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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un 30. 2022

소소하지만 위대한 자기 서사

나이 듦, 나만의 이야기가 쌓이는 시간


어느 날 오후, 조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고모, 저 부탁할 게 있어요.]


서울까지 출장을 와서 어려운 인터뷰를 막 끝내고 나오던 참이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일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쓴 탓에 걸으면서도 눈꺼풀과 가방을 메고 있던 어깨가 한없이 처지던 순간이었다.


고모인 내가 단어 하나마다 물결과 하트, 미소가 담긴 이모티콘을 섞어서 안부를 묻는 문장들을 보내도 [네], [괜찮아요]만 답하던 녀석이 먼저 대화를 걸어오고, 그것도 나에게만 부탁할 것이 있다니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서울 강남 도심 한복판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조카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부탁? 뭘까? 편하게 얘기해요.]

[저 이번에 반에서 부반장이 됐어요. 선거에서 공약으로 말했던 게 제가 일 년 동안 우리 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만화로 그리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만화로 그리고 나면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주고 싶어요.]

[와, 정말 멋진 공약인데? 수민이가 그림들을 완성하면 고모가 책으로 만드는 건 도와줄 수 있어요.]

[그럼, 제가 친구들과 재밌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려볼게요!]

[좋아요. 고모하고 나중에 만나서 더 의논해 봅시다.]     


대화를 끝내고 메시지 창을 닫자, 거짓말처럼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출장과 몇 시간의 업무 때문에 느꼈던 고단함은 오간 데 없었다. 조카와 반 친구들의 일 년을 어떻게 하면 근사한 기록물로 남길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경쾌해졌고, 조카에 대한 대견함과 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른으로 선택된 나에 대한 뿌듯함으로 어깨가 으쓱거렸다.    


초등학생인 조카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자기 서사'가 가진 힘을 알았던 게 아닐까. 그러니 반 친구들을 설득하는 핵심 기술로 사용한 것이다. 조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친구들 역시, 일 년간의 추억을 흘려보내지 않고 한 편의 그림,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영특한 어린이들이다.


‘자기 서사’란, 자신의 삶을 직접 소재로 삼아 재구성하고 의미화해서 서술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스스로에 관해 서술하다 보면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되살아나 지난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현재의 자아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기억들, 자신만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스스로가 가진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기 서사 쓰기에 가장 적당한 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생애를 되돌아보면 추억할 거리가 쌓여 있는 노년기가 바로 나만의 이야기라는 결실을 수확할 적기이다.


몇 해 전, 봄과 함께 시작된 글쓰기 수업에는 유난히 말을 아끼는 어르신이 있었다. 늘 백발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양복을 입은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참여했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는 강사인 나보다 학인들의 목소리가 더 자주, 크게 들리도록 한다. 글쓰기의 비법을 가르치기보다 첫 문장을 쓸 수 있게 용기를 얻는 법을 같이 고민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르신의 목소리는 3회 차 수업이 지날 때까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날 쓴 문장들을 돌아가며 읽어보는 시간이 와도 고개를 젓고 손사래를 치며 본인 순서를 건너뛰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슬며시 다가가 모임이 재미없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냐며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배움이 짧아서 매번 내 인생사만 쓰게 되는데, 늙은이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잖아요. 그래도 다른 분들 글 듣는 게 좋아요. 근데 듣고 나면 이렇게 나이만 먹은 게 부끄러워서 내 글은 그냥 숨기고 싶네요.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도 있잖아요. 늙은이 목소리 듣고 싶지 않을 텐데 전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선생님.”     


이만큼 잔인한 말이 또 있을까. 나이 듦은 어쩌다 수치심과 동의어가 되어가는 걸까. 안타까움이 밀려왔지만 어르신의 말을 따를 수는 없었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오늘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줄이라도 쓰신 글을 꼭 들려주세요. 이 모임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같이 쓰고 읽으며 조금씩 줄여가는 시간이에요. 혼자서만 부끄럽다고 글을 계속 감추면 모임에 참여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여기 올 이유도 없고요. 그러니 오늘은 글을 읽지 않으시면 저도 수업을 끝내지 않겠습니다.”     


단호함이 통했는지 내가 다가가자 서둘러 덮던 노트를 다시 펼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와 학인들은 재촉하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침묵의 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떨리는 목소리로 그동안 쓴 글의 일부를 읽기 시작했다.


그날 들은 어르신의 이야기는 그가 써 내려간 300쪽짜리 회고록의 서문이었다. 인생에 대한 후회와 한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글을 썼다는, 아니 쓸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담은 문장들이었다. 읽는 속도가 젊은 학인들에 비해 느리고 자신감을 잃어 낭독하는 목소리도 작은 편이었지만 그랬기에 모두 작은 소음이라도 내지 않으려 몸을 바로 세우고 귀를 기울여 들었다.


노트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모두 읽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있는 힘껏 박수를 쳤다.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던 어르신이 어디서든 빛이 나는 글쓰기 모임의 스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어르신의 글을 듣는 것은 수업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글이 완성되면 《토지》와 같은 대작이 될 것 같다며 아들, 손자뻘 되는 학인들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그가 들려주는 실패의 역사에 때론 같이 눈물지으며 인생 선배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


모임을 마무리 지으며 나는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자”라는 말을 고쳐 “나이 들수록 펜은 들고, 부담감은 내려놓자!”는 문장을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이 모임이 끝나더라도 나이 드는 일이,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내는 일이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자기 서사’ 쓰기를 멈추지 말기를 권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란 책에서 저자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역사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즉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해서이다. 다음으로는 가족 혹은 자손을 위해서이다. 가족(자손)에게 진정 자신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 저, 이언숙 역, 바다출판사, p.25)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가족에게 잊히고, 세상에 자리를 뺏기는 것 같아 허전하고 허망한 시절이 나에게도 오겠지. 그날이 오면 사라져 가는 기억과 감정들을 저 깊은 내면에서 소중히 건져 올려 외로움이 깃든 노트에 꾹꾹 눌러 담아보려 한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글감들을 찾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업은 내 사람들에게 쓰는 긴 유언이 될 것이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나의 서사는 남아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유품으로 간직되기를 바란다.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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