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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13. 2020

검색 말고 사색

자신만의 '좋은 답'을 찾아내는 힘

자기소개서에서는 참 뻔한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성장 배경이 어떻게 되냐는 둥,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성공한 경험은 무엇이고 반대로 실패한 경험은 무엇이냐는 둥,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둥... 처음 취업 준비를 할 때, 자기소개서 질문이 펼쳐진 노트북 화면을 눈 앞에 두고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 혼자만 느낀 감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소개서를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초에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비단 자기소개서뿐만이 아닙니다. 면접도 마찬가지지요. 예상 질문들을 수십 가지 뽑아놓고 친구들 앞에서, 혹은 거울 앞에서 답변을 연습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질문이 있는 반면,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면접관이 만족할만한 답변인지 쉽사리 생각이 나지 않는 질문도 있습니다. 연습이니까 망정이지, 막상 실전에서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면 폭망했겠다,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드는 그런 질문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답이란, 질문자가 예상치 못했던 답입니다.


면접관도 질문을 하면서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어떤 답이 나올 것인지를 예상하게 됩니다. 이건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거의 본능의 영역인 것 같아요. 그래서 본인이 예상한 범주 내의 답이 나오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에 본인이 예상했던 범주를 벗어난 답을 듣게 되면, 관심을 가지고 더 주의 깊게 듣기 시작합니다. 지원자의 말에 면접관이 주의를 기울여 주는 것, 이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죠.


'유퀴즈 온더 블럭'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참 좋아합니다. 본방사수까지는 못하더라도 TV에서 재방송을 만나면 꼭 시청하고, 출퇴근길에 유튜브를 통해 종종 편집본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하나 있는데요, 9살짜리 윤주은 어린이와 함께 한 인터뷰였습니다. "신이 주은 양을 만들 때 무엇을 부족하게 넣은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윤주은 양은 이렇게 대답하죠.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전부 다 넣어주신 것 같아요."

[유퀴즈온더블럭] 윤주은양 인터뷰 中

저는 가슴을 한 대 쿵, 맞은 것처럼 순간 숨을 멈췄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윤주은 양의 대답이 착하거나 예쁘다는 이유는 아니었어요. 정형화되지 않은, 자신만의 대답을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란 겁니다. 이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참신한 대답은, 어린아이가 보다 쉽게 할수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삶 자체가 아직 정형화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어른들은 어떨까요?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어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정보들을 조합하고 재단해서 최대한 그럴싸한 대답을 도출할 겁니다. 하지만 당연히, 대부분은 정형화된 대답이죠.


그렇다면 어른들이 정형화되지 않고 개성 있는 답변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을 사색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검색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잠시 배제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 예비 질문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과제를 당면하게 되면, 이제는 거의 반사적으로 검색을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으니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휴대폰은 잠시 손에서 내려 두고, 손가락의 힘이 아닌 뇌의 힘을 빌려서 사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정말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릴 때 내가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고 싫어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살면서 가장 기뻤던 적은 언제였는지, 취업을 해서 이루고 싶은 삶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대답해야 재치 있고 감동적으로 받아들일지, 내용이 너무 빈약한 것은 아닐지, 그런 고민은 일단 접어 두세요. 살을 덧붙이고 꾸미는 작업은 나중으로 미뤄도 됩니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본인만의 진정성 있는 답을 찾아내는 것라고 생각합니다.


검색해서 나온 답변과 사색해서 나온 답변


사실 이 내용은 제가 직접 만들어낸 내용은 아닙니다. 제가 채용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에, 모 대학교로 채용설명회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해당 학교 출신의 임원분을 모시고 특강을 실시하는 것이 유행이었어요. 그래서 매 년, 매 시즌마다 저도 옆에서 특강을 같이 들었죠. 임원분께서 몇몇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직무가 무엇인가요?"

제 기억에 그 학생은 "백화점 MD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임원분이 다시 질문하셨죠.

"MD가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기에 대한 답변은 사실 생각나지 않아요. 뭐 일반적인 내용들, 본인이 직접 구성한 상품을 판매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뭐 그런 내용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임원분이 질문하셨어요.

"그 이유는 검색해서 나온 답변인가요, 사색해서 나온 답변인가요?"


그 날 채용 특강의 핵심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사색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취업준비생으로서 실용적인 팁이나, 회사생활에 있어서의 장단점 등을 듣고 싶어서 발걸음을 한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특강은 제가 채용업무를 담당하면서 들어온 모든 특강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였습니다. 저 역시도 이미 검색에 너무 물든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집에 돌아가서 잠들기 전까지, 본인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어떤 직장에 취업하고 싶은지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입니다. 숙제예요!"

그 날 저녁, 저도 똑같은 숙제를 하고 잠들었습니다. 앞으로의 회사생활을 통해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입사한 지 3년도 더 지난 그 날에서야 비로소 그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여러분께도 제가 같은 숙제를 드립니다.


본인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잠자리에 드시기 바랍니다.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어요. 취업준비를 하다 보면 원치 않는 회사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당장 취업에 실패할 수도 있죠.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출발입니다. 누구나 반드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와 같은 숙제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다 패배자이게요? 물론 저부터도 그렇구요.


그럼에도 이러한 숙제를 드리는 이유는, 본인이 꿈꾸는 삶의 모습이 그려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발산하는 아우라와 보여지는 태도에서부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이 같은 상황에 부딪힐 때와는 다른 결과를 낸다고, 저는 믿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고의 성숙도는 달라집니다. 그게 바로 사색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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