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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18. 2020

안녕하세요, 과장입니다.

명함 교환 좋아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

우리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갈림길과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회사를 보고 선택할 것이냐, 직무를 보고 선택할 것이냐'입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선택을 한 적이 있었고, 많은 후배들로부터 유사한 질문을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참 명함을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명함을 '교환'하기를 좋아하는 나라이죠. 직장인들끼리 첫 만남을 가지게 되면, 일단 명함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런 자리에 명함을 놓고 가기라도 한 날에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식은땀이 뻘뻘 납니다.


명함을 교환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는 합니다만)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너와 나 중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느냐, 즉 갑을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명함에 박힌 회사의 지위를 의식하게 됩니다. 나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대기업 로고가 보란 듯이 박혀있는 회사의 명함을 받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말투와 태도가 위축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직책이나 직급을 봅니다. 과장인 제가 명함을 건네면서 함께 건네받은 상대방의 명함에 '대리'라는 두 글자가 딱 보이면, 회사는 나보다 좋은 곳일지 모르지만 왠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갑니다. 나이는 비슷해 보이는데 아직 대리네? 이 나이 먹도록 뭐했나? 싶은 생각에 하찮은 우쭐함이 마음속에서 꿈틀댑니다. 이런 식으로 명함을 주고받는 단순한 행동 안에는 무서운 심리상태가 초단위로 파도를 치고 있는 겁니다.


명함에는 당연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직무에 대한 내용도 들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직무가 직접적으로 상하관계를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명함 교환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느냐 열위에 있느냐를 판단하는 잣대로 쓰는 우리나에서는 직무는 관심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직무명을 별도로 기재하지 않고, 부서명으로 가늠하는 명함들도 많이 있습니다.


취업의 목적에 따라 명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명함에 대한 태도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깊이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 그럴듯한 회사의 명함이 필요한 것인지, 명함을 의식하지 않는 확고한 직무 커리어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전자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본부장 또는 팀장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향이거나, 혼자보다는 팀 단위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서 취준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일을 하고 싶다' 보다는 'ㅇㅇ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형태로 말하는 경향도 쉽게 보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후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맡게 될 업무는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회사에 가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나이 들어서도 이 일로 먹고살고자 한다면 지금 나는 어떤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등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검색이 아닌 사색으로 말이죠.


지극히 제 관점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를 하자면, 가고 싶은 회사를 찾아서 입사한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일상에 질립니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면적인 욕구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고 싶은 직무를 찾아서 입사한 사람은 일상을 마주하는 태도가 조금 다릅니다. 주위의 평판이나 조언보다는 내가 좋아서, 온전히 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선택한 결정이라는 생각에 그 결정을 번복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번복이 관대하고, 본인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이를 번복하는 것에 훨씬 더 가혹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광고대행사는 사원급(입사 3년 이내)의 퇴사율은 생각보다 낮은 편입니다. 회사 이름을 보고서 지원한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정말 순수하게 광고가 하고 싶어서 지원한 사람들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 이상이 되고 나면 오히려 다른 업종보다 퇴사율이 높아집니다. 본인의 직무 전문성을 토대로 날개를 더 활짝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저는 사실 카피라이터가 꿈이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시로 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나서 광고대행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4학년 1학기 때부터 이름 있는 국내 광고대행사들은 모두 찾아서 지원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는 광고대행사는 신입사원을 뽑은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서를 받는 회사들의 간극이 심했습니다. 신입사원을 받을 정도로 규모가 큰 대기업 인하우스 광고대행사이거나, 혹은 이제 막 업계에 들어와서 인력을 충원하면서 새롭게 발돋움할 소규모 대행사였습니다. 중간 사이즈의 대행사들은 거의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추세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 또한 언급을 마쳤지만) 안타깝게도, 대규모 대행사에서는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우후죽순으로 불합격 통지서가 날아들었습니다. 반면 몇 군데 지원하지도 않은 소규모 대행사에서는 저와 함께 일해보자는 감사한 메일을 보내주기도 했었죠. 이러한 결과를 마주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큰 회사에서는 다 떨어졌지만, 작은 회사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광고일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서 '명함을 교환'하게 되면, 그 누구도 제가 다니는 회사의 명함을 한눈에 알아볼 사람은 없었습니다. 수 날을 고민한 끝에 저는 결국 소규모 대행사를 포기하고, 광고는 아니지만 누가 들어도 알만한 회사의 다른 직무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운 좋게 붙은 그 회사에서 저는 매장별 매출과 판매사원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지금은 어떠냐고요?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1년 반 만에 다시 취업을 준비해서 지금의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카피라이터로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을 서포트하는 생활이 매장 별 매출을 관리하는 일보다는 저와 훨씬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흐름도 그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KT, LG전자 등 긴 시간 동안 공채 제도를 유지해 오던 많은 대기업들이 상시채용으로 전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까지는 일단 스펙이 좋고 어디서 근무하든 기본 이상은 할 것 같은 신입사원을 뽑아서 마침 필요한 부서에 배치해 왔다면, 앞으로는 실제로 T/O가 발생하는 직무에 한하여 그 적합성을 검증해서 신입사원을 채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함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전문성을 더 중시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집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신입채용 안내화면]


누차 이야기하지만 제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저 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느낀 점들을 토대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그 사이 명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어느 날 갑자기 명함이 필요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긴 인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회사의 명성과 주변의 기대보다는, 가급적이면 본인이 바라는 직무와 커리어에 연관해서 자신의 목표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비단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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