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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Dec 11. 2018

속도가 다른 우리,
스웨덴에서 보낸 가장 보통의 시간

스웨덴과 한국, 그 사이에서 나만의 방향과 속도를 찾아가려 한다

스웨덴, 그리고 우리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웨덴으로 떠났다. 한 친구는 내게 신혼여행을 너무 길게 갔다 온 거 아니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두 사람은 스웨덴 생활을 하는 동안 불과 며칠을 제외하곤 계 속 함께했다. 같이 밥을 지어먹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여행도 같이 가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다. 소소한 수다부터 사회, 정치를 주제로 불꽃 튀는 토론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어떤 반찬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말을 듣기 싫어하는지, 카페에 가면 어떤 커피를 고르는지 같은 일상 의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의 취향은 신기할 정도로 정반대였다. 아직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몰라 종종 실수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웨덴이라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이젠 몇 날 며칠 동안 붙어 있어도(혹은 떨어져 있어도)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진짜 부부가 됐다.


초록에 가까웠던 삶


스웨덴에선 집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푸른 자연이 펼쳐졌다. 그런 덕분에 생각이 많아질 때면 근처 숲이나 오솔길로 산책하러 가곤 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개울물과 바람에 흔들리는 풀, 언덕 너머 하늘께로 퍼지는 노을을 보면서 평화로움을 느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방해받을 만한 소음도 없어서 한참을 서서 자연을 마주했다. 웅장한 대자연, 감탄을 자아낼 만한 비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걱정과 근심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인구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곁에 있는 자연, 드문 인적, 원체 말없이 조용한 스웨덴 사람들, 급할 것 없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어디에 살고 어디에 있든 스웨덴에서 누렸던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 여유를 마음에 잘 간직하면서 나만의 속도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너그러워지고 더 천천히 생각해보는 습관도 들이면서 살고 싶었다.


잊을 수 없는 하늘색


내가 알았던 세상이 전부는 아니구나

스웨덴에 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내가 알았던 세상이 전부는 아니구나'였다. 그동안 내가 우리 사회 안에서 살아오면서 알고 배워왔던 것들, 그랬기에 상식이자 진리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느꼈다. 더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자면 '달리 생각해 볼 수 있구나' 혹은 '이런 다른 모습으로도 살아갈 수 있구나'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실 민주주의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구나'라고 느꼈었는데 스웨덴에 와서 평등한 교사-학생의 관계를 목격하면서 '교실 안에서 학생과 교사가 민주적으로 대화하면서 함께 생활할 수 있구나'를 느꼈을 때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스웨덴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던 곳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지금껏 내가 살았던 모습들, 한국 사회 안에서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부분들, 우리 사회가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고 다른 방식의 삶과 다른 모습을 가진 세상도 가능하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동안 매거진에 썼던 글들과 [헤이스웨덴]이란 책에 담았던 이야기들이 스웨덴의 그러한 모습을 담은 기록이었다.

스웨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종종 들었던 말은 '이런 글은 스웨덴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또 다른 글일 뿐이다', '스웨덴과 한국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비교는 무리다'였다. 지적받은 대로 스웨덴과 한국은 두 나라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다른 점이 굉장히 많았다. 가끔은 마치 직선의 양 끝처럼 정말 다른 성향과 환경, 문화를 가진 두 나라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스웨덴 이야기를 하고 또 한국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누가 좋고 누가 더 나쁜 식의 비교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그리고 '어?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네!' 같은 에피소드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한국, 그 사이에서

스웨덴에서 생각했던 것들, 마음속으로 굳게 봉인했던 것들이 쉽게 풀어헤쳐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렵다. 스웨덴 사회에 적응해 살았던 것처럼 한국 사회에 적응해 살고자 스웨덴에서 굳게 되새겼던 가치들, 그만의 속도를 잊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의 생활은 딱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고 바쁘지만 동시에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한국 사회는 변하고 있고 나는 그 변화의 흐름이 정말 좋다. 스웨덴이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스웨덴에서 익은 나만의 속도로 한국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참 좋겠다 생각한다.


한국과 스웨덴. 두 나라를 바라볼 땐, 누가 좋고 누가 더 나쁘다는 비교를 할 수는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스웨덴처럼 되는 것을 바라지도, 또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회를 꿈꿀 뿐이다. 우리 부부가 스웨덴다움을 통해 울림을 느낀 것처럼 독자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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