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불빛과 파도, 익어가는 가을
나는 도시의 불빛 아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품고 서있고,
그녀는 먼 바닷가에서 파도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한낮의 빛을 머금던 잎들이 바람 속에 색을 바래가듯,
도시를 채우던 음표들은 한때 빛났던 생기를 잃고
손을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잎새처럼 찬바람 속에 흩어져 스러진다.
그녀는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파도 소리 속에 잠겨,
바닷가의 끝없는 어둠 속에 서있다.
파도는 아득한 소리를 남기며 부서져, 흩어져 손끝에 닿지 못한 채 사라져 간다.
나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녀는 파도 소리에 기대어 나를 떠올린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요 속에서
같은 외로움에 잠긴다.
그리움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도시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바다의 끝없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닿을 수 없는 거리 위에 머물러
흩어지는 붉은 낙엽처럼 서로를 향해 스러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