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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Sep 06. 2024

직장 내 따돌림에서 버티는 방법

정신과와 달리기, 그리고 지리산

1. 난생처음 정신과


정신과 초진 잡기가 쉽지 않다는데 극한 호우가 예고된 날이어서인지 당일 예약이 가능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니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치이고 우울과 불안이 높다고 했다. 의사는 당장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느 날은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친구들을 붙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건강하다고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잘 버틴다고 했다.

그런데 진단을 받고 약봉지까지 쥐고 돌아오려니 참을 수 없이 울적해졌다. 마치 다친 줄 몰랐다가 상처를 발견하고 갑자기 아파서 우는 아이처럼, 병을 알고 나니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병원을 오갔다. 성격검사 결과, 우울과 불안이 크기도 하고, 내가 상황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며 분노를 냉소로 표현한다는 해석도 들었다. 회사에서 겪는 사직 압박이나 따돌림도 그렇지만 기후 위기나 한국 정치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라면 불안이나 분노를 품고 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역시나 냉소적)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런데 그런 건 개인의 특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꼭 약을 먹어야 하나요?"

그러자 의사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병원에 왜 오신 거죠? 저는 000씨가 나아지려고 오셨다고 생각했는데."


당황했다. 꼭 나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의사를 실망하게 했구나, 다급하게 몇 마디 변명했다.


그즈음 나는 주변 눈치를 정말 많이 봤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해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등을 돌렸나, 싶었다. '그런 말 하지말지' '그건 좀 섣불렀던 것 같은데' 나를 걱정해서 누군가 던진 조언도 곧장 자학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나 자신이다, 라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내가 하는 말이며 행동에 자신을 잃었고 내 판단을 신뢰할 수 없어 자꾸 남들을 귀찮게 했다.


아... 역시, 나는 아픈 게 맞았다.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여 줄지 모른다는 기대로 그날도 처방전을 약으로 바꿔 돌아왔다. 약 덕분에 술도 몇 주씩 끊었다. 그것도 정신과 진료의 부수적인 효과일지도. 




2. 죽기 살기 달리기


친구가 명상이란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라 알려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달리기를 떠올렸다. 

달리면서 발바닥 어느 부위가 지면에 닿는지 느끼려 노력한다. 호흡이 급하지는 않은지 호흡 사이에 발을 몇 번 구르는지, 팔목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털고 팔꿈치를 힘껏 뒤로 쳐서 달려간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엔 내 숨소리만 남는다.


심한 불안에 떨 때, 머릿속엔 온갖 안 좋은 상상이 쉴 새 없이 떠올랐고 그건 마치 경계경보 같았다.

이 불안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안심하고 있을 때 불행이 찾아오면 그걸 대비하지 않은 내 탓이 될 것 같았다.  유비무환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긴장을 풀지 않고 어쩌면 벌어질지도 모를 안 좋은 일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하지만 걱정은 준비가 아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걱정은 마음을 미리 지치게 할 뿐이다.


사무실을 홀로 지키다가 아무와도 인사하지 않고 도둑처럼 퇴근할 때, 마음이 무너지고 불안이 다시 내 손발을 묶으려 했다. 그럴 때 달릴 줄 알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달리기나 운동 루틴 하나를 만들어두자.

물론 달리기를 한다고 안 좋은 상황이 갑자기 나아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버티는 힘은 생기니까.



3. 언제나 지리산


언젠가 트위터에 '죽으려고 지리산을 찾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 있다.

20대 초중반에 사기를 당했던가. 무망감에 빠진 그는 집에서 죽으면 발견이 늦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아서 산에 가서 죽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산은 지리산이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승객이 없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만석이었다는 지리산행 버스. 산 아래 도착해서 그는 손전등도 헤드랜턴도 없이 어둠을 밟아 산을 올랐다. 여차하면 등산로를 벗어나 외진 골짜기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여의찮았다. 그런 그에게 부부가 다가와서 헤드랜턴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대피소에 도착하자 중년의 여성이 여분의 양말을 주며 신으라고 했다. 그날 그는 천왕봉까지 올랐다가 내려갔다. 그렇게 삶이 계속 됐다.


팀장으로부터  '피디들이 시사 보이콧은 물론 독립PD협회와 공동 대응할 것이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 날, 나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지리산행 심야 버스를 탔다.


죽으러 간 건 아니고, 나는 매년 서너 번은 지리산을 찾는다.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두터운 운해가 파도치던 노고단. 임걸령 샘물을 마실 때마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걸 실감한다. 반야봉 정상석에 기대어 사진을 찍던 초로의 남자가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눈가를 문질렀다. 새벽에 별을 이고 성삼재를 출발하면 쨍한 아침이 될 때 도착하는 연하천 대피소가 주는 안도감. 벽소령 가는 길, 형제봉을 앞두고 나타난 조망 바위에 올라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본다. 우거진 숲이 감추고 있던 지리산의 장엄한 풍경은 벽소령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늘 화장실 냄새가 먼저 마중 나오는 장터목 대피소. 내가 연하선경 보다 사랑하는 제석평전. 자유당 정권의 위세를 등에 업은 자가 멋대로 벌목하다 불 질러 버린 자리에 그 만행을 기억하기 위한 비석처럼 횡사목이 서 있다. 상처 위에 수놓인 야생화와 키 작은 구상나무들. 그리고 천왕봉이 있다. 모든 산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문장이 어울리는 산은 역시 지리산뿐이다.


지리산에서 무슨 좋은 기운을 받아 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묵묵한 산이 나에게만 대단한 생의 의미를 일러주진 않지만... 사람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하지 않나. 내겐 지리산이 그 돌아갈 곳인 것 같다.


그렇게 하루를 잘 버티고 버텨서... 아, 지리산 가고 싶다.



겨울,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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