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나를 찾는 과정
2020년 4월 야간 근무 중이었다.
"난 그냥 얼른 오늘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읽지 않아 1과 함께 덩그러니 놓인 문장을 보자니 순간 ‘와, 이게 내가 친 문장이 맞나?’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이게 아니었다. 근무 때 부정성이 강해지지만, 이렇게까지라고..? 덮어놓은 채 관성의 법칙에 이끌리다 그 순간 파사삭 깨져버렸다.
'할 만큼 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나란 사람은 어딘가에 끌려 억지로는 못하는 독한 사람이다. 독한 사람 앞에 '지'라는 글자가 숨어있는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한 변화하고 해결하려 노력했다. 부서 지원도 시도했고 동기보다 다양한 업무도 맡았다. 중간에 잠시 쉬기도 해 봤다. 이젠 끝이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퇴사를 말하기로 계획한 전 날, 운명의 장난처럼 팀 회식 겸 나들이가 잡혔다. 밀리고 밀려 뒤늦게 하는 첫 팀 회식이었는데 그날 또 기가 막히게 날이 예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슬픈 마음을 애써 감추느라 혼자 가슴 앓았다.
그날 밤, 얼빠진 듯 잠을 설쳤다.
아침이 되고 그 날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출근 준비도 어떻게 한지 모르겠다. 무조건 계획한 대로 실행해야 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운 거잖아? 실행하지 않으면 계획을 세우는 게 무슨 쓸모란 말인가. 의사를 표명하고 관련 절차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먼저 사내 메신저에 들어가 인사담당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어디 소속 누구입니다.
• 의원면직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 몇 월 며칠 자로 하고 싶습니다.
• 관련 절차 및 서류 제출 일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 글을 적어놓고 몇 번을 반복해 읽었다. 이 쪽지 보내면 돌이킬 수 없는 거야. 어떤 회유와 반대에도 내 생각을 주장하자. 내가 맞는 거야!
인사담당자는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으니 만약 퇴사를 정말 하고 싶다면 사직서를 제출해야 절차가 시작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당장 소속 부서 상사들에게 말해야 했다. 순차적으로 개인 면담을 신청했고 조심스럽게 퇴사 의사를 전했다. 진실로 바라고 꿈꿔왔던 순간인데 충격받는 선배들을 보니 마냥 기쁘고 즐거웠던 상상과 달랐다. 현실은 기쁘면서 기쁘지만도 않은 양가감정으로 혼란스러웠다.
반응들은 이러했다. 그저 힘듦의 표현인 줄 아시는 분도 계시고 부서를 바꿔보라는 제안도 있었다. 아직 어려 근시적인 판단이라 말하시는 분도 있고 일단 코로나 끝나고 생각해보라는 분도 있었다. 아직 사직서를 제출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말씀에도 기어코 그 날 바로 인사부서를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에는 무엇보다 사직 사유가 가장 중요하다. 퇴사와 관련된 위원회가 열리는데 사직 사유를 보고 합당하지 않으면 반려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사직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신상에 관한 검토도 이루어진다. 소속기관장의 승인이 나면 서류는 지방청을 거쳐 본청에 올라갔다 최종 승인을 받고 다시 밑으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일을 최소 2주는 잡아야 한다.
퇴사를 하며 다시 한번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는 생각지 못한 수확도 있었다.
1.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부터 진심 어린 충고와 격려를 받는다.
2.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는 의례적인 인사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가깝다고 생각한 사이로부터 잘 가라는 작별인사조차 못 받는 경우도)
3. 몇몇은 그들의 본래 인간적 모습을 예비 퇴사자인 내게 보여주신다.
마지막 근무 날, 퇴근시간이 다 된 무렵 깜짝 퇴직 행사가 벌어졌다. 근무가 아닌 직원들까지 개인적 시간을 내어 나와 주셨다. 서운해하는 사람들을 보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마지막은 웃으며 떠나리!’라고 결심했던 계획을 위해 철저히 울지 않기 위해 애썼다. 시도 때도 없는 눈물을 가진 나는 꽤 애를 먹었다.
나는 퇴직을 하고 있었고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수여식이 진행되고 태극기 밑에서 제복을 입은 나는 사진기를 향해 활짝 웃었다. 꽃다발 증정식이 이어졌다. 여태까지 받은 꽃 중 가장 크고 예쁜 꽃다발이었다. 작은 꽃다발에는 후배가 적은 손 쪽지가 달려있었다. 케이크의 초를 붙였다. 6년을 의미하는 초 6개였다. 앞으로의 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박수 쳐주시며 축하해주셨다. 건물 앞 단체사진도 찍었다. 내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끝까지 손 흔들어주셨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운해하셔서 그 모습에 눈물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사실 내 마음은 괜찮았다. 마지막 근무를 하면서도 얼른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여전한 나를 보았다. 일이 편하고 힘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었다. 나의 선택은 맞았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실린 회사 물건과 선물 등을 함께 집으로 옮겼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집밥을 어머니가 준비해주셨다. 식후, 케이크 3가지 모두 꺼내 가족끼리 디저트 잔치를 벌였다. 또 한 번의 촛불을 켜고 끄며 또 한 번 퇴사를 실감했다. 가족들은 그동안 수고했다며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나 또한 준비한 돈봉투가 있었다. 한 사람씩 전하며 이제 기약 없는 마지막 용돈 일지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렇게 마지막 소감을 남긴다.
"시원섭섭하지만 개운하게 아주 힘껏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