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정보 프로그램이 불편한 이유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깜짝 놀랐다. 정말 저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때 방송작가였던 나조차 믿지 못할 기획과 구성이었다.
요즘 방송 편성표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르가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고 의료 정보를 얻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방송계에 몸 닫았던 사람으로서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우리나라는 방송에서 의료 광고를 할 수 없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56조 3항 1호에서 의료광고의 방송광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텔레비전에서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 “우리나라 최고의 수술 전문의를 만나보세요!”라고 직접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을 알리는 광고를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이나 의사가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방송 출연을 꼽는다. 실제로 주위에서 방송에 출연한 의사가 명의라고 생각해 그 병원을 일부러 찾아갔다는 사람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특히 텔레비전 시청이 주요 일과인 노년층에게 건강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나 의료인들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질병을 정의하는 방식이나 아픈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을 선명하게 구별 짓는 관점에 대해 나는 시청자로서 대단히 불만을 가지고 있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의 대표 격으로는 방송을 종료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비타민>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 방식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출연자에게는 초록색, 질병 가능성이 있다면 주황색, 이미 증상이 나타나거나 질병이 의심된다면 빨간색 신호등을 켜서 위험성을 경고했다. 방송 말미에는 빨간색 신호등이 켜진 출연자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건강을 방치한 자신을 반성하거나 앞으로 꼭 질병 없는 몸을 만들겠다는 선언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더욱 불편함을 느꼈던 방송은 자연스럽게 나이 든 출연자의 몸을 건강 상태가 나쁜 몸으로 정의하거나 노화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는 내용들이었다. 출연자의 신체 기관을 각각 검사하여 누가 더 늙은 신체를 가지고 있는지 측정하고 서열화했다. 출연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노화가 시작된 신체를 비정상이라고 부르며 수명을 다한 기계 같다는 시선을 보냈다. 신체 나이가 가장 많은 출연자는 결국 건강을 돌보지 않는 위험인물로 선정되어 빨간색 불이 켜졌고 시청자로 하여금 노화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강 프로그램을 발견한 것이다. 진행자와 의료진들이 형사 역할을 하며 출연자를 취조하는 구성 방식이었다. 질병이 의심되는 출연자는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진행자와 의료진은 출연자의 하루를 관찰한 화면을 보며 건강을 돌보지 않는 이유, 늙어가는 몸을 방치하는 이유에 대해 무섭게 다그치고 있었다.
과연 아픈 것이 죄일까.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쓴 조한지희 작가는 자신 또한 처음에는 잘못 살아서 아픈 거라는 자괴감에 스스로를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질병은 죄가 없고, 작가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건강할 권리’를 넘어 ‘잘 아플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듯 늙어가는 몸이 비정상이고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환자’란 얘기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 지식을 가진 이라도 끝내는 나이 듦과 죽음을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환자면 또 어떻단 말인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마흔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병원을 한 번도 찾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일 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병을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아픈 몸이 정상이고, 아프지 않은 몸이 비정상인 셈이다. 늙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아프거나 나이 들어가는 몸을 빨간색 신호등으로 상징하든, 범죄자처럼 추궁하든 우리 스스로가 당당하고 개의치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질병과 노화를 대하는 미디어의 편협한 시선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늙지 않으려 관리하는 몸이 아니라, 늙음을 받아들이려 관찰하고 소통하는 몸을 추구하자고 텔레비전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