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럽여행은 끝났다. 그리고 그 다음, 또 다음 여행은
이제 우리의 유럽 여행은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아빠는 몇 천장이나 될 여행 사진을 정리해야 했고 나는 우리 가족에게, 또 내게 큰 의미가 된 이 여행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내용을 여행지로만 보기보다 여행 중에 생겨난 내 감정의 변화, 엄마아빠와 나눈 대화들, 그리고 매일 새롭게 발견한 엄마아빠의 취향과 습관들, 이것들을 중심으로 기록해놓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참으로 생경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아름다워서, 에펠탑이 거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누었던 엄마아빠와의 대화, 즐거워 보였던 엄마아빠의 표정으로 그 여행을 기억하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면서 엄마아빠에게 이야기했던 것이 있었다. 앞으로 1년에 한 번은 꼭 어디든 같이 가자고, 그동안 못했던 가족여행을 이제 조금씩 함께 가자고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꼭 이번 유럽여행이 너무 좋고 만족스러워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실 우리는 너무 힘들었고 많이 지쳐있었다. 다투기도 했고 별 것 아닌 것에 서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행이 끝날 때 다음 여행을 기약한 것은 그만큼 이 여행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 낯선 공간에서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때로는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앞으로 살아가는데 오래 남을 추억을 만든다는 의미일테니 말이다.
그 다음의 여행
얼마 전, 엄마아빠, 그리고 유럽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던 동생과 남편까지 함께 짧은 여수여행을 다녀왔다. 국내로 짧은 여행을 가면 유럽여행만큼 예상 못한 변수가 생기거나 다툴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똑같이 다투고, 당황하고 또 함께 해결하고, 그 모든 것의 반복이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우리 또한 지금의 모습에서 아주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여행마다 비슷한 일을 겪고,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이제는 여행을 통해 큰 변화를 바란다기보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있는 시간 자체를 더 좋은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우리의 다음 여행은 어디가 될까, 또 가만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같이 다니기 힘들다, 이제 여행가지 말자, 우리는 취향이 너무 안맞아... 투덜거리면서도 금세 '여름엔 어딜 가볼까?'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내게 가족은 존재만으로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모든 사람에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편안함에 익숙해져 그 존재의 소중함을 쉽게 잊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든 엄마아빠에게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 내 마음은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엄마아빠가 가졌던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가족은 서로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존재이니깐. 유럽, 여수, 이제 우리의 다음 여행은 어디가 될까?