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8
독백 8
하물며 나무조차도 스스로를 꺾지 않는다.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나무는 그저 휘어질 뿐이다.
부러짐은 바깥에서 온다.
세월의 칼날, 겨울의 눈, 번개의 손길이
그 가지를 꺾을 수는 있어도
나무 스스로 자신을 꺾는 법은 없다.
그런데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잘라내고
자신의 가지를 꺾는다.
세상의 바람이 아니라,
내면의 칼날로 자신을 찌른다.
왜 그럴까.
우리 마음속에는 두 개의 눈동자가 있다.
하나는 바깥세상을 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 두 시선은 종종 충돌한다.
남이 본 나와 내가 본 내가 어긋날 때,
우리는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를 부정한다.
다른 사람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고,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나의 거울이 되며,
결국 그 거울 속 낯선 내가
진짜 나인 듯 착각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가지를 꺾듯 스스로를 꺾는다.
나무는 그저 존재한다.
빛을 향해 자라고, 땅을 향해 뿌리내리며,
그 생의 방향을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많은 말을 듣고,
너무 많은 얼굴을 바라보고,
너무 많은 타인의 욕망 속에 흔들린다.
우리는 늘 비교하고,
늘 판단하고,
늘 자기 자신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부러뜨린다.
나는 오늘, 산에 올라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본다.
그 가지가 한껏 휘어지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본다.
그 단단한 유연함이 너무도 부럽다.
만약 인간이, 내가 그 나무처럼 살 수 있다면,
굳이 나 자신을 꺾지 않아도 될 텐데.
바람이 불면 그저 흔들리고,
눈이 내리면 그저 잠들고,
해가 뜨면 다시 피어나면 될 텐데.
우리는 너무 많은 언어를 갖고 있다.
언어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그 칼로 우리는 남을 상처 입히기도 하고,
스스로를 깊게 찌르기도 한다.
“너는 부족하다.”
“나는 틀렸다.”
“너는 이래야 한다.”
이 말들은 처음엔 바람처럼 스쳐가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나씩 하나씩 마음속에 쌓인다.
어느 날 그 말들은 굳어 차가운 돌멩이가 되고,
그 돌멩이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나를 무너뜨리고
스스로의 가지를 잘라내고 만다.
오늘 나무 아래 서서 나는 다짐해 본다.
나는 더 이상 나를 꺾지 않겠다고.
세상이 흔들어도, 바람이 몰아쳐도,
내 마음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겠다고.
나는 부러진 가지가 아니라,
휘어지는 나무가 되겠다고.
언젠가, 우리의 마음이 나무처럼 단순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꺾지 않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바람과 함께 흔들리면서도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