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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19. 2020

전공은 엿 바꿔 먹는 건가요?

전공무관이라 다행이야.

최근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업의 많은 부서에서 필요 전공란에 '전공무관' 네 글자를 적어 넣습니다. 간혹 우대사항에 'OO전공 우대' 정도만 기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죠. 물론 직무성격에 따라 케바케이긴 합니다. IT 전문직군을 채용하는 데 국문학과를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정도로 전문성을 요하는 직무에 대해서는 전공을 고려할 수밖에 없겠지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보다 일반적인 직무, 외부에서 보기에는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학에서의 전공지식이 필요할 정도로 전문적이지는 않은 직무들에 대해서입니다.


채용공고에 전공무관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면 그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됩니다. 전공을 보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사실은 특정 전공자에게 가점을 부여한다든가 하는 일은, 제가 다양한 회사에 몸담아 본 경험은 없는 터라 모든 회사가 다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전공보다는 다른 사항들을 더 보겠다는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공무관인 직무라 해도 '경향'은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경영전략본부처럼 기획, 인사, 재무 등 회사의 경영상황을 관리하는 조직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경영/경제, 또는 회계/행정 관련 전공자가 많기는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60% 수준이 경영 유사 전공자들인데, 이것은 광고대행사라는 특성상 신문방송이나 미디어 관련 전공자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일반 회사의 경영본부라면 그 비중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는 해당 전공자가 특별히 면접을 더 잘 보거나 그들에게 가점을 주어서 나온 결과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조직에 지원하는 지원자들 자체가 경영관리와 연관된 전공자가 많다 보니 결과도 그렇게 나온다고 해석해야 맞습니다. 전자공학과를 나온 사람이 인사팀이나 재무팀에 지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관리조직이 아닌, 소위 현업이라고 이야기하는 부서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광고대행사의 현업이라고 한다면 역시 광고기획부서와 광고제작부서일 것입니다. 그 안에서도 직무는 좀 더 세분화되긴 합니다. 광고기획부서는 광고영업도 함께 하는 AE(Account Executive)와 영업보다는 마케팅 조사와 전략 수립에 포커스가 맞춰진 AP(Account Planner)로 나눌 수 있고, 광고제작부서는 제작을 총괄하는 CD(Creative Director)와 카피를 작성하는 CW(Copywriter), 인쇄/영상 디자인을 담당하는 AD(Art Director)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AD는 그 전문성이 큰 편입니다.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지요. 그래서 대부분 시각디자인과나 산업디자인과, 광고디자인과 등 디자인 전공자가 주를 이루긴 합니다. 하지만 AD를 제외한 나머지 직무들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들도 충분히 전문직이라고 할 정도로 업무 전문성을 요하는 직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광고를 '대행'하는 사업이 하나의 업종으로 분류될 정도로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전문성을 방증하는 거겠지요. 그렇다면 이들의 대다수는 광고홍보학과, 또는 신문방송학과이느냐? 이에 대한 답변은 지금 머릿속으로 예상하시듯이, no입니다. 물론 광고홍보학과나 신문방송학과 출신이 가장 많기는 합니다. 그들의 비중이 56% 수준이니까요.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나머지 44%는 국문학과, 영문학과, 심리학과, 무역학과 등 정말 다양한 전공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회사에 뽑힐 수도 없을뿐더러, 뽑히더라도 편히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굉장히 많은 부분을 대학교 밖에서 배우고, 또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회사에 입사하고 나면 (규모가 작은 회사는 좀 덜하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직원들에게 교육을 강조합니다. 매년 수강해야 하는 필수교육이 있는가 하면, 자기 주도 학습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정해진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학점제도를 운영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특히나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자, 공부해야 할 것들도 거기에 발맞춰서 많아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도 대학교만 졸업하면 공부와는 영원히 안녕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공부와의 작별은 이룰 수 없는 꿈인 것 같습니다.


전공무관에 대한 모순된 감정


저도 취업을 준비했던 취준생 시절, 전공무관이라는 안내를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안도감과 허무함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우선적으로 들었던 감정은 안도감입니다. 안도감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전공을 꼭 살리지 않아도 취직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은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상황이었으니까요.


반면에, 허무함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당시에는 광고가 좋아서 꿈을 좇아 지원한 전공이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고백컨데 저는 수업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모든 수업이 다 즐거웠다면 거짓말이죠. 수많은 수업들 중 불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거나 혹은 좋은 콘텐츠여도 교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즐겁지 않은 수업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업들이 제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꿈을 키워주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제 대학생활에 대한 행복지수는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4년간 배운 전공지식이 막상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허무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는 지금의 회사가 아닌 (매장 매출 관리가 담당이었던) 저의 첫 회사를 지원할 때의 감정입니다. 지금은 부서는 인사팀이지만 광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전공을 살리고 있다고 볼 수는 있죠. 전공무관이라는 네 글자가 제게 준 감정은 이처럼 양면적인 것이었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회사와 직무에 지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저와 같은 감정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이라고들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한 번 정한 전공에 따라 취업까지 결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은 오롯이 배움의 즐거움과 그로 인한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소위 전문직이라고 하는 직무에도 전공지식이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전공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이 해보고자 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회사는 전공보다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을 보고서 채용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인의 전공이 지원하고자 하는 직무 또는 부서와 결이 너무 다르다고 미리 낙심하지는 마세요. 물론 관련성이 높은 전공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손해를 보거나 감점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잘만 활용한다면 더 다양한 시각과 지식을 보유한 인재로 포장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광고기획직무에 지원하는 많은 타 전공자들이 본인의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녹여서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례를 자주 접하곤 하거든요. 전공에 대한 선입견에 주눅 들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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