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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26. 2020

일 시키기 편한 후배

사회성은 추가옵션이 아닌 기본옵션

저희 회사는 광고기획자나 광고제작자의 경우 100% 인턴십을 통해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1~2시간가량의 면접만으로는 지원자가 가진 역량을 다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과연 광고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인턴십을 통한 신입채용 프로세스


서류전형에 합격해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게 된 지원자들은 8주간의 인턴십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턴십이 끝나면 현장평가 점수와 PT과제 점수, 인성면접 점수를 합산하여 최종 결과를 산출하게 되는데요, 이 결과에 따라 통상적으로 60~70% 수준의 인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서별 신입사원 소요를 따져서 합격자들을 어느 부서에 배치할지 결정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채용 담당자는 이때 인턴십 합격자들의 리스트를 들고 신입사원을 받기로 한 팀장님들을 한 분씩 만나 뵙는 절차를 거칩니다. 부서 배치라는 작업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한번 부서에 배치되고 나면 (특별한 이슈가 있지 않은 이상에는) 몇 년간은 그 부서에서 근무를 해야 하니, 처음에 어느 부서에 배치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팀장님들도 어떤 신입사원이 자기네 팀으로 오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장실습 점수가 높은 인턴이 PT과제 점수가 높은 인턴보다 더 인기가 좋더라는 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현장실습 점수가 높은 인턴은 PT과제 점수도 높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자주 발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두 점수 차가 큰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현장실습 점수가 높은 인턴을 선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채용을 담당하던 시절, 이러한 현상이 궁금해서 친한 팀장님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게 돌아온 답은 이랬습니다.

"팀원을 받는 건 두세 달 근무하고 종료시킬 아르바이트를 뽑는 거랑은 다르니까. 오랫동안 같이 일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일 잘하는 후배보다는 일 시키기 편한 후배가 좋아. 사실 최종 합격까지 할 정도면 역량은 비슷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거든."


신입채용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실 신입사원의 경우,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좀 더 쉽게 낸다든지, 통찰력이 또래보다 좀 더 뛰어나거나 문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좀 더 빠르다든지 하는 수준입니다. 신입사원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전문성을 미리 갖추고 있기란 불가능합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신입사원은 채용 후에 '가르쳐서 써먹는다'는 표현(현실감을 위해서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썼습니다)을 합니다. 맞아요, 신입사원은 아무리 제 딴에는 준비가 잘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부지런히, 선배가 시키는 것은 가리지 않고 흡수하며 배우고자 하는 후배가 그렇지 않은, 혹은 상대적으로 그런 모습이 덜 한 후배보다 인기가 좋은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일 시키기 편한 후배에게 일을 배울 기회도 더 많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구요.


'일 시키기 편하다'는 표현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이는 속된 말로 부려먹기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일 시키기 편하다는 의미는, 그만큼 사회성이 좋고 회사에 적응하고자 하는 태도가 돋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사회성은 중요합니다.


'업무 역량이 기본이고 사회성은 옵션'이라고 생각기 십상이지만, 저는 과감히 그 반대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회성이 기본이고 업무 역량이 옵션'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직원 개개인의 전문성이나 업무 스킬이 더 중요한 조직도 있어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이러한 경향을 가진 조직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문 스킬을 보유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한 특수 직무를 제외하고서는, 여전히 대부분의 조직에서 사회성을 더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에는 사회성보다 역량이나 전문성을 더 중요시 봅니다. 당장 해당 업무를 핸들링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해서 채용을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일은 입사한 뒤에 배우면 되고, 역량은 시간을 투자해서 쌓으면 됩니다. 하지만 사회성은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고,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는 말도 있는 것이겠지요.


학창 시절, 저는 결코 사회성이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혼밥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제 대학생인 시절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가끔 혼밥을 하기도 하고, 밥 먹을 돈이 없어도 불편한 자리에 가서 공짜밥을 먹기보다는 혼자서 굶는 쪽을 택하는 편이었습니다. 때문에 사회성이 우선시 되는 사회의 분위기를 못마땅해했었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성향일 뿐인데, 이러한 성향의 다양성도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생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그에 맞는 업무와 조직을 찾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회사생활에 있어서 사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죠.


어느 조직이든 직원 한 명이, 또는 한 개의 팀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를 수행해서 성과를 낼 수는 없습니다. 여러 담당자들이, 그리고 여러 팀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고설켜서 하나의 결과물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성은 그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면 같은 결과를 내더라도 좀 더 삐걱거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어떠냐구요? 자화자찬이지만, '인사팀에 동진이가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회성 좋은 직원으로 거듭나게 되었죠. 죄송해요, 좀 재수 없었습니다. 저도 제 성격을 완전히 고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회성이 좋은 가면 하나쯤 장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면을 쓰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겁니다. 제가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뻔하디 뻔한 응원 한마디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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