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로 당신을 찾을 수 없을 때
결혼 후 줄곧 시부모님과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같은 동은 아니지만 생활권이 겹치다 보니 오가다 두 분을 자주 마주치곤 한다. 남편과 나란히 걷고 있어도 두 분을 알아보는 것은 언제나 내가 먼저다. 아무리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어머니나 아버지 모습을 발견하는 나를 남편은 신기해한다. 할머니들의 뒷모습은 모두 비슷하다며 이를 풍자한 광고도 한때 나왔듯, 어르신들의 헤어 스타일이나 옷 입은 모양새는 비슷할 때가 많다. 할아버지들의 경우 구별이 더 어려운데 그래도 자기 취향을 반영한 패션을 선보이는 할머니들에 비해 할아버지들은 거의 등산복 브랜드의 상하의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풍채가 비슷한 어르신이 나타난다면 나조차 저분이 아버지가 맞나 하며 한참을 쳐다봐야 한다.
그런데도 내가 한눈에 부모님을 알아보는 비결은 걸음걸이 때문이다. 방송작가라는 전직 때문인지 평소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타인의 생김새와 행동을 훔쳐보기 좋아한다. 모르는 이들을 관찰하는 버릇 때문에 사람마다 걷는 모양새가 다르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렸다. 누구나 특유의 걷는 리듬과 속도, 보폭이 있다. 다리가 길거나 배가 나온 체형처럼 몸의 특징과 성격이 급하거나 느긋한 데서 오는 마음의 특징이 더해져 그 사람만의 걸음걸이가 완성된다.
사람마다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생체 보안기술 분야에서는 지문, 얼굴 등의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이용하는 방식과 더불어 음성이나 제스처, 그리고 걸음걸이를 인식하는 행동적 특징을 보완에 활용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걸음걸이 인식은 머리 축, 어깨 축, 골반축, 무릎 축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 사람마다 걷는 모습이 다 다르므로 누군가를 특정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걸음걸이만 잘 파악한다면 멀리서도 누군가를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눈썰미로 걸음걸이만 보고 어디서든 부모님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와장창 깨지는 사건이 있었다. 아파트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헬스장은 지하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시각은 차들의 이동이 거의 없는 대낮이었다. 인기척 없는 주차장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두 노인이 주차된 차 사이를 위태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한지 한, 두 걸음 걷다가 멈춰서 숨 고르기를 하고 앞장서는 할아버지는 장바구니가 달린 수레에 거의 상반신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허리가 많이 아파 보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두 분이 부부인가 보네. 한분이라도 잘 걸으면 의지할 수 있을 텐데, 두 분 다 저리 못 걸어서 어쩌나! 저러다 차라도 지나가면 빨리 피하지도 못하고 위험할 텐데 어르신들이 참 안 되셨네.’
나와는 상관없는 어르신들이라며 값싼 동정의 시선만 흘깃 보내고 가던 길을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저 익숙한 실루엣과 복장은?’
뒤통수가 서늘했다. 차들에 가려진 두 분을 제대로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눈에 힘을 줬다. 앗불싸!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너무 놀라 주차장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로 부모님을 불러 세웠다. 며느리의 놀란 가슴은 아랑곳없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연한 만남에 그저 반가워했다.
“어디 아프세요? 두 분 다 왜 이렇게 못 걸으세요? 저쪽에서 보고 어머니, 아버지 아닌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나는 일을 좀 무리해서 허리랑 다리가 불편한데 괜찮아. 안 그래도 이것만 갖다 놓고 정형외과 갈 거야. 나는 병원 가서 주사 한 대 맞으면 괜찮을 텐데 엄마가 문제지. 며칠 전부터 무릎이 아파서 영 걷지를 못해. ”
자초지종을 간단히 듣고 어서 집에 가서 쉬라며 부모님을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날 저녁, 남편과 같이 부모님 댁을 찾았다. 며느리가 멀리서 알아보지 못할 만큼 걸음걸이가 다 무너졌으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일단은 두 분 모두 정형외과든, 한의원이든 성실히 다니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 어머니에게는 조심스럽게 지팡이 사용을 권했다. 처음엔 망설이는 듯했지만, 어머니도 이내 지팡이를 사용해 보겠다고 했다. 네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어머니의 지팡이를 찾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시작했다.
일명 어르신 지팡이, 노인 지팡이들은 생각보다 종류가 많았다. 휴대성이 좋은 접이식 지팡이부터, 독일산 체리목으로 만들었다는 나무 지팡이와 가볍고 튼튼하다는 알루미늄 소재의 지팡이, 손잡이에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지팡이와 튼튼하게 사람의 체중을 지지해준다는 네발 지팡이까지 지팡이의 세계는 다채로웠다.
보행을 보조하는 역할로 사용하는 지팡이지만 이왕이면 디자인도 좋은 것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비싼 재질을 사용하고 멋진 문양으로 장식한 지팡이를 권했지만 어머니에게 계속 퇴짜를 맞았다. 어머니가 원하는 지팡이의 기준은 하나였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골라라!
어머니는 지팡이 손잡이는 아무런 문양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색깔도 그저 어두운 색으로 고르라고 재차 강조했다. 지팡이를 고르는 내내 서글프다며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에게 지팡이는 단순히 걸을 때 도움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여든의 나이에도 아직 괜찮다고 믿고 싶었던 자신의 신체가 이제는 제기능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남들에게도 알려야 하는 노화의 상징물이었다.
지팡이를 사용해 걷는 것이 부끄럽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신라 시대에는 지팡이가 오히려 권위와 명예의 상징으로 왕이 원로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이었다고, 유럽에서는 멋쟁이 신사의 필수품이 지팡이라고 얄팍한 지식을 동원해 설득을 이어가려 했지만 꼼짝없이 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어머니에게는 위로가 될 리 만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튼튼하지만 최대한 얇고 짙은 색을 가진 지팡이를 골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지팡이와 어머니의 몸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지팡이가 도착했고 어머니는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차츰 지팡이 사용에 익숙해졌다. 확실히 지팡이를 짚고 걸으니 몸을 지탱하기 쉽고 먼 거리를 걸을 때에도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어머니는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미련 없이 지팡이를 집에 두고 외출을 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만은 지팡이에 의지하지 못하는 눈치다.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부모의 걸음걸이를 보며 생각한다. 내 다리와 허리도 언젠가 늙어서 걸음걸이로는 나의 건재함을 말할 수 없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잡을 수 있을까? 어머니처럼 서글픈 마음이 들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내다 낡아버린 나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당당하게 주위 사람과 여러 도구의 도움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아기가 첫걸음마를 시작하면 어른은 당연히 자신의 손을 뻗거나 보행기를 내밀어 돕는다. 긴 생애를 살며 하루에 수천 보, 수만 보를 성실히 걸었던 나의 다리가 이제 지쳤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그때도 기댈 무언가를 찾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를 바란다.
내 첫 지팡이를 상상해 보았다. 손잡이는 나의 띠인 뱀이나 탄생화 문양을 선택하면 어떨까. 지팡이 소재는 가볍고 튼튼한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그날그날 입는 옷에 맞출 수 있게 여러 가지 색깔의 지팡이들을 구비하고 싶다. 지팡이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 여든이 된 내 걸음걸이의 일부가 되게 할 것이다. 거리에서 누군가 나이 든 나의 몸을 쳐다본다면 동정의 시선 대신 부러움의 시선,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싶다. 이쁜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동네를 주름잡는 지팡이계의 셀럽 할머니가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