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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16. 2020

초간단 자소서 레시피

자소설의 작가가 되어 보자.

채용설명회에 나가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자기소개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는 다시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는 '자기소개서 무용론' 유형입니다.


"서류전형에서는 자기소개서 내용은 잘 안 본다던데, 진짜인가요?"

이 질문의 핵심은 '만약 정말 그렇다면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쓸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라는 것이고, 그 안에는 '자기소개서 분량도 많고 너무 쓰기 귀찮아요'라는 속내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표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YES에 가깝습니다. 물론 대기업에서, 특히나 대규모의 공채 모집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 그렇다는 단서조항은 필요겠지만요. 현실적으로 모든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일이 읽어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YES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게, 상황에 따라서 대기업 계열사라 하더라도 어떤 회사는 자기소개서를 별도로 확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면의 질문 - 그렇다면 제대로 쓸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NO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소개서의 활용 가치는 서류전형이 아닌 면접전형에 있기 때문입니다. 역량면접, 혹은 구조화면접이라고 불리는 심층면접에 있어서 대부분의 질문은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토대로 이루어집니다. 지원자가 실제로 경험했다고 작성해 낸 내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때문에 지원자의 목표가 서류전형 합격이 아닌 최종 합격이라면, 당연히 자기소개서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성심성의껏 작성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소개서 작성 방법론' 유형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원자 입장에서는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은 내용이겠으나, 질문을 받는 저로서는 참으로 대답하기 막막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거의 '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만큼이나 광범위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이죠. 그래서 이번 글을 빌어서, 대단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자기소개서 작성 팁 정도는 알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① 소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신입사원 채용의 경우 (거의 모든 회사에서) 자기소개서에 문항을 정해둡니다. 성장과정에 대해서 기술하라든지, 학업 외 사회활동 내용을 기술하라든지 하는 식의 문항들이죠. 이처럼 문항이 애초에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해당 문항에 대한 소제목을 작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효과적입니다. 소제목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글을 읽는 데에 있어서 몰입감을 형성해주거든요. 때문에 보다 효과적으로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소제목을 지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유튜브 썸네일에 자극적이고 기발한 자막을 다는 것처럼요. 본문 내용도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그 내용이 읽고 싶어 지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죠.


② 본문 내용은 너무 함축적이지 않도록


몸담고 있는 회사가 광고대행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지나치게 시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지원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한 줄의 광고 카피를 작성하듯이, 멋들어진 은유와 그럴듯한 비유를 써가면서 기소개서를 포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그러한 글은 일단 호기심이 가기는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잘 읽혀요. 표현이 좋으니 읽는 맛이 나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대다수는 단순히 재미있게 읽고 끝나곤 합니다. 알맹이가 없다고 하기에는 지원자의 노력을 너무 폄하하는 것 같고, 알맹이가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그게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자기소개서는 물론 하나의 글이기 때문에 읽는 재미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로서는 미사여구를 곁들이기보다는 담백하고 명료한 문체를 사용하시는 것이 훨씬 좋다고 봅니다. 굳이 미사여구를 곁들이지 않더라도, 내용이 재미있는 글은 충분히 재미있게 읽히기 마련입니다.


③ 다짐과 의지보다는 경험을 토대로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소개서의 활용 가치는 면접전형에서 발휘됩니다. 그리고 면접전형에서는 앞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우리 회사에서 일할 것인가, 이것을 보고자 하지 않습니다. 취업하기 위해서 지원하는 마당에 열정과 의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검증되지 않고 순간의 분위기로 다짐할 수 있는 약속은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기소개서는 철저히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문항 자체가 그래요. 성장과정, 사회활동, 직무 관련 경험, 성공사례나 실패 사례 등이 대부분의 문항을 차지합니다. 유일하게 미래에 대해서 묻는 문항이 있긴 하죠. 5년 뒤, 또는 10년 뒤에 이 회사에서 본인의 위치가 어떨 것 같냐, 혹은 본인이 바라는 모습은 어떤 것이냐 라는 식의 문항입니다. 이러한 문항을 작성할 때도 가급적이면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 성격이 이러하니 이러한 점을 살려서 어떤 팀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혹은 내 경쟁력이 이것이니 이것을 잘 살려서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처럼 말이죠. 막연히 그때쯤이면 어느 위치에 가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를 담당하고 있을 것 같다는 식의 답변보다는 보다 신뢰가 가는 답변이지 않을까요?


저는 자소설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자소설은 '자기소개서를 소설처럼 지어내서 작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좋지 않은 말이죠.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스스로 한 명의 작가로서 책임감과 자존심을 걸고 독자(채용담당자)로 하여금 재미와 감동에 빠져들게 만드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로, 자소설이라고 애칭 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여기에 허구가 들어가면 안 되겠죠. 하지만 모든 소설이 픽션은 아니잖아요?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담백하고 진솔한 어투로, 흥미로운 제목과 함께 자신의 논픽션 자소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서류전형에서는 자기소개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저는 채용을 담당하던 시절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를 일일이 다 읽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 때문에 야근을 하면서도 참 재미있게 읽어나갔어요. 거기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는 채용 담당자가 아니어서 자기소개서를 읽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인사쟁이로 계속 남아있다 보면, 혹시 아나요?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자기소개서를 훗날 제가 읽어볼 인연이 생길지. 여러분의 근사한 자소설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닿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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