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방송국의 '을'들과 '그 방'의 기억
한동안 꿈을 꾸면 다시 그 방으로 끌려가곤 했다.
아니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등 돌린 사람들 너머로 홀로 앉아 있는 나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쨌든 많은 일이 벌어졌던 그 방.
그 방은 건물 8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오른쪽 복도 끝, 너른 사무공간으로 향하는 길목에 가벽을 세워 만든 작은 방이었다. 문 앞에는 프로그램명이 붙어있었는데 작가들이 주로 사용했다. 내부에는 6개의 책상이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 대여섯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회의 테이블도 있었다.
작가들은 그 방으로 주 1회 정도 출근했다. 저마다 자기 스케줄에 맞춰 출근해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가운데 회의 테이블에 모여 밥을 먹으며 그 주의 방송 관련 이야기나 연예 뉴스 같은 시답잖은 화제를 나누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일해온 평범한 사무실. 그런데 회사의 자진 사직 압박이 시작된 후, 나는 그 방에 혼자 앉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사전 시사하는 날, 피디들이 우르르 '그 방'을 찾아왔다. A피디는 방에 들어왔고 나머지 피디들은 대충 문에 걸쳐서, 그보다 멀리 일행의 어깨 너머로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A피디가 문 바로 앞에 멈추는 바람에 다 들어오지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정리하면서 다시 이야기할 일이지만 이 일이 있기 며칠 전, A피디는 제작사 B국장과의 면담에 예고 없이 동석한 적이 있었다. A피디는 팀장과 회사로부터 자진 사직 압박을 받고 있던 나에게 '메인작가(나)가 시사 때 함부로 한 말 때문에 피디들이 큰 상처를 받아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나가달라, 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노조와 함께 대응한다니 피디들은 독립PD협회와 함께 대응하겠다고(대체 무슨 대응을?) 엄포도 놓은 상황이었다.
어쨌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이날은 다른 피디들 모두 데리고 찾아왔다. 독립PD협회와 무슨 의논을 해서 나온 결론이었을까. A피디는 "오늘부터 메인작가의 시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의 등 뒤에서 목을 빼고 방 안을 보고 있던 피디들도 꽤 굳센 표정을 지었다.
시사일이 그렇게 지나가고 다음 날, 생방송이 끝나고 마무리 회의 시간에 이번에는 A피디가 나에게 "그만두지 않으면 본사에 너를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독립피디협회든 본사에든 상담하시라. 제삼자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계약서를 회사랑 썼다. 왜 결정권자가 아닌 피디들이 나서서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고 사유가 충분하다면 회사에 이야기하라."라는 대꾸가 나의 최선이었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이번에는 B피디가 동료 피디들을 돌아보며 "그러면 우리 이번 촬영 안 가는 거지? 스케줄 다 취소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에 다른 피디들도 어! 그래! 하며 함께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메인작가를 상대로 파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역시 다시 해야 할 이야기지만 나는 그냥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었다. 팀장과 회사는 내가 스스로 그만두길 바랐고 온갖 방법으로 압박했다. 아무리 그래도 왜 이런 방법을, 왜 이렇게까지. 그 물음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가 생활 아니 인생을 살며 가장 황당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작가들과 이야기해야 했다. 분위기가 험악하기도 했고 피디들이 당장 다음 주 촬영을 나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작가들도 당황했을 것 아닌가.
하지만 C작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누가 원한다고 이렇게까지 버티느냐."였다.
참고로 C작가 등은 당시 팀에 온 지, 2주쯤 됐었다. 사직 압박에 대해서는 작가들에게 이미 알렸고 나는 '우리가 프리랜서라고 해서 시청률이나 여러 핑계로 쉽게 일자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어떻게든 상황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보겠다는 의지도 충분히 피력했었다.
C작가의 말은 '대단한 사명감의 발로인 척 하지 마라. 해고는 너의 일일 뿐이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는 강한 확신을 담아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방송작가가 쉽게 들어오고 쉽게 나갈 수 있어서 좋다. 그게 싫으면 정규직 하지 그랬냐."
어쩌면 그날 피디들의 파업 선언은 작가들과도 사전에 공유 됐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작가들은 '그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몇 가지 사건이 더 있고 기어이 나는 해고를 당했다.
마지막으로 방송국에 출근하는 날,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C와 D작가를 만났다. 인사하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서 가요프로그램 녹화로 분주한 방송국에 대해 몇 마디 나누었다. 그리고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 내가 걸음을 재촉하는 것과 달리 C와 D는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 앞에 멈췄다. 벽에는 아마 층별 안내도나 비상시 탈출 정보 같은 게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늘 있는, 별다른 정보 값도 없는 벽 앞에 오~ 하고 멈춰 서서 나와 거리를 만든 두 사람. 셋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지만 나혼자 사무실로 향하면서, 그들 곁을 스쳐갈 때 눈에 들어온 D의 옆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게 그들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나는 물론이고 C와 D도, 파업을 선언만 했던 피디들도 다들 프리랜서다.
쉽게 해고당하는 처지가 다들 너무 즐겁고 만족스러워서 나에게 "그럴 거면 정규직 하지 그랬냐?"고 대찬 충고를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정말 악랄하다고 판단해 정의감으로 택한 일일 수도 있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다들 자신은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라 믿지 않나.
진짜 속내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내 행동의 진짜 동기를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흔한데. 내가 홀로 '그 방'을 지키는 동안 방 밖에서 벌어진, 타인의 판단과 선택을 무슨 수로 짐작할 수 있겠는가.
해고를 당한 뒤,
나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무시도 주시도 아닌 어색한 시선들, 혼자 앉은 나를 발견하고 짓던 어쩐지 득의양양한 웃음 같은 걸 보지 않아도 되니까.
간혹 꿈에 그 방과 그 사람들이 나오긴 했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등을 돌리고 그 문을 닫았다. 언젠가 꿈조차 드물어지리라,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헤아린다.
그렇지만 정말 이대로 끝나도 괜찮은가.
동료라 믿었던, 방송국 ‘을’들에게 주제도 모른다고 비웃음을 산 듯 하지만 여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정규직이 못 됐으니 쉽게 일자리를 잃어도 괜찮은 걸까?
돌아가기 싫지만 이대로 흘러갈 수도 없어서, '그 방'을 다시 열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