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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14. 2020

붙어도 안 갈 회사라는 핑계

지원 경험은 다다익선(多多益善)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저도 본격적으로 취준생의 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이전 챕터에서 넌지시 암시한 적이 있었는, 저는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렇게 된 것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궁금하시겠지만 TMI인듯하여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당연히 취업준비도 카피라이터에 맞춰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돌이켜보면, 저는 제대로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소위 '이름 있는' 광고대행사들의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그들이 집행한 광고가 무엇인지, 회사별 특징은 무엇인지 정도를 공부한 것이 다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흔한 취업 스터디 모임 한 번 하질 않았으니, 자만심이든 게으름이든 둘 중 하나는 극에 달했던 모양입니다.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요.


저에게도 첫 번째 기회가, 그것도 아주 큰 기회가 예고 없이 들이닥쳤습니다. 더욱 놀랐던 것은 아직 다른 회사에는 지원해 보기도 전에, 처음으로 지원했던 제일기획에 서류합격을 했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제일기획은 광고대행사를 꿈꾸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마음속의 1순위 회사였습니다. 특히 '광고직 SSAT'(지금은 GSAT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라는, 삼성그룹의 타 계열사와는 다르게 제일기획에만 특화시킨 직무적성검사가 유명했습니다. 악명 높기로 유명했죠. 지금은 문제 유형이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창의성을 시험한다는 전제 하에, 틀에 짜이지 않은 질문 유형으로 지원자들을 혼돈의 카오스에 빠트리기 십상이었거든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올해 광고직 SSAT에는 어떤 이상한 문제가 나왔는지 회자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까다롭다는 광고직 SSAT에 턱 하니 합격을 한 것입니다.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죠. 설레는 마음으로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다른 회사에 지원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아니 취업 스터디 모임이라도 한 번 가졌다면 저는 지금 제일기획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면접은 모든 면접을 하루 안에 끝내는 One-Stop 면접으로 진행했었는데, 토론면접과 PT면접 모두 나쁘지 않게 잘 해냈다는 느낌으로 마무리를 하고 나서, 마지막 남은 임원 면접장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임원면접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어요. 문제는 맨 마지막 질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세요."


사실 이 질문은, 면접 준비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혹은 면접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준비했을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마지막으로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여기에 대한 답을 준비해 가지도 않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생각의 회로도 완전 꼬여버렸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했습니다.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라는 건방지고도 치기 어린 멘트를 뱉어버리고 맙니다. 정 가운에 데 앉아 계시던 당시의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님은 제 대답에 실소를 뱉으셨습니다. 그 의미가 긍정의 의미인지 부정의 의미인지는 지금으로서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제일기획에는 낙방했으니 그 의미를 가늠할 수는 있겠지요.


저는 사실 취준생 시절에 여러 회사에 지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가지도 않을 회사라면, 괜히 내가 지원했다가 나로 인해 떨어지는, 정말 이 회사에 오고 싶어 했던 누군가가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여기저기 열심히 지원하고 다니는 친구에게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얼마나 부끄럽고 철없는 생각인가요. 이 정도 회사는 붙어도 안가, 라는 버릇없는 자만을 왜 품고 살았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이불속에서 이단 옆차기를 하게 만드는 기억입니다.


제일기획에서 떨어지고 나서도 할 말이 없었죠. 그 뒤로 저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광고대행사라면 물불 안 가리고 지원하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광고대행사가 아니더라도, 광고/마케팅 직무를 경험할 수 있는 회사라면 일단 서류부터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슬프게도, 제일기획에 떨어지고 난 이후에는 면접의 기회조차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했고, 손에 꼽을 정도의 회사에서만 간신히 면접에서 보자는 회신을 주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다양한 면접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나, 그마저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요.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지원하세요.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취준생들은 저처럼 무식하고 당돌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혹시나, 저처럼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얼른 찬물로 세수 한번 하시고 현실을 직시하세요. 붙어도 어차피 안 갈 건데 뭐하러 지원하나, 라는 식의 접근은 경험의 기회를 제 발로 차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책으로 공부하고, 스터디에서 정보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경험을 이길 수 있는 준비는 없습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스펙을 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00% 틀린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펙을 쌓는 것보다 지원 경험을 늘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다양한 지원 경험을 보유하는 것이야 말로 스펙을 쌓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 스펙은 다른 사람에게 제출할 증명서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겉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스펙이 될 것입니다. 아, 물론 아무 회사나 다 써보라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희망하는 회사나 직무와 어느 정도는 연관성이 있어야 그 경험이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취업준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금은 결이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경험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도움이 됩니다. 인사팀원으로서 할 말이 아니긴 합니다만, 우리 모두 한 회사에 몸 바칠 생각은 없잖아요? 잘못하면(?) 100세까지 살게 되는 인생입니다. 이직의 손길은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유혹입니다. 그러한 유혹을, 특히나 매우 합리적이고 본인에게 적합한 유혹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다른 회사에 지원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경험은 중요하다는 것이죠.


지원서를 쓸지 말지 고민이 되는 회사가 있다면, 지금 당장 이 글을 덮고 일단 지원서부터 작성하세요. 그 회사에 갈지 말지는 지원하기 전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격하고 나서 결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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