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6 :
요즘 참 힘들고 팍팍하다.
하루가 아니라, 그냥 삶 전체가.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가슴 위에 돌덩이가 하나 더 얹힌 듯 숨이 막히고, 저녁이 오면 그 돌덩이를 안은 채 잠들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안다. 그것들이 작은 피로와 상처들이 되어 조금씩 쌓여 나를 갉아먹는다.
이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슴에 돌멩이처럼 박힌 것이다.
숨 쉬기도 벅차고, 그냥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너무 지쳐서, 그냥 편하게 끝내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다.
그래서 친구한테 그랬다
"야… 그냥 조용히 세상 마무리할 약 같은 거 없냐."
내 목소리는 농담 같지도, 그렇다고 진담 같지도 않았다.
그 친구는 잠깐 조용하더니, 피식 웃으며 툭 내뱉었다.
"야. 내가 심심하니까 죽으면 안 돼."
엉뚱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웃게 했다.
나도 모르게 허탈하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는 내가 스스로 낯설어서, 더 웃겼다.
작은 순간이지만 가슴 깊은 데서 뭔가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
아, 이 친구. 내가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
이 친구는 나를 붙잡으려는 말 대신, 그냥 자기 식대로 툭 던져놓는다.
그런데 그게 나를 살린다.
친구가 그랬다. "친구야. 살아야 할 이유가 꼭 거창해야 할까?"
누군가 ‘네가 없으면 내가 심심하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붙잡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랑 있으면 편하다.
말 안 해도 다 알 것 같고, 굳이 설명 안 해도 괜찮다.
뭘 해도,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이렇게 넋두리 하는 게 좋다편하다.
같이 있다는 게 좋다.
같이 길을 걷다가도 괜히 웃음이 터지고,
밥을 먹으면서도 별 얘기 아닌 걸로 한참 떠들다 보면 시간이훌쩍 간다.
뭔가 해결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면 또 내일이 오니까..
잠시 후 친구가 또 말했다.
"야.. 죽지 말고, 삼계탕 먹으러 와. 내가 사줄게.
알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더 좋다잖아."
그 말이 괜히 더 따뜻하게 들렸다.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아질 거야’ 같은 진부한 위로 대신 ‘삼계탕 먹으러 오라’는 말로 손을 내미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뜨거운 국물에 김이 피어오르고,
마늘과 인삼 향이 코끝을 스치고,
한 그릇에 밥을 말아 툭툭 떠먹으며 서로 아무 말 없이 웃는 그 풍경이 떠올랐다.
살아 있다는 게 꼭 거대한 사명이어야 하나.
이런 국물 한 그릇, 친구의 한마디, 웃음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 이 친구는 이렇게 나를 살게 하는구나 싶었다.
고민의 무게를 들어주지도 않고, 위로라는 이름으로 무겁게 끌어안지도 않는다.
그저 툭 던지는 말과 함께 삼계탕 한 그릇으로 나를 붙잡는다.
그 단순함이 고맙다.
살다 보면 이렇게 사소한 순간들이 사람을 살린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별것 아닌 약속 하나, 뜨끈한 국물 앞에서 마주 앉아 웃는 순간 하나가 삶을 계속 이어가게 한다.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은 날에도, 이런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난다.
요즘 참 힘들다.
그래도 며칠 있다가 그놈한테 삼계탕을 먹으러 가야겠다.
"야. 내가 심심하니까 죽으면 안 돼."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내일 일어나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