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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Apr 30. 2022

보험보다는 모험의 힘을 믿어요

시간 쌓기에 진심인 부부


나와 남편의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가 부모님들은 아이 없는 우리 부부가 미래를 남들보다 더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우리는 너 같은 자식이 있어서 다행인데, 너희는 나중에 늙으면 어떻게 할래?”


부모님외식을 하거나 병원을 방문할 때면 고맙다, 수고했다는  뒤에  뒤따르는 염려들이다. 그러면서 당연한  다음 대화가 보험 권유로 이어진다.


“둘 다 실손 보험은 있니? 간병 보험도 좋다던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는 꼭 보험을 들어놔야 해. 그래야 노인이 돼서 아파도 걱정이 없지.”


질문이 줄줄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화제를 전환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보험에 관한 우리의 강경한 입장을 말한다면 실망하거나 걱정의 덩치가 더 불어날지 모른다.


보험에 관한 남편과 나의 의견은 확고하다. 보험은 불안을 파는 상품일 뿐, 정작 내가 필요할 때 안전망이 되어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보험이란 그물은 평균이란 가치 아래 헐겁게 짜여 있어 사람마다 달리 나타나는 상황을  모두 받쳐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몇십 년간 매달 충실히 보험료를 납부해도 정작 나에게 혜택이 온전히 돌아오기에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입은 쉬어도 혜택을 받거나 해지할 때는 절차가 꽤 복잡하고 까다로워 곤란했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지 않은가. 우리 부부는 매달 차곡차곡 내는 보험료를 잘 모아두었다가 실제로 걱정했던 상황이 생기면 목돈으로 부담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결혼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매일매일 남편과 내가 참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래도 다행히 경제관념만은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여 평소 가계를 꾸려나가거나 노후를 대비하는 데에 이견이 없는 편이다.


일단 둘 다 욜로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일을 대비하기보다는 오늘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둔다. 투자를 할 때는 수익 가능성보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이 한 푼이라도 손실되지 않도록 안정성에 집중한다. 대출도 자산이라는 말이 있지만, 대출은 마음의 짐이고 마음의 짐은 곧 몸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여 늘 대출 없는 삶을 꿈꾸고 있다.  


누군가 돈과 시간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둘 다 지체 없이 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결혼 후 지금까지 돈을 모으는 행위보다 시간을 쌓는 일에 마음을 다했다. 남편과 나의 벌이가 괜찮아서 여윳돈이 생기는 달이면 바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둘이서만 떠날 때가 많았지만 상황이 허락한다면 다른 가족들과 동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소중한 사람들이 ‘첫 경험’을 우리와 함께 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십 년이 지났지만 엄마의 첫 해외여행, 시부모님의 첫 유럽 투어를 같이 떠났을 때 아이처럼 좋아하던 표정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조카들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입학할 때마다 책가방은 우리의 몫이었고, 큰 조카가 취업 소식을 알렸을 때는 주저 없이 백화점으로 달려가 첫 양복을 골라주었다. 돈을 아껴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드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억을 남겨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저장했다.


남편과 나는 요즘 새로운 작당모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의 신념과는 다르게 적금을 들어 목돈을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다. 60대에 떠날 모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남편이 직장에서 은퇴하는 60대가 되면, 그동안 여행하면서 다시 들르고 싶었던 장소를 찾아 ‘  살기 해볼 작정이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을 노년기에 한다는 것이 쉬울  없다. 하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용기를 내어 도전할 일을 미리 만들어둔다면 미래가 불안해서 떨리기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의 시간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노년기에는 모험일 수 있는 한 달 살기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남편은 나보다 한 발 앞서 준비에 들어갔다. 혼자서 공부를 해보겠다며 서점에서 기초용이지만 외국어 교재를 샀고, 틈나는 대로 유뷰브를 보며 살고 싶은 지역을 선별하고 정보를 모으는 중이다. 남편에 비해 체력이 약한 나에게는 60대에도 한 시간은 거뜬히 걸어 다니고 자전거도 탈 수 있도록 근육을 길러놓으라는 특명도 내렸다.    


보험으로 편안한 노후를 대비하는 대신, 사서 고생하는 모험을 선택한 남편과 내가  없이 보일  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없는 것은 매한가지 아닐까. 아프면 어쩌지, 사고가 나면 어쩌나라는 걱정으로 속을 태우고 오늘을 희생하며 살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나의 사람들과 공유할  있는 시간에 집중하고 내일을 기대에  마음으로 기다리는 길을 택하겠다. 재미있는 상상을 이어가는 일이나 즐거운 추억을 꺼내보는 기회는 아무리 자주 가져도    들지 않으니 그야말로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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