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지도에서 새로운 지도로
이 책은, 자살을 개인의 병리로 도면화한 낡은 지도를 접고, 감정이 서로 연결되어 흐르는 사회구조의 지도로 다시 그리려는 시도다
자살론 1권에서는, 인간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균열, '부끄러움, 공허, 자기혐오, 무가치감 등'이 개인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비교를 강요하는 질서와 속도를 예찬하는 경제와 정상성을 강박처럼 세우는 문화 속에서 증폭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빛나는 무대 위에서 스러져간 아이돌의 절규 속에서, 성공의 정점에서 공허를 마주한 기업가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사회적 역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름들 속에서 우리는 자살이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목격했다.
그렇게 1권의 논의는 자살을 둘러싼 외부 세계의 구조적 폭력성에 집중했다.
3편 <타인의 눈>에서는 ‘거울자아’의 개념을 통해 인간 존재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의해 위태롭게 구성되는지를 살펴보았다. SNS가 구축한 ‘이미지 자아’의 감옥 속에서 어떻게 진짜 감정을 잃어버리고, 그 분열의 끝에서 수치심이라는 내면의 칼날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지를 추적했다. 현대인은 보이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고, 그 ‘보이는 나’가 무너지는 순간 존재 전체가 어떻게 함몰되는지를 보았다.
4편 <돈의 시대>는 이 구조적 압력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더욱 정교하고 잔혹하게 작동하는지를 고발했다. '나는 지불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현대 사회의 냉정한 문법 속에서, 돈은 생존의 수단을 넘어 존재의 자격이 되었다. 우리는 경제적 실패가 곧 정체성의 해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가장’이라는 역할의 무게가 침묵 속에서 어떻게 남성들을 침몰시키는지를, 그리고 빚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수치심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처벌하게 만드는지를 목격했다. 결국 감정마저 자본의 언어로 번역되고, 실시간 데이터에 의해 조종당하며, 마침내 감정을 표현할 언어조차 잃어버린 현대 세계의 자화상을 목도했다.
5편 <감정 안에 잠긴 사람들>에서는 시선을 다시 내면으로 돌려, 남들보다 더 깊고 예민하게 세계를 감각하는 이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초민감성(HSP)이라는 기질이 ‘둔감 사회’의 폭력적인 정상성 신화 아래 어떻게 병리화되고 오해받는지를 분석했다. 그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누구보다 정직하게 온몸으로 감각했기에 소진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시스템은 옳고 개인은 오류’라는 사회의 오만한 전제를 온몸으로 반박하는 가장 슬픈 증거였다.
이처럼 1권의 여정은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 관계적 ‘지형도’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타인의 시선, 돈, 역할, 그리고 정상성의 규범이라는 외부의 힘들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을 포위하고, 감정이 흐를 통로를 막아버리는지를 확인했다. 우리는 자살이 감정이 고여 썩어버린 결과이자, 관계가 단절된 자리에 남는 침묵의 메아리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본질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과연 외부의 감옥뿐인가? 인간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손길은 정말 외부 현실에만 존재하는가? 만약 사회적 압력과 경제적 결핍이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직 문제의 절반밖에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더 근본적이고 강력한 힘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 또아리 틀고 있을 수도 있다. 1권이 외부 세계가 구축한 ‘보이는 감옥’에 대한 기록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인간 의식 자체가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더 깊이 내려가야 한다.
[자살론 2권]은 바로 이 내면의 심연을 탐사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2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하나, 상실은 실제로 무언가를 잃었을 때만 발생하는가?
<상상의 무게> -가지지 못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인간은 가진 적 없는 사랑, 살아보지 못한 삶, 되어보지 못한 나를 잃고 절망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현실의 무게가 아니라, 무너져버린 ‘상상의 무게’ 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아는 어떻게 ‘이상적인 나’라는 허상을 만들어내고, 그 허상이 현실의 나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상상의 무게'는 인간이 현실보다 상상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자살이 종종 이 상상에 의해 비롯됨을 추적한다.
둘,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에 인간은 왜 공허한가?
<지루함의 강박> - 풍요 속의 공허.
현대 사회의 비극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과 권태에서 온다.
인간은 왜 만족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었는가?
성공의 정점에서 도파민이 인간을 배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루함의 강박'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에 오히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는 역설을 파헤치고, 결핍이 사라진 시대에 무기력과 우울이 확산되는 이유를 해부한다.
셋, 인간을 죽이는 것은 현재의 고통인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공포인가?
<공포의 현재화> -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이 오늘을 지배한다.
수많은 이들이 아직 파산하지 않았지만 파산할 것을 두려워하며, 아직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감옥에 갇힌 자신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끝낸다.
감정은 어떻게 시간을 왜곡하고, 미래의 공포를 ‘지금 여기’의 현실로 소환하는가?
'공포의 현재화'는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상상이 현실보다 더 폭력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자살이 현재의 고통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예측된 미래로부터 온 감정적 공격’ 임을 규명할 것이다.
넷, 우리의 의식 자체가 하나의 감옥일 수는 없는가?
<차원의 감옥> - 납작해진 세계 속의 절망.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길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인식이 세상을 납작한 2차원 평면으로만 보도록 강요하는 것일까?
‘차원의 감옥’에서는 절망이 ‘평면화된 공간 인식’이며, 자살 충동이 수평적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의 소멸 과정’ 임을 탐구한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과 언어, 그리고 서사의 재배치를 통해 어떻게 이 ‘차원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다섯, 의식은 왜 스스로를 파괴하는가?
<의식의 반란> - 자기 자신에 대한 파괴적 해석.
인간은 고통을 느끼는 것을 넘어, ‘고통받는 나’를 자각하고 판단하는 유일한 존재다.
이 자기의식은 어떻게 ‘자기혐오’라는 치명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가?
‘의식의 반란’에서는 의식의 분열된 구조를 파헤치며, 자살이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나는 사라지는 것이 낫다’는 의식의 냉정한 ‘판단’ 일 수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의식 자체가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일 수 있다는 뇌과학의 도발적 질문을 통해, 우리가 믿는 ‘나’라는 존재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되묻는다.
현실. 그리고 미래...
1권의 여정이 외부의 적들과 싸우는 과정이었다면,
2권의 여정은 내 안의 가장 깊은 전장으로 들어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상상, 공허, 공포, 그리고 의식이라는 이름의
가장 강력한 적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살이라는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만든 감옥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설계한 감옥의 구조까지 해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분석의 끝에서, 우리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 가지 정책 아이디어를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회복은 비상구 하나로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흐르게 하는 제도와, 삶의 안전한 그릇이 되어 주는 사회 구조, 고통을 숨기지 않고 언어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의 문법들, 그리고 인간의 일상을 잃지 않도록 지탱하도록 관계의 망들을 재조직해야 한다.
이제 진단은 닫고, 설계를 연다. 감정을 품는 사회만이 인간을 끝까지 품을 수 있으며, 그 출발은 우리가 함께 다시 짜는 제도와 관계, 언어와 생각의 리듬 속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간 존재 자체가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