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마치며
‘반지하’라고 하면 보통 어둡고 음습한 공간을 떠올린다.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곳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굳이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반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주거 형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반지하’가 꼭 어둡고 음습한 공간이기만 하지는 않다. 유년시절의 일부를 반지하에서 보낸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그곳도 충분히 깨끗하고 아늑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유치원 다닐 무렵의 나는 이상하게도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문을 열면 노란 장판이 깔린 좁은 복도(거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좁아서 복도라고 칭하겠다)와 부엌이 보인다. 방은 단 두 개. 하나는 딸 셋이 쓰는 방, 또 하나는 부모님과 남동생 방이다. 그야말로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공간이다. 바로 그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옹기종기.
엄마는 부엌과 복도 바닥을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았고 늘 깨끗하게 정돈했다. 그래서인지 우리집이 특별히 가난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잣집 아이가 가난뱅이 놀이라도 하듯 즐기면서 지냈던 것 같다. 언니들과 방 하나를 나눠 쓰는 일도 재미있었고, 좁은 식탁에 다닥다닥 붙어 앉는 일도 캠핑이라도 온 것처럼 좋았다.
당연히 그곳에 얽힌 추억도 많다. 달력 뒷면에 한글을 베껴 쓰거나 빨간 담요를 덮고 앉아서 시계 보는 법을 배우던 기억, 남동생이 아장아장 걸어오던 모습, 컵에 담긴 액체를 물인 줄 알고 원샷했는데 사실은 소주였던 일이며 처음으로 산딸기를 먹어보고 그 씁쓰레한 맛에 당황했던 기억들.
두려웠던 기억도 있다. 하루는 귀가가 늦은 엄마 때문에 아빠가 단단히 화가 났다. 당시 1층, 2층에 사는 사람들은 대문을 사용했고, 반지하에 사는 우리는 전용 쪽문(?)을 사용했는데, 쪽문 가까이에 위치한 방이 우리 세 자매의 방이었다. 우리 방 창문을 열고 나오면 현관문을 통하지 않고서도 밖으로 나가는 쪽문을 이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어쨌든 문제의 그날, 엄마가 밖에서 문 열어달라고 외치는데 아빠는 엄마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언니들 왈, 네가 나서야 한단다. 용감하게 창문 밖으로 나가서 쪽문을 열고 위기의 엄마를 구하라, 이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였다. 몸집이 가장 작은 나만이 저 창문을 통과할 수 있다나? 단 5분? 길어야 10분쯤 걸렸을까? 그 짧은 모험에서 나는 두려움, 흥분, 성취감, 안도, 환희를 모두 느꼈다. ‘보물섬’의 주인공이나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모든 기억들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하나 있다.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을 반지하 집에 초대한 일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함께 논 기억도 없다. 앞뒤 맥락은 뚝 잘린 채로 반지하 집의 현관을 자랑스럽게 열어젖힌 기억만 TV 프로그램의 맛보기 영상 클립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문을 열기 전, 선생님과 친구들을 뒤에 세운 채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마치 건강 채널의 진행자가 오늘의 음식을 공개하기 전 뜸을 듯이듯이 말이다. 그러고서 문을 열며 외쳤다.
“짜잔!”
반질반질한 노란 장판과 작은 부엌과 두 개의 방문이 우리의 시선 아래로 펼쳐졌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짜잔’씩이나 외친 걸까? 가난하고 초라한 나의 집을 감추기는커녕 굳이 보여주겠다고 친구들을 데려오고, 심지어 ‘짜잔’이라니. 뭐가 그리도 자랑스러웠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건 당시의 친구들과 선생님의 반응이다. 그 아이들도 초라한 살림살이에 놀랐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우와!”
선생님도 우와, 친구들도 우와. 그들은 나의 ‘짜잔’에 응답해주었다.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어두운 반지하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시절, 초라한 나의 집을 남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시절의 나. 살면서 자신감도 많이 꺾이고 상처도 받았지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조금이나마 힘을 얻는다. 그래, 넌 원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소녀였어. 그게 너의 본성이야. 너는 그 본성을 되찾기만 하면 돼.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도닥인다.
아팠던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자고 마음먹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때로는 부끄럽고 슬픈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써보기로 했다.
“뭐 어떠냐. 그냥 쓰는 거지.”
이 한마디면 정리가 되었다.
이제 어린 시절의 그 소녀와 함께 다시 한번 나의 집 문을 활짝 열어젖히려고 한다. 그 속에 자리한 것들이 아무리 초라하고 부끄럽고 어설플지라도, 다시 한번 기쁘게 외치고 싶다.
“짜잔!”
누군가 응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 두통에 대한 긴 글을 마칩니다. 함께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통 환자들을 위해 노파심에 몇 글자 더 적자면, 미네랄이 풍부한 식사, 음료도 도움이 됩니다.
좋은 음식, 운동, 명상 등등 두통에 좋다는 건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요.
너무 많은 정보에 휘둘리지 마시고 본인에게 좋은 것 몇 가지만 골라 꾸준히 해보시길 권합니다.
꼭 좋아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