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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Oct 27. 2020

경주마가 되지 말자

면접 대기실의 풍경

말은 포유류 중에서 눈이 가장 크고, 머리 옆쪽에 눈이 위치해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거의 360도를 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그만큼 시야가 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주마들에게는 눈 옆에 가리개를 붙여줍니다. 다른 쪽은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면접 대기자들 중에도 가리개를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면접을 진행하게 되면, 채용 담당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면접 대기실을 지키면서 지원자들의 면접 진행을 돕습니다. 그 날의 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대기 중에 지켜야 할 수칙들을 알려주고, 순번에 따라 지원자들을 면접장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지원자들이 어떤 태도로 면접을 대기하게 되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지원자들의 대기 중 모습은 여러 양상을 보이지만, 크게 나누자면 경주마처럼 가리개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주마처럼 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는 지원자는 대기하는 내내 뭔가에 집중하고 열의에 찬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 더 좋은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마냥 그렇게 좋아 보이지만은 않아요. 준비해 온 예상 문제를 되뇌며 혼잣말로 답변을 연습하고,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본인의 순서를 기다립니다. 저는 그 모습이 왠지 좀 조급하고 불안해 보이더라고요. 여유가 없어 보인 달까요.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어떻게든 이 고비만 넘겨버리면 그만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표정과 태도에 여유가 묻어납니다. 보통 대기장소에는 그 회사의 홍보물이나 사보를 비치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지원자들은 자신이 준비해 온 자료를 되새김질하기보다는 그러한 책자를 보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그것도 그 정보를 어떻게든 활용해 보고자 필사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지원한 회사에서는 어떤 일들이 돌아가고 있는지 호기심 어린 자세로 재미있게 읽어나갑니다. 아니면 (최근에는 대기장소에서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본인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오늘은 어떤 뉴스가 있는지 훑어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자세의 지원자를 더 좋아합니다. 건방져 보이기 이전에, 뭔가 충분히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쳤으니, 오히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차례를 기다리자'라는 듯한 자세에서 왠지 모를 자신감까지 느껴집니다.


저 스스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때의 경험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광고대행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저는 가리개를 한 채 준비해 온 것들을 열심히 되짚으며 대기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왠 걸요. 최종면접에 8명이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중 7번째 순서였습니다. 오전에 인적성검사를 치르고 오후에 실무면접과 임원면접까지 실시하는 One-stop 면접이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나서는 6명의 면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대기 시간이 실제 면접에 참여하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길었습니다.


7번째인 제가 그토록 지루해했는데, 제 뒤의 8번째 지원자는 어땠을까요. 면접 순서를 받고 나서 저와 제 뒤의 8번째 지원자는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책만 들여다 보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거든요. 회사에서 준비해준 사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했을 정도니까요. 아침에는 엄청난 긴장과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다른 지원자와 농담 따먹기도 하고, 대기장소도 둘러보면서 마음에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대기시간이 너무 긴데 근처에서 당구나 한 게임 치고 오자는 식의 농담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고, 안정적인 태도로 면접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저와 8번째 지원자 둘이 최종 합격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합격하고 입사 동기가 되고 나서 그날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동기는 그 날 당구 치러 가자는 이야기가 진심이었다면서 껄껄 웃기도 했습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붙을만한 두 사람이 우연히 맨 마지막에 면접을 본 것이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러했을 가능성도 크고요. 하지만 저는 거기에 크게 플러스가 된 요인이 경주마였던 제 눈 옆의 가리개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제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긴장이 풀리면서 사고가 활발해지고, 갑작스러운 돌발 질문에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아마 그 날 제 순서가 1번이나 2번이었다면, 입사는 커녕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대기하는 자세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


대기장소에서의 태도는 스스로의 합격을 결정짓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지만, 채용 담당자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기장소에는 항상 채용 담당자가 상주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는데, 어느 면접날 저희 팀장님이 그 날의 면접을 마치고 나서 저에게 물으시더군요.

"A 지원자랑 B 지원자랑 대기실에서 보이는 모습은 어떻디?"


저는 처음에 왜 그런 걸 물으시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역량면접에서 비슷한 점수를 받은 두 지원자가 대기장소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궁금해하시는 거였습니다. 역량면접이야 본인이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토대로 어느 정도 대답을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100%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죠. 하지만 대기장소에서의 모습은 꾸며진 모습보다는 원래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모습도 참고하고 싶다는 게 팀장님 질문의 의도였습니다. 채용 담당자라면 단순히 진행만 할 게 아니라, 지원자들의 대기 중 모습도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셨죠. 물론 제 의견이 면접의 합불을 결정지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참고할만한 가치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이후로 면접을 진행하는 저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면접을 보러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부터 면접이 끝나고 회사 밖으로 나오는 순간까지, 지원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시선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물론 요즘처럼 온라인 화상면접이 많아진다고 하면 대기 중의 모습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줄어들긴 하겠지만요.


노를 젓다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그 꽃'이란 시로 유명하신 고은 시인의 '비로소'라는 시입니다. 열심히 준비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기본 중의 기본이죠. 하지만 보다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노만 젓고 있다 보면, 본인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준비해온 것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의외성이 있는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해온 답만 되풀이하며 연습하면 그에 대한 완성도는 높아질 수 있겠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당황할 수 있습니다. 비단 면접뿐만이 아니죠. 취업준비 자체가 그렇고, 우리의 인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반복되었던 본인의 일상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지금까지 준비해 온 시간과 노력을 믿으시고, 결전의 날에는 오히려 그 밖의 것들을 찬찬히 살피고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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