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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Sep 15. 2022

이모, 이제 할머니 되는 거야?

그렇게 나이들고 있다.

이모, 이제 할머니 되는 거야?

2022, 마흔 살이 되었다. 4 시작하는 나이가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40대의 계획? 안갯속처럼 희미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뿐이다. 매일 잠들기  클라우드에 백업해놓은 ‘오늘의 사진 본다. 10  사진까지 있다. 작년 다르고, 재작년 다르다.

점점 피부 탄력이 떨어지며 살이 쪄간다. 예전엔 잠만 자고 일어나도 체중이 2kg 빠졌는데, 지금은 자기 전과  치의 오차도 없다. 주름이 깊어졌다. 활동이 적어지면 근육은 금세 뻣뻣해지고 기지개만 잘못 켜도 어깨에 담이 들린다. 지구상의 어떤 인간도 거스르지 못한 그것. 노화의 징후들이 찾아오고 있다.




거울을 본다. 머리카락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린다. 흰머리다.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한 것은 35살 여름이었다. 간혹 중력을 거스르며 정수리에 서 있는 반짝이는 한 가닥 새치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우연히 앞머리를 들추다 이마 라인에 더 이상 새치의 정의를 넘어선 흰 머리카락 군락을 발견한 것이다.

"헉!"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마 양쪽 구석을 들추자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불현듯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30대 중반이셨던 엄마가 화장대 거울에 얼굴이 닿을 듯이 바짝 다가서서 앞머리를 들추고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던 장면이었다. 어김없이 물려받은 유전자의 시계가 정확히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35살에 흰머리가 나도록 설계된 인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빠는 40대 후반에 거의 백발이셨다. 그렇다. 나에게 흰머리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호들갑을 떨며 흰머리 박멸에 나섰다. 어찌나 위를 쳐다보며 뽑아댔는지 눈알이 얼얼했다. 뽑을 때마다 두피 깊숙이 따끔거리는 통증쯤이야 정신적인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그때는 그렇게 유지할 수가 있었다. 적어도 골라서 뽑을 수 있는 정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나의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흰머리는 꼼꼼히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37살쯤이었을 것이다. 본가에 내려갔던 차에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여동생에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했다. 동생은 야무지게 족집게를 집어 들고는 내 손이 닿지 않는 뒷통수 쪽을 공략했다.

"언니! 어떡해!!! 엄청 많아!!!"

동생은 뽑을 때마다 울상을 지으며 “어떡해”를 외쳐댔다. 제 엄마의 호들갑에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려온 6살 조카가 뽑혀있는 내 흰 머리카락 무덤을 보고 해맑게 말했다.

"이모, 이제 할머니 되는 거야?"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가끔 지하철에서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섞여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 사람은 관리를 안 하는구나.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야 안다. 아닌 척 감추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도 자연인의 머리를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다. 나의 노화의 바로미터인 머리카락을 보며 속상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45일 마다 염색을 하고, 머리를 빗다 반짝 거슬리는 그 녀석을 뽑아내지는 않는 정도, 그러려니 하며 빗질을 이어갈 그 정도. 나의 노화는 거기쯤 왔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받아들이는 중이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염색도 하지 않고 백발의 할머니로 살아갈 날이 올 것이다. 조금 억울한 것은 내 정신보다 육체의 노화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살아온 시간만큼 ‘성장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된 골동품이 아닌, 계속 자라나는 나무 같은 삶 말이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도전하고 배우려 한다.

그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갔을 때 화장대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와 정수리에 거슬리는 흰머리를 뽑아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내려다보기 좋게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맡겼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것이 있었다. 엄마도 이제 환갑이 넘으니 눈과 손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자꾸만 멀쩡한 것과 함께 여러 가닥을 잡아뽑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흔이 된, 시집도 안 간 딸내미의 흰머리를 환갑이 훌쩍 넘은 엄마가 뽑아주고 있는 상황이라니……

‘이제 엄마와 같이 늙어가는 것일까?’

두피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와중에 자긴 뽑을 머리도  울상을 짓는, 탈모가 시작된 막내 남동생의 안쓰러운 푸념에 모두 한바탕 웃어버렸다.

그렇게 모두 함께 나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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