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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May 07. 2022

질병을 기다리며

건강한 삶에 대해 묻다!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위로의 문구를 반복하는 노래가 있다. 2005년 가수 이한철이 발표한 '슈퍼 스타'란 곡이다. 철없다고 느낄 만큼 해맑은 목소리톤과 경쾌한 반주, 희망이 가득 담긴 노랫말로 언제 들어도 하늘에 둥둥 떠있는 듯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노래다.  


가끔  노랫말을 나만의 리듬으로 때론 느긋하게, 때론 처량하게 편곡하여 주문처럼 되뇔 때가 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톤으로 말이다. 나에게 또는 가족에게 예상치 못한 질병이 찾아왔을 때다. 이렇게 속엣말을 가지게  계기는 내가 ‘건강염려증이란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부터다.  


'건강염려증'이란 몸에 나타나는 사소한 증세나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해 스스로 병에 걸렸다고 믿거나 두려워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성격이 꼼꼼하거나 예민한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들었다.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미디어를 통해 많은 의학 지식을 얻은 사람일수록 건강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게 되고 질병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처음에는  상태가 그리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화장대 서랍을 열었는데, 화장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서랍 안은 각종 약들로 가득  있었다. 비상약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둘 모아두다 보니 나중엔 약국 진열대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갖가지 종류의 약들로 서랍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코로나 19 위협이 일상을 덮친  나의  의존도와 건강 염려증은 한층 심해졌다. 외출을 하거나 출장을  때도 제일 먼저 약주머니를 챙길 정도였다. 그러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너무 심하다 눈초리를 받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건강 이상이나 질병에 대해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코로나 19 확진 이후 후유증으로 고생한 엄마,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지는 시부모님,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고나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가족들을 돌보며 스트레스가 쌓였고, 점점 나도 아프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내 마음의 상태를 알고 난 후 쉽진 않지만 평소 ‘걱정’이 많은 나의 심리적 성향을 인정하고, 건강이나 질병에 대한 시선과 태도부터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책꽂이에서  대학원 시절 공부했던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은유로서의 질병>이란 책을 발견했다.    


수잔 손택은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이다.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나 2004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뉴욕 지성계의 여왕' 등의 명성을 얻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40대 초반 유방암 판정을 받은 그녀는 암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받는 것 같은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이후 질병을 주제로 글을 썼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에 대해, 나아가서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언어와 태도, 편견,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지에 쌓인 책을 다시 펼치니,  문장부터 마음에 와서 박힌다. 예전에는 논문을 쓰기 위해 머리로 분석하며 책을 읽었다. 나와 가족이 질병의 은유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느낀  책을 다시 읽으니 가슴으로 이해할  있을  같다.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이다.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 법, 아무리 좋은 쪽의 여권만을 사용하고 싶을지라도, 결국 우리는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우리가 다른 영역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갑자기 질병이 평온한 일상을 덮칠까 겁을 먹고 그럴수록 먹거리와 운동, 생활 습관을 관리하며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도대체 건강한 삶이란 무엇일까? 실체가 있긴  것인지 의문이 든다. 사전에는 건강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네 생에서 과연 정신적으로 아무 걱정이 없고 육체적으로도 불편한 부분이 전혀 없는 순간을 꼽을  있을까 싶다. 어쩌면 건강한 삶이란 상 속 만연한 고통과 고단함을 견디기 위해 사람들이 막연히 바라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는지.

 

얼마  남편의 건강검진표가 집으로 날아왔다. 남편은 매년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결과표에서 수치가 평균을 벗어난 항목이 있으면 일일이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 정보검색에 들어갔다.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공부하고, 수치가 나빠진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의사 놀이를 했다. 원인을 밝혀내야 이미 병이 되었거나 병이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있을  같았다. 건강검진표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질병에 걸리는 것도, 극복하는 것도 전적으로 남편 혹은 배우자인 나의 책임이라는 전제가 깔린 것이었다.


올해 건강검진표를 보고는 쓸데없는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았다. 원인과 해결 방법을 생활 속에서 찾겠다며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런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고 있다. 질병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가, 인과응보라는 교훈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질병은 우리의 몸을 침략하는 적도, 편안한 일상을 뒤흔드는 공포의 대상도 아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일상의 존재다.


하루 한번 엄마의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에서 엄마의 눈이, 어깨가, 아랫배가 불편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이제 중년이  나도,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엄마도  아프거나  아픈 상태를 수시로 오간다. 수잔 손택의 말처럼, 건강과 질병의  왕국이 있다면 이들 사이를 수시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왕국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이제는 질병이 있는 상태가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의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노래  구절을 흥얼거리며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공포심을 가라앉히고, 병에 대해 상상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차분한 자세로 앉아   부릅뜨고 마주 보면  일이다. 나이 들면 아니, 살아있으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진리를 읊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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