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욤 민지 May 11. 2023

동병‘산’련을 느끼기 위해, 산에 오르나 봅니다.

간호사의 은밀한 취미생활 2탄

 암병동에서 근무하다가 외래 부서로 내려온 지 만 1년이 되었다. 작년, 내가 외래로 발령 날 때부터 2-3주 간격으로 외래에 통원하시며 항암 치료를 받으시던 분들이 계셨다.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뵙다 보니, 꽤나 정이 들었다. 얼굴만 봐도 몸 어느 부위가 부었는지, 한동안 잘 못 드셨는지 등의 컨디션 변화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최근 그분들 중 세 분의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임종하셨다. 나와 외래 생활의 시작을 같이 하시던 분들인데 말이다.

인생 시계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구나...

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의 숙명

 이 업을 10년 정도 해보니, 보람보다는 허무함을 느낄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할 때가 많은데,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환자들을 보다 보면 괜히 나까지 먹먹해진다. 삶이 다 부질없단 생각도 들었다.

 11년 차 간호사가 직장에서 버티는 꿀팁(?)이라고 한다면, 감정의 역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크게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일상에 무덤덤해진다는 점, 무감정해진다는 점이다.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하여

 이런저런 허무함을 잔뜩 안고서 지난 주말에도 역시나 산에 올랐다. 한걸음-한걸음,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높이며 가빠지는 내 숨결에 집중해 본다. 숨이 차오른다. 무감정하게 일하던 내가, 그래도 진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어쩌면 내가 진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기 위해, 내 심장 박동과 숨결을 느끼기 위해 산을 오르는 걸지도 모른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음’이 주는 위로

 산에 오르다 보면 멋진 장관이 나를 반겨준다. 평지에서는 볼 수 없는 탁 트인 뷰, 고도가 높아질수록 자연의 웅장함이 나의 시선을 뺏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참 아름답구나!‘ 싶었다.

 햇빛 사이로 적절히 퍼진 구름의 흘러가는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평지에서의 고뇌는 잠깐 잊게 된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나무와 바위만 봐도 산은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멋진 장관이 나를 반겨준다.


동병상련? 동병‘산’련!

 큰 돌 틈에 꽃이 간드러지게 폈다. 돌에 깔린 듯하게 꽃 피운 모습이 마치 암병동의 간호사로 10년 6개월을 살아남은 내 모습 같기도 해서, 짠해진다. 꽃의 생명력을 느끼며, 혹시나 밟을까 봐 조심조심 발을 디뎌본다.

큰 돌 틈에 꽃이 간드러지게 폈다.


  가끔 누군가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굳이 왜 오르냐?’는 질문을 한다. 푹 쉬어도 부족한 주말에 굳이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는 동병상련, 아니 동병'산'련을 느껴서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걸지도 모른다. 허무하고 무감정한 일상 속에서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위로와 포용력을 느끼기 위해,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매주 산에 오르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하.산.



간호사의 은밀한 취미생활 1탄

그럼에도 산에 오르는 이유

<암병동 간호사> 장기근속 10년 기념 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5년째,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