를 응시한 사람의 언어였다. 그는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조율과 버둥거림을 글로 보여 주었던 사람이었다.
윤현석(육우당, 1984–2003)은 한국의 청소년 LGBT(성 소수자,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인권 운동가였다. 그는 ‘동성애자는 비정상’이라는 폭력적 시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사람이다. 사회는 그에게 침묵하고 삭제하기를 요구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말하려 했다.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나는 비정상이 아니다
나는 병든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인간으로 살고 싶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기록하려 했다. 어쩌면 그에게 자살은 패배나 포기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을 수도 있다.
그의 유서 역시 그 고백의 연장선에 있다.
동성애자인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나를 틀렸다고 말할 뿐이었다
윤현석의 죽음은 적응을 강요하는 사회의 폭력적 기준에 맞서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는 본성을 꾸미지 않았다. 오히려, 날 것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끝까지 언어를 사용했던 사람이었다.
수많은 청년 자살자들의 유서 속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정서가 있다. 보건복지부, 청년자살예방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공개한 유서 자료에 따르면, 자살은 순간적 절망의 폭발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내와 사유 끝에 남은 흔적으로 읽힌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견뎌야 했다.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이제 더는 버틸 수 없다.
실패한 것도, 포기한 것도 아니다. 그냥 끝이라고 느껴졌다.
그들은 감정적 충동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이 남긴 유서에는 끝까지 살아보려 했던 사람의 고백과, 반복되는 자기부정 속에서도 자신을 붙들고자 했던 내면의 고뇌들이 담겨 있다.
때문에, 이들의 유서를 사적인 글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 구조의 무게와 압력을 보여주는 사회적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
삶은 의지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모든 존재는 무의식적 생존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의지는 언제나 결핍을 낳는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 되고, 충족되더라도 곧 지루함으로 바뀐다. 그는 삶 전체를 고통과 지루함 사이의 진자 운동으로 보았고, 이러한 세계에 대한 인식은 자살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쇼펜하우어는 자살을 찬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삶을 중단하려는 의지를, 고통의 본질을 인식한 자의 존재론적 결단으로 이해했다. 단순한 충동이 아닌, 고통의 구조를 꿰뚫은 사유의 결과로써의 자살. 이것은 불교의 무욕(無慾)과도 통하며, 고통이 불가피한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거부의 방식'이었다.
자살은 여기서 하나의 존재론적 중단이다. 세계와 자신을 잇는 ‘의지’를 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그 고통을 끝내고자 하는 마지막 해석의 행위다. 이 점에서 쇼펜하우어의 고통 철학은, 자살을 ‘삶을 진지하게 사유한 끝에 남은, 가장 정직한 중단’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삶이 고통의 진자 운동이라면, 그 고통을 인식한 자에게 남은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중단’이고 또 하나는 카뮈가 제시한 ‘반항’이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말한다.
유일하게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다.
이 한 문장으로 그는 철학사의 중심에 섰고,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날것의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살이라는 질문을, 단순히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치열한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카뮈에게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진 존재다. 삶에는 본질적인 의미가 없고, 세계는 응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는 반항해야 한다.' <시지프 신화> 속 인물처럼, 바위를 산 위로 굴리는 형벌을 매일 반복하면서도, 그 형벌의 무의미함을 인식한 채 다시 바위를 올리는 인간. 그것이 바로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의식의 반항이다.
그는 자살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철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질문으로 삼는다. 자살은 부조리를 ‘직시한 자’가 내리는 극단의 응답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살자를 ‘무기력한 회피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와 자신의 무의미함을 끝까지 사유한 자로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인간은 그 ‘반항’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쳤다는 점이다. 부조리를 인식하는 의식 자체가 인간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이끄는 경우, 자살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의식의 과잉으로 인해 무너진 실존적 파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단지 심리적 충동이 아니라, 끝까지 사유한 자의 선택, 즉 감정적 소멸이 아니라 철학적 해석의 종착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살아 있으려 했던 모든 시도의 마지막으로 남은 ‘침묵의 반항’이기도 하다.
카뮈는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한 인간에게 반항을 요청했지만, 그 반항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친 이들도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시지프처럼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대신,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러나 이 주저앉음은 무기력이 아니라, 거짓에 대한 과잉 감수성과 진실에 대한 충실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존재들은 철학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프란츠 카프카는 법, 가족, 권위, 제도 등과 조화되지 못하는 내면의 감각을 문학으로 증언했다. <변신>에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가족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실한 인간의 자화상이다. 그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이후에야, 비로소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 카프카는 말한다.
나는 존재의 고통을 표현하려 한다.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타인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모두에게 있다고 믿는다
카프카에게 고통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시대와 구조, 그리고 존재 자체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잉여의 감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병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병들었다는 것을 글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견딜 수 없는 내면’을 견디기 위해 문학을 택했고, 자신의 무력함을 세계의 불합리에 대한 민감함으로 치환해냈다.
에밀 시오랑은 <해체에 관하여>에서 존재의 무가치와 시간의 무의미함을 끝까지 응시한다. 그는 도피하지 않았고, 끝내 신경쇠약과 자살 충동 속에서 자살하지 않은 자살자로 남는다. 그의 문장은 살아 있는 해체 그 자체다. 철학이 도달하지 못한 감정의 깊이를, 시오랑은 글로 분해했다.
헤르타 뮐러는 전체주의 속에서 인간 감각이 어떻게 말살되고 침묵하게 되는지를 소설로 남긴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순응하지 못한 자’가 아니라, ‘거짓에 민감한 자’다. 침묵 속에서도 감각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 그 감각은 때때로 죽음과도 바꿔야 했던 것이다.
이 모든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적응하지 못한 자가 아니라, 적응하지 않기로 한 자도 있다.
그들의 감정은 병이 아니라, 저항이다. 그들의 고통은 결함이 아니라, 감각의 윤리다. 문학과 예술, 철학은 오래전부터 ‘부적응자’라 불린 이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록해 왔다. 세상에 맞춰 살아가지 못한 이들은, 때로 가장 정직하게 세계를 본 자들이었다.
그가 무너지기 전,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는가?
이 장에서 살펴본 사례들, 분석한 구조들, 인용한 철학과 예술은 모두 이 질문을 향해 수렴된다.
자살한 사람은 무기력한 패배자가 아니라, 가장 먼저 세계의 오류를 감지한 자일 수 있다. 가장 먼저 시스템의 무한 속도를 감지한 자, 가장 먼저 사회의 요구가 모순이라는 걸 알아챈 자, 그리고 가장 먼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낀 자들이었다.
적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세계가 문제인가?
이 물음에 우리가 진심으로 답하지 않는 한, 자살은 언제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가 은폐한 구조적 폭력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